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선거론'을 추종하는 국민의힘의 역사를 살펴보자

[장석준 칼럼] 국민의힘의 현재에 대한 역사적 접근

12. 3 친위쿠데타 시도 이후 국민의힘의 극우화가 점입가경이다. 1. 19 난동을 주도한 파시스트 무리의 집회에 국민의힘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거야 당의 공식 행보는 아니라고 치자. 그러나 최근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헌법재판관 임명에 관해 헌법재판소 결정을 따르지 말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12. 3 내란의 연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행태다. 헌법기관에 대한 노골적 공격이고, 헌법에 맞서는 반역이다. 2025년 현재, 국민의힘은 이렇게 일상적으로 위헌 난동을 벌이는 정당이다.

국민의힘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는가? 국민의힘은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 하는가? 사실 국민의힘 집행부나 국회의원들도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뚜렷한 전략이나 장기 계획이 있어서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저 기득권을 놓기 싫어 순간순간마다 가장 파렴치한 결정을 내리며 미지의 길을 헤매는 듯싶다.

그렇다 보니, 바깥에서 무슨 분석이나 진단을 내놓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비슷한 시도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국민의힘의 자멸이야 전혀 아쉬울 게 없지만, 지금 저들은 한국 사회 전체의 멱살을 잡은 채 낭떠러지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2004년, 이미 두 번의 대위기에서 생환했던 과거의 경험

사실 지난 몇 주 동안 국민의힘의 폭주에 관해 적지 않은 기사가 쏟아졌다. 개신교 내 일부 흐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헤치기도 하고, 주된 지지층을 이루는 특정 세대를 분석함으로써 폭주의 원인을 파악하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의외로 역사적인 접근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슬러 올라가봐야 2016-17년 촛불항쟁 무렵이 상한선이다.

하지만 다른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정당 역시 지극히 역사적인 존재다. 현재 모습을 이해하는 데 가장 요긴한 자료는 무엇보다 과거의 그 행적이다. 국민의힘의 경우라면 지난날의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등과 대조함으로써 좀 더 풍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면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글에서 이런 접근을 한 번 시도해보고 싶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이점은, 민주자유당에서 시작하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의 역사가 세 개 정도의 단락으로 선명히 나뉜다는 사실이다. 민주자유당에서 국민의힘에 이르는 30여 년 역사는 작금의 내란 상황을 제외하면 세 차례의 거대한 타격과, 이로부터의 극적 회생으로 요약된다. 요즘은 그 마지막 사례인 박근혜 대통령 탄핵-파면 이후 사정이 주로 입에 오르내리지만, 이에 못지않은 대위기가 그 전에 이미 두 차례 있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이 그것이었다.

우선 외환위기를 살펴보면, 이때 민주자유당은 김영삼 정부의 성과를 발판 삼아 신한국당으로 막 재정비를 마친 상태였다. 신한국당은 이후 이 계열 정당들이 보인 모습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무게 중심이 군부독재 잔당인 민정계에서 김영삼계로 이동했고, 주된 지지 기반도 대구경북이 아니었다. 화근은 김영삼 정부-신한국당이 민주화 이후 공백이 된 '보수'의 내용을 신자유주의의 설익은 도입으로 채우려 했다는 점이었다. 이 시도는 곧바로 1996년 말 노동법-안기부법 개악 반대 총파업이라는 반격에 부딪혔고, 몇 달 뒤에는 외환위기까지 몰고 왔다.

그 결과, 1997년 대선에서 제6공화국 역사상 첫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1970년 신민당 대선 후보 경선 이후 오랜만에 야심차게 당내 경선을 거쳐 대통령후보(이회창)를 선출했다는 사실마저 경제위기 책임을 묻는 노도와 같은 민심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물론 여야는 바뀌었어도 김대중 정부 내내 원내 제1당은 계속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이었다. 겉보기에는 위기 상황이라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난생 처음 겪어본 한나라당 주변 엘리트들에게는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1997년 당시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상타결 관련 기자회견을 하는 당시 미셸 캉드쉬 IMF 총재(오른쪽)와 임창렬 부총리(왼쪽) 모습. ⓒ연합뉴스

