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되며 "미쳐간" 우익 엘리트 트럼프와 머스크, 진보 겨냥한 허무주의적 복수?

소수자 위한 개념 거꾸로 사용해 기득권 옹호…미 교육부, 대학에 "학교 생활 모든 측면서" 인종 고려 금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대학에 인종을 고려한 모든 조치 폐지를 요구했다. 트럼프 정부가 인종 차별 방지 조치를 "차별"로, 표현의 자유 증진 조치를 "검열"로 오도하고 젠더(사회적 성) 개념은 아예 지워 버리며 '문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론 머스크가 이런 행보를 틈타 소셜미디어(SNS)에서의 막대한 영향력에 더해 정부 권력까지 갖추며 사실상 '좌표 찍기'로 반대자의 표현의 자유를 크게 억압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7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 교육부는 지난 14일 대학들에 입학 뿐 아니라 고용, 장학금, 금융 및 행정 지원, 주거, 졸업식 등 "학생 및 학업, 학교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인종을 고려하는 정책을 폐지하라는 서한을 보냈다. 교육부는 이 조치가 14일 내 이뤄지지 않으면 대학들이 연방 자금 지원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교육부의 이 서한은 2023년 보수 우위 미국 대법원이 대학이 입학 때 인종 배경을 고려해선 안 된다며 소수 인종 차별 금지 조치(affirmative action)를 위헌으로 판단한 결정을 더 넓게 해석한 것이다.

이미 일부 대학들은 트럼프 정부 눈높이에 맞춰 인종 관련 학생 조직, 행사를 차단한 상태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는 이달 초 베트남계 미국인 생도 협회, 아시아-태평양계 포럼 모임, 흑인 공학자 모임, 라틴 문화 모임 등 12개 친목 모임을 금지했다.

오하이오주 애크런대는 인종 관련 포럼을 취소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 공립 대학들은 졸업 요건에서 다양성·형평성·포용성(DEI) 수업 이수를 제외했다. 미시건 주립대는 연례 음력설 기념 모임을 취소했다가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다시 날짜를 잡기도 했다.

신문은 많은 대학들이 특정 민족적 배경을 가진 학생에 대한 장학금과 보조금 제도를 운영 중이고, 학내에 이러한 학생에게 맞춘 여러 모임이 있으며 관련 자금 지원은 대학이 아닌 학생회나 외부 단체에서 오는 경우도 있어 대체로 파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신문은 리드스미스 법률사무소의 고등교육 부문 파트너 변호사인 제프 웨이머가 "예를 들어 아시아 학생들을 위한 친목 단체가 아시아 문화를 홍보하고 아시아 문화에서 중요한 명절 등을 중심으로 행사를 열지만 이 조직 자체는 민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개방돼 있다고 하면 어떨까?"라며 교육부 서한에 법적인 의문점이 많다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대학의 인종을 고려하는 정책은 소수 인종 학생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고 구제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지만 교육부는 서한에서 이러한 차별 금지 정책이 "차별"이라고 거꾸로 지칭했다.

17일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정부가 의미를 뒤집어 사용하는 개념이 이뿐만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표현의 자유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뿐 아니라 미 연방정부 감원을 주도 중인 정부효율부(DOGE)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JD 밴스 미 부통령 또한 즐겨 언급하는 용어다. 이들은 소수자 혐오 표현이나 행위에 대응하는 조치, 즉 발언권이 억압된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는 조치를 "검열"이라고 부르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거꾸로 주장한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트럼프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억압하고 있다. 백악관은 <AP> 통신이 기사에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만'을 개명한 수역의 명칭인 '미국만'을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가 사용하는 명칭인 '멕시코만'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이 언론사 기자들의 지난주 백악관 집무실 취재를 포함해 대통령 행사 취재를 차단했다. <AP>는 백악관의 조치는 "처벌"이며 "정부가 대중이나 언론의 발언에 보복할 수 없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1조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소셜미디어 엑스(X)의 소유주이자 그 자신이 소셜미디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머스크가 이를 이용해 '좌표 찍기'식으로 비판자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주도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는 머스크 등이 "검열"이라고 부르는 표현의 자유 증진 조치들이 막고자 하는 행위다. <워싱턴포스트>는 머스크가 지난주 소셜미디어에서 효율부를 비판한 한 시민단체 활동가에 대한 인신공격성 게시글을 인용한 뒤 시각 장애인인 해당 활동가의 계정에 장애에 대한 비하, 계좌 공개 요구를 포함한 신상 털기식 메시지가 수십 건 이상 날아 들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디지털 권리 전문가들이 머스크의 막대한 온라인 팔로어 수, 콘텐츠 관리 규정을 지시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 플랫폼 소유자 지위, 개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부 기관 수장이라는 지위가 전례 없는 권력 불균형을 만들었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요소의 결합으로 머스크에게 자신에게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위협하고 반대 의견을 억누르는 힘이 생겼다는 것이다.

신문은 미 워싱턴대 법학 교수인 라이언 칼로가 "사람들은 이 나라에서 정부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며 "왜냐하면 일론 머스크와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형태의 정부가 보복을 촉진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성별이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개념인 젠더(gender)는 아예 지워버리려 시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 당일 서명한 관련 행정명령은 미국은 "생물학적 남성",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두 성별만 인정한다며 연방 기관은 "젠더"라는 용어를 폐기하고 "성별(sex)"이라는 용어만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두 개의 성별만을 인정함으로써 주로 성소수자(LGBTQ+) 권리를 겨냥한 공격이지만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사스키아 브레첸마허 선임연구원은 지난 14일 논평을 통해 이에 더해 "생물학적 성 정의를 고집하면 정치, 노동시장, 사회에서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회적 규범과 구조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결하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나아가 이러한 행위가 평등 규범과 권리 보호에 대한 더 광범위한 공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데이비드 브룩스는 지난 13일 칼럼을 통해 트럼프 정부는 엘리트를 배격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포장하지만 사실 트럼프 대통령, 밴스 부통령, 머스크까지 모두 미 명문대 출신 엘리트로, 현 정부가 벌이는 일의 본질은 한 엘리트 집단이 다른 엘리트 집단을 축출하려는 일종의 엘리트 "내전"이라고 분석했다.

브룩스는 미 명문대의 진보적 분위기 속에서 고립된 우익 엘리트들은 "미쳐 가고" 진보적 엘리트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보수주의자 혹은 포퓰리스트의 행보라기보단 진보적 엘리트들이 장악한 기관, 정책, 이념을 "파괴"하는 데 집중하는 허무주의적 행보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 미국 '대통령의 날'인 17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반대하는 "내 대통령의 날이 아니야" 시위에서 한 시위 참여자가 "일론(머스크)을 화성으로 돌려 보내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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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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