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윤석열을 뽑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박세열 칼럼] '민주주의'로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시대에

우리가 겪은 윤석열 시대 3년은 어느 정도 안착됐을 것이라고 간주돼 왔던 민주주의의에 전 세계적으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던 시점과 맞물려 있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民)'이 '주(主)'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어로는 demos(민중)와 cratos(지배)의 결합(democracy)이다. '민'의 결정이 때론 옳지 않아 보여도, 그것은 시스템과 제도에 대한 공통의 믿음을 토대로 '절대 선'이라 간주된다. 시스템을 의심할 순 있지만, 그 시스템 자체를 부인하지 말자는 게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합의다.

지금 세계 곳곳의 민주주의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특히 현대 민주주의를 발명한 미국, 프랑스와 같은 곳에서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에선 4년 전 쫓겨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왕좌를 차지했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국민연합(RN) 집권 가능성이 더이상 농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유럽 곳곳에서 극우주의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여기에 대항하는 것은 러시아와 중국의 신 권위주의 체제다. 이들은 전쟁을 불사할 기세로 전체주의 성향을 강화하고 있다.(러시아는 권위주의 체제를 바탕으로 실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른바 좌파가 '현실의 적'을 상정한다면 극우는 '상상된 적'을 상정한다. 분노와 증오의 정치는 분노와 증오의 대상을 만들어야, 분노와 증오의 대상이 존재해야 작동이 가능하다. 우린 그간 분노와 증오를 저 깊은 곳에 은폐하고 풍요를 가장하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자유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설적으로 그 특정한 '자유'가 또다른 '자유들'을 억압하고 있는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그 원인을 가늠해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우린 안간힘을 써야 한다.

우리가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다고 봤다. 하지만 지금 전지구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속사정은 어떤가.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국가들은 러시아와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그들이 권위주의를 무기로 서구 민주주의의 경제 권력을 탈환하려 한다는 의심이 이른바 '자유 진영' 국가들 사이에서 자리잡고 있다. 스스로 불러온 현상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세상을 제로섬 게임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중국과 러시아에 경제 주도권을 빼앗기면, 결국 몰락할 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그래서 자유 진영의 세계 시민들은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의 굴기에 대항하기 위해 민주주의의 '게임 룰' 안에서 가장 ‘권위주의적’ 면모를 보이는 리더를 선출하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이 그렇고, 일본이 그렇고, 유럽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 마찬가지다. 그런 방식의 민주주의는 당연하게도 민주주의 체제 구성원들 일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그리고 가난한 자들.

민주주의의 본고장에서 어떻게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는가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렸다. 미국은 적극적으로 트럼프를 선택했다. 우린 세계 체제의 제트기에 탑승한 승객이다. 빠르게 가면 갈수록 양력(揚力, lift)의 작동으로 속도는 더 빨라지게 된다. 하지만 엔진이 멈추는 순간, 속도가 줄어드는 순간 끝이다. 추락이다. 그들은 성장의 시대가 끝나면 죽는다고 믿는다.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체제 자본주의 국가'들의 성장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더 많은 부가 필요하고 더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 남의 영토를 집어 삼키더라도, 가난한 자들과 경계에 '장벽'을 세우더라도.

이제 미국인들은 세련된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억압하기로 결정했다. 이것 또한 민주주의다.

"경제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고려할 때 현재의 성장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 체제는 독재밖에 남지 않았다. 복잡한 절차와 합의가 필요한 입헌 민주주의는 성장의 걸림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철학자 우치다 타츠루의 말이다. 일본과 한국 역시 이런 도전에 직면했다.

윤석열은 자신의 충실한 부하들에게 '비상대권'을 언급했다고 한다. 비상 대권은 국회 해산권, 긴급 조치권 등 헌법의 예외 상태 규정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유신헌법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윤석열은 이번 계엄을 준비하면서 경제부총리에게 "국회 운영비를 끊고 비상계엄 입법부 예산을 짜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입법부는 귀찮은 존재다. 80년대 수준의 시대에 뒤떨어진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를 선호한 그는 아마 자신이 꿈꾼 세상을 위해 국회의 기능을 없애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윤석열은 독재 시스템을 원했다.

이제 세계는 더 위험해졌다. 민주주의가 스스로 민주주의를 옥죄고 있다. 3년간 대한민국은 모든 분야에서 많은 퇴행을 겪었다. 2024년 끝자락에 민주화 시대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을 정부에 끌어들였다. 일본 식민 지배와 이승만 독재를 겪어낸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자 과거사를 물리고 있다. 재벌 기업가들을 끌고 다니며 '폭탄주'를 돌리는가 하면, 민주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와해시키는 조치들을 취했다.

한국의 극우 세력은 중국을 비난하기 위해 노골적인 외국인 차별, 인종차별까지 동원한다. 윤석열은 그런 극우 세계관을 받아들여 외교 전략을 폈다. 무전략의 전략으로, '미국만 따라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윤석열의 외교가 만들어낸 건 중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북한의 밀월이라는 기막힌 현실이다. 세계는 양 극단으로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평화와 민주주의의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점점 '노땅'이 되어 가고 있다. 미디어와 길거리엔 프로파간다가 넘쳐난다. '욕망에 반응하라. 욕망을 억제하는 자는 빨갱이다.'

지금 우리 사회 안에도 '권위주의' 체제에 우리의 안락함을 헌납하자는 마음이 피어나고 있다. 총체적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일부 보수 언론과 경제 신문들은 불안과 위기의 불을 지피고 있다. 만들어진 공포의 시대, 윤석열의 시대가 끝나도 우리 안의 윤석열은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우린 조금 더 '세련된 윤석열', '계엄은 안 하는 윤석열'을 선호하게 될 지 모른다.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선택이 될 것이다. 아니 우리의 선택으로 포장될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길은 더 울퉁불퉁해질 것이다.

부인할 수 없다. 윤석열을 만든 것은 우리다. 윤석열은 탄핵됐지만 각종 여론조사는 '유사 윤석열'의 탄생을 예고하는 불길한 수치들을 쏟아낸다. '독재'를 꿈꾼 윤석열은 스스로를 폐위했지만, 윤석열식 정치는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온 증오의 정치, 분노의 정치는 이제 시작되는 것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순 없다. 그에 맞서서 우리는 똑똑히 봐야 한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본다. 우리는, 다시 윤석열을 뽑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양력에 의존하는 제트기는 엔진이 꺼지면 추락하지만, 복엽기는 느리다. 그러나 추락하지 않는다. 엔진이 멈추고 날개에 구멍이 나더라도 조종을 잘 하면 바람을 타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시가행진 중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2024.10.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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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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