이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우파 언론(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 내 한나라당 지지 세력이 전면에 나섰다. 이들의 집중적인 담론 정치를 통해, 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김대중-노무현 정부 세력이 '친북' 더하기 '진보' 혹은 '좌파'로 규정되는 한국식 구도가 새롭게 자리 잡았다. 반대로 한나라당은 이 도식에 걸맞게 과거 신한국당 시절보다 더 오른쪽에 치우친 이념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실상 유일한 대선 주자 이회창은 민정계와 손잡고 김영삼계를 주변화시켰고, 우파 신문들이 주문하는 대로 전통적 반공 극우 입장에서 김대중 정부에 사사건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런 선택이 몰고 온 결과는 또 한 번의 대선 패배였다. 한나라당과 그 주변 엘리트들은 경제위기 책임 세력은 정권을 되찾아오기 힘들다는 우려를 그들 자신의 구식 이념 공세를 통해 더 확고하게 실현시켜준 셈이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이런 완고한 노선의 연장선에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당한 탄핵에 동참하고 말았고, 이로 인해 이번에는 총선에서 제6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제1당 지위를 잃고 말았다. 두 번째 대타격이었다.

이미 이때에도 시민사회 내 우파 이데올로그들의 진지전은 김대중-노무현 세력을 제압하기에 역부족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0년대에도 이들은 낡은 반공 극우 공세가 먹히는 집단을 넘어 지지층을 대거 확대할만한 새로운 이념-담론을 생산할 능력이 없었다. 한데 이때는 당 바깥이 아니라 바로 그 안에서 이런 장벽을 돌파할 대안이 출현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10여 년간 한국 정치를 주도한 한나라당과 그 후신 새누리당의 두 경쟁적 지도자, 이명박, 박근혜가 펼친 정치가 그러한 대안이었다.

지면 관계상 이 10년간을 축약 정리한다면, 우선 한나라당은 이명박-박근혜의 당 내 지도력 경쟁을 통해 두 번째 대타격을 성공적으로 극복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배경으로, 처음에는 이명박이 박정희식 발전자본주의의 유산과 신자유주의 현실을 결합한 독특한 '실용주의'를 통해, 다음에는 박근혜가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같은 진보적 담론을 과감히 끌어안음으로써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집권당이자 원내 제1당, 즉 지배적 정당으로 되돌려 놓았다.

여기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우파 언론이나 지식인, 종교단체 등의 진지전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선거정치가 해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박근혜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존 우파 공간을 넘어서는 광범한 연합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제도정치 무대에서 펼쳐지는 대중정치가 본래 이렇게 역동적일뿐더러 이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은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실현해낼 수 있는 정치세력이었다.

2017년 이후의 운명, '지대 추구 정당'

이때가 정점이었다.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지배적 정당으로 복귀시킨 바로 그 두 지도자가 이 당의 앞길에 '지옥의 문'을 열어놓고 말았다. 두 사람 다 선거에서 자신이 내건 약속을 집권 이후에 거스르거나 폐기해 버렸다. 그러고 나자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은 관성적 지지층을 넘어서는 연합을 형성할 역량이나 자원이 고갈되고 말았다.

우선, 이명박은 '실용주의'라는 표어와는 달리 적대적 진영 정치를 돌이킬 수 없이 강화했다. 집권하자마자 2008년 촛불시위로 위기에 몰린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에 나섰다. 제6공화국 역사상 처음으로 반대당 소속 전임 정부에 대한 보복을 시도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자 양대 정당 간 대립은 전에 없던 증오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 진영 간 극한 대결의 본격적 시작이었다.

다음으로, 박근혜는 집권 이후에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같은 호기로운 구호를 모두 폐기했다. 애초에 이런 구호는 새누리당을 뒷받침하는 우파 시민사회에 깊이 뿌리 내린 비전이 아니었다. 자신들과 비등한 경쟁을 벌이던 문재인-안철수 세력을 선거에서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즉흥적 시도일 뿐이었다. 그래서 선거에 이기고 나서는 이를 미련 없이 내던졌고, 이후 지지가 꾸준히 감소하다 결국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파면되는 신세가 됐다.

