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에너지 3법'이라 불리는 특별법 3건이 통과됐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 각각은, 상임위에 계류된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원 관련 특별법을 제외하면, 2024년에서 2025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에너지 법안들이다. 사회 대개혁과 대전환이 화두인 요즘, 22대 국회는 오랜 민원의 숙원사업을 해결하려는 데 마음이 통한 것 같다. 하지만 여야 합의를 통한 국정 안정화의 본보기에 유감을 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럿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은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건설해 2050년 이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 그리고 2026년 이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운영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탈핵 목표와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는 핵발전을 유지 및 확대하기 위해 핵발전소 부지에 고준위 핵폐기물을 임시적, 그러나 지속적인 보관을 강행하는 '핵발전 확대 특별법'이다. 이미 쌓여있는 핵폐기물의 격리 등 관리는 불가피하지만, 탈핵 비전과 핵폐기물 관리는 필요충분조건이다.
다음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은 재생에너지 또는 핵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공급하거나, 국가첨단전략산업 특화단지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346킬로볼트(kV) 이상의 송·변전설비를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로 규정한다. 핵발전만이 아니라 해상풍력 등 대규모 재생에너지의 전력계통을 확보하고,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지역에 전기를 전달하는 송전망을 국가와 한전이 강행할 수 있게 된다. 이미 전북과 전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의 전기를 수도권에 보낼 345kV 송전망 입지 선정 갈등이 경과지 지역 주민들과 한전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핵발전에서 해상풍력으로 에너지원만 바뀐 채 송전망 갈등은 '밀양 765kV'와 유사한 양상을 띤다.
그렇다면, "발전설비가 위치한 지역 내에서 생산한 전력은 해당 지역의 전기사용자에게 우선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보칙 조항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임의조항에 불과해 전력 생산-소비의 공간적 불균형을 해소하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 전환 과정은 송·배전시스템의 변화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지역별 재생에너지 전력 자립·전환 목표 설정 및 달성 의무화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제5차 전북특별자치도 지역에너지계획(2025~2045)은 2022년 신·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신·재생에너지 발전량/전력 소비량은) 47.1%를 2030년 91.1%로 상향하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웠다. 이를 실현할 여러 과제가 있지만, 근본적인 맹점도 있다. 국가기간 전력망을 타고 수도권으로 보내는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전력자립률에서 허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녹색연합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탈탄소 에너지전환을 위한 충남권(대전·충남) 재생에너지 자립 방안'(2024년)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특별한 법률이 전제돼야 전력망 조정 등 관리가 그나마 수월해질 것이다.
'해상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안'도 뜨거운 감자다. 해상풍력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설계하는 계획입지(지구지정)에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겠다는 법안이다. 재생에너지 계획입지는 2017년부터 추진되어 현재 과도기적으로 집적화단지 제도가 실행되고 있어 그리 낯설지 않다. 해상풍력과 공유수면을 공공의 자원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다행이지만, 이를 실행하는 방안에는 허점이 많다. 탈석탄 발전공기업의 해상풍력 사업 우대 조항이 있지만, 이미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선점한 민간기업과 해외자본 등 기존 사업자를 인정하고 특별 대우하는 조치는 공공성을 잠식한다. 많은 특례와 의제처리 조항은 자칫 녹색개발주의를 유발해 재생에너지의 반환경성 논란을 낳을 수 있다.
2월 19일 열린 '해상풍력특별법 긴급토론회'는 '해상풍력 민영화와 난개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재생에너지의 공공성과 환경성을 보장할 수 있는 '공공재생에너지'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해상풍력이라는 공공의 가치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일까? 한국풍력산업협회가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성명서(2월 14일)에서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얼핏 같은 고민으로 보이지만, 그 기저에 깔린 철학과 논리는 상반된다.
필수 사회기반시설의 운영과 관리는 민주공화국과 지방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수행이 기본이다. 해상풍력에서 수익성 확보가 우선인 시장이 형성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패턴을 바람과 바다에도 허용하는 꼴이 된다. 공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결합이 중심이 되도록 해야 비용 효과적으로 해상풍력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덴마크 에너지 공기업 오스테드(Ørsted)가 동에너지(DONG Energy)에서 '전환기업'으로 탈바꿈한 사례는 우리에게 현실적인 시사점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는 공적 기관의 존재, 그리고 정부와 연기금의 지원과 협력, 지역사회의 참여 보장, 민간 제조사와의 파트너십 등, 이런 포괄적인 조건이 충족돼야 해상풍력 보급 및 산업 활성화를 위한 관리된 경쟁시스템도 작동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질문을 새롭게 해보자. 중심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무엇을 주도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상임위에 제출된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원 관련 특별법과 종합해 볼 수 있다. 현재 12개 법안을 두루 살펴보면, 폐지지역 규정 및 특별지구 지정, 지원계획 및 시행계획 수립, 위원회 위상 및 역할(구성·운영), (광역·기초)지자체 역할, 지원 사업(지역활성화, 대체산업 등) 및 지원 방식, 기금 조성 및 기존 재원 활용, (퇴직)소득보조 및 고용보조금, 환경영향 및 환경보존, 재생에너지 사업 연계 등으로 주요 시책을 나열할 수 있다. 그러나 탈석탄 시점 및 로드맵 부재, 총고용 및 노동전환 불가능, 주요 의사결정 관련 노동 참여 거버넌스 부재 및 권한 미흡, 산업 및 지역 전환 기획·추진 난항 등 쟁점이 다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탈석탄과 해상풍력을 연계하는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구상을 확장할 수 있다. 석탄발전 폐쇄와 해상풍력 확대를 전면적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석탄발전 공기업의 전화기업 전략을 수립하는 내용을 담아 특별법 체계를 다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똠방 각하'와 그 일당만을 탓할 수 없음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정치의 극우화와 보수화 흐름, 그리고 국정 안정화 방향은 사회 대개혁과 대전환의 어려움을 가중한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도 마찬가지다. 대안적인 집결지가 단단해야 에너지 전환 과정의 불화를 정면에서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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