푸틴과 편 먹은 트럼프, '러시아 침공' 뺀 유엔 안보리 결의안 주도

미국-러시아 갈등,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유럽으로 바뀌나…유엔 총회에서도 러-우 전쟁 두고 대립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서 러시아 침공 사실을 거론하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결의안이 미국과 러시아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 이후 미국과 유럽의 갈등이 유엔에서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24일(이하 현지시간) 유엔 안보리는 우크라이나의 평화와 안보 유지에 관한 회의에서 "안전보장이사회는 갈등의 신속한 종식을 촉구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지속적인 평화를 촉구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국제 평화 유지에 있어 유엔의 역할을 강조한 결의안 2774호를 찬성 10표로 통과시켰다.

안보리 결의안은 상임이사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비상임이사국 10개국을 포함해 전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된다. 이번 결의안의 경우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해 덴마크, 그리스, 슬로베니아는 기권했고 반대는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전 조 바이든 집권 당시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러시아와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이때문에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북한 문제 등에 대해서 안보리가 일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국제 분쟁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였다.

이번에 이같은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안보리의 갈등 구조가 미국-러시아가 아닌 미국-유럽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AP>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서양 관계의 극적인 변화 속에서 유럽 동맹국과 결별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통신은 "트럼프가 갈등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상을 시작한 이후 미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나타난 긴장을 반영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와 러시아와 관계로 인해 대서양 동맹(미국과 서유럽)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면 러시아 측은 이번 결의안 통과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입장을 보였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결의안 통과 이후 "채택된 결의안이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갈등을 확대하기보다는 평화로 가기 위한,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결과를 내놓으려는 첫 번째 시도"라면서 "우리는 이를 우크라이나 위기를 평화롭게 해결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의 출발점으로 본다"고 밝혔다고 러시아 매체 <타스>통신이 전했다.

이어 그는 "우크라이나 정권과 유럽 후원자들로 대표되는 전쟁 정당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 미국의 결의안을 없애고 왜곡하려는 시도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에서 지속 가능한 평화를 진정으로 이루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한이 지난 우크라이나 갱단의 리더와 그의 꼭두각시들이 미국의 노력을 방해하지 않도록 촉구한다"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난하기도 했다.

▲ 24일(현지시간) 유엔 뉴욕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이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에 기권 투표하고 있다. ⓒ유엔 제공.

안보리에 앞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3년을 맞아 긴급 실시된 유엔총회에서도 미국과 유럽 간 결의안을 두고 갈등이 빚어졌다. 총회에서 우크라이나가 제출하고 유럽의 주요 국가들과 한국 등 50여 개 국가가 공동발의국으로 이름을 올린 전쟁 관련 결의안이 찬성 93표, 반대 18표, 기권 65표로 가결됐는데 미국은 여기에 반대했다.

해당 결의안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적인 침략"이라며 국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에서 러시아가 모든 군 병력을 "즉시, 완전히 조건없이" 철수하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미국의 반대에도 총회 결의안이 통과된 것을 두고 통신은 "193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세계 기구에서 트럼프 행정부에 큰 좌절"이라면서 "총회의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세계 여론의 척도로 간주된다"고 평가했다.

미국도 이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유엔총회에 결의안을 제출했다. 통신에 따르면 해당 결의안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갈등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인명 손실"을 인정하고 "갈등의 신속한 종식을 촉구하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지속적인 평화를 촉구"했는데, 러시아의 침략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에 프랑스가 유럽 국가들이 지지하는 수정안을 제안했는데, 여기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 연방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의 결과라는 점이 덧붙여졌다. 이 수정안에는 총회가 우크라이나의 주권, 독립, 통일 및 영토 보전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고 유엔 헌장에 따른 평화를 촉구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결의안은 찬성 93표, 기권 73표, 반대 8표로 통과됐다. 해당 결의안에 우크라이나는 찬성, 미국은 기권, 러시아는 반대표를 던졌다.

총회 이후 마리아나 벳사 우크라이나 외무차관은 우크라이나가 "자기 방어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면 침공 3주년을 기억하면서 모든 국가가 확고히 유엔헌장의 편, 인류의 편,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의 편을 들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도로시 셰이 주유엔 미국대표부 차석대사는 러시아를 비난하고 철군을 요구하는 지금까지의 결의안이 "전쟁을 멈추지 못했다"면서 "전쟁은 지금까지 너무 오래 지속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그밖의 사람들에게 너무 끔찍한 비용을 초래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모든 유엔 회원국이 전쟁을 영구적으로 종식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결의안"이라고 강조했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오른쪽)이 2019년 6월 28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편 한국은 EU와 우크라이나, 미국이 제안한 유엔 총회 결의안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25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총회에서의) 결의안 채택 후 발언을 통해 무의미하고 불법적인 전쟁의 조기 종식과 유엔헌장 기본 원칙 준수라는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지와 의지를 결집할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두 결의안 모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안보리 결의안도 찬성표를 던졌는데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이 제안한 결의안 채택에 앞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이사국들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독립, 영토보전을 지지한다는 내용을 추가한다는 수정안을 제출했고 우리는 그간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에 따라 수정안에도 찬성투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수정안은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부결됐고 결국 유럽 측의 수정안이 포함되지 않은 미국의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 당국자는 "미측 결의안이 수정안 내용을 포함하지는 않으나 국제사회 주요 현안인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을 촉구하는 등 우리 입장과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과 함께 전쟁 종식을 위한 국제사회 지지와 의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지지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울러 한미관계 및 북한 문제 관련 한미 간 긴밀한 공조 중요성 등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며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성도 이번 찬성 표결에 영향을 미쳤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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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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