말하자면 이명박, 박근혜 모두 선거정치에서 보여준 효과적인 연합 전략을 집권 이후 보다 진지한 헤게모니 구축 전략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동서고금의 어떤 정당도 쉽게 만날 수 없었을 기회를 스스로 유실하고 만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단순히 절정의 상태를 더 이어가지 못했다는 정도의 실패가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새누리당이 맞이한 운명은 끝없는 추락의 시작, 즉 세 번째 대타격이었다.

2017년 이후에 치러진 잇단 전국선거(조기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후계 정당들(자유한국당, 바른정당 등)은 더불어민주당에 계속 압도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단순히 촛불 민심에 따른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세대 구성 변화와 중첩된 '중장기적' 현상으로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쪽에서 나온 "20년 집권론"은 물론 허세였지만, 그럼에도 무게중심이 더불어민주당 쪽으로 기운 '1.5당 체제'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진단은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이 상태에서 새누리당 계승 세력들은 이번에는 어떤 회생의 노력을 펼쳤는가? 자유한국당 등이 추구한 방향은 한나라당이 제도정치 안에서 여전히 우위를 누리던 외환위기 직후와도 달랐지만, 원내 제1당 지위를 처음 빼앗긴 2004년 총선 직후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2004년 총선 이후에는 전통적인 반공 극우 담론을 고수하면서도 지지층 확장을 위한 적극적 혁신을 감행했다면, 2017년 이후에는 태극기부대를 비롯한 핵심 지지층을 유지하기 위해 당의 중심을 더 오른쪽에 맞추는 데 치중했다.

한때 박근혜가 시도한 지지층 확장 방향이 박근혜 자신에 의해 막힌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이렇게 강경 지지층에 매달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런 자폐적 선택을 반복하는데도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계승 세력이 어쨌든 양대 정당 구도의 한 축이라는 자리(비록 1.5당 체제에 더 가깝더라도)를 지켰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다당 구도를 끊임없이 양당 구도로 회귀시키는 제6공화국 정치제도(특히 선거제도) 덕분이었고, '적폐 청산'을 내세우며 은연중에 양당 대립 구도를 복원시킨 '촛불정부' 덕분이기도 했다.

이런 양당 정치 구심력이 여전히 작동하는 한, 자유한국당 등은 정부-여당에 극렬히 반대하는 정체성만 유지하면 전국선거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다수의 공직을 확보할 수 있었다.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기는 어려워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상당수 엘리트들에게 활로를 열어줄 수 있었다. 즉, 2017년 이후에 국민의힘 계열 정당들은 제6공화국 정치제도가 조장하는 양당 구도의 한 쪽 축을 맡음으로써 정치적 생존과 상당한 지분을 보장받는 '지대 추구 정당'이었다. 강경 지지층 여론에만 귀 기울이는 정치 행태는, 집권은 힘들지만 생존은 안정적인 이런 '지대 추구 정당'에게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이런 위상과 생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박근혜 선거 전략을 입안한 김종인을 다시 영입해 10년 전 대선과 비슷한 방향에서 돌파구를 열려 했다. '복지국가'를 헌신짝처럼 버렸던 그들은 이번에는 '기본소득'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2012년에는 박정희의 딸이자 한나라당을 한 차례 회생시킨 이력이 있는 박근혜가 확장적 연합 전략을 충분히 체현할 수 있었지만, 2022년 국민의힘에는 그럴만한 인물이 없었다. 정직하게 내놓을 수 있는 대선 주자는 홍준표 정도였지만, 지대 추구적 생존만 도모하던 자유한국당 시절의 기억 이상의 연상 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에 합리적인 선택은, 그리고 한국 사회 전체에도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선택은 국민의힘이 당장은(?) '지대 추구 정당'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대선 패배를 감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선택이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를 파국으로 내몰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기분열 속에 민주주의 자체를 폭파시키려 하는 국민의힘

그 선택이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정치 유치원생'이라고나 할 문재인 정부 고위관료 출신 인사, 윤석열을 영입해 대선 후보로 내세운 것이다. 윤석열은 정치 이력이 전혀 없는 '백지' 상태임을 무기 삼아 모든 반-문재인정부/더불어민주당 여론을 빨아들이는 '용광로식 포퓰리즘'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얼마 안 돼 뇌조차 '백지'인 윤석열의 실체가 드러나자, 국민의힘은 다시 정직한 총선 성적표(1.5당 체제의 0.5당 신세)와 마주해야만 했다. 윤석열 자신은 대선과 총선의 이 엄청난 간극에 대한 유일한 설명(?)으로 '부정선거론'을 받아들이며 12월 3일 밤의 파시스트로 거듭 났다.

이렇게 지난 역사를 훑다 보면, 현재 국민의힘의 모습이 난데없지만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윤석열의 난동 이후 만천하에 드러난 진실은 국민의힘이 지난 2년 동안 터무니없는 횡재를 누린 '지대 추구 정당'이라는 것이다. '지대 추구 정당'이기에 이 당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는 낡은 제도들(승자독식 선거제도 등)을 일점일획도 바꾸지 못하게 시종일관 가로막으며, 파시즘에 휘둘리는 강경 지지층을 찾아가 무릎 꿇는 퍼포먼스 역시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점점 더 기정사실화되어가는 조기 대선을 통해 '지대 추구 정당'의 지위를 재확인 받는 것은 끔찍이 두려워한다. 과감한 지지층 확대 전략을 시도할 역량이나 의사는 없으면서도 2022년 대선에서 맛본 횡재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만은 완강히 거부한다. '지대 추구 정당'의 현실과 그 부정 사이의 이런 자기분열이 지금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힘이다.

문제는 이것이 국민의힘을 움직이는 상층 정치 엘리트 몇몇의 증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요즘 여론조사가 편향돼 있다 하더라도 족히 30% 수준은 되는 국민의힘 핵심 지지층으로까지 이런 자기분열 증세가 확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윤석열이 국민의힘에 풀어놓은 독, '부정선거론'이 참으로 위험천만한 역할을 수행한다. '부정선거론'은 '지대 추구 정당'의 현실과 그 부정 심리 사이에서 자기분열을 회피할 유력한 기제가 된다. 내란을 준비하던 윤석열에게 그랬던 것처럼, 국민의힘을 여전히 지지하는 대중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국민의힘이 승리하지 못하는 선거는 모두 부정선거"라는 편리한 '논리(?)'가 만능 무기가 되어준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폭탄이다. "국민의힘이 승리하지 못하는 선거는 모두 부정선거"라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치르는 모든 선거는 이유 없이 '부정선거'로 치부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탄핵 인용 이후의 조기대선에서부터 '부정선거'라며 반대당의 승리에 불복하려 들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기본 질서에 대한 노골적 공격이다. 야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권력을 인수할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밑바탕에 놓인 전제이며 그간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그나마 '민주주의'라 불릴 수 있게 한 최소한의 지반이다. '부정선거론'은 다름 아닌 이 지반을 허물어뜨린다.

지금 국민의힘은 이 폭탄을 만지작거리며 미래 행보를 저울질하고 있다. 적어도 지지층 사이에 퍼져가는 '부정선거론'이라는 역병을 명확히 반박하지 않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자신이 한 축을 맡아온 양당 독점 정치에서 자기 쪽이 급격히 기울어가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혹시, 한국 사회 전체가 함께 폭파하길 바라는 게 아닌가.

이 상황에서 이런 공멸에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시민들이 취할 태도는 하나밖에 없다. 국민의힘에 '부정선거론'에 대한 입장을 단호히 물어야 한다. 국민의힘이 나서서 지지자들에게 '부정선거론'이 허위임을 설득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만약 국민의힘이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부정선거론'에 동조하는 정당은 이 땅의 정치에 발붙일 수 없다고, 국민의힘 따위의 위기가 우리 모두의 파국이 될 수는 없다고 명토를 박아야 한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공수처에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이 2차 조사 및 체포적부심 심문에 불출석한 16일 오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정문 앞에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이 지지자들 앞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 3,000원
  • 5,000원
  • 10,000원
  • 30,000원
  • 50,000원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은행 : 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