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전 기상캐스터 고(故) 오요안나 씨 사건으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가 다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언론과 방송 현업 노동자들이 "반복되는 희생 앞에 죄스럽다"며 책임을 통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3일 ''방송 비정규직 노동자 향한 차별·혐오', 이제 마침표를 찍자'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고인의 사례는 대한민국 방송 현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구조적인 비정규직 차별, 이로 인해 일상화된 비인간적인 무한 경쟁 체제, 사용자의 오만과 무책임까지 민낯을 다 드러내고 있다"며 고인 및 유가족을 애도했다.
고인은 지난 2021년 5월부터 MBC 기상캐스터로 일하다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휴대전화 유서를 통해 생전에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은 지난해 12월 말 고인의 동료를 대상으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으며 MBC에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고인의 사망 소식 및 유서가 뒤늦게 공개된 뒤 계약 관계상 사측인 MBC가 낸 입장문을 두고 "희생자와 유족,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시민들까지 모욕"했다면서 사과 및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언론노조는 "(MBC 사측은) 용납할 수 없는 가해와 책임 회피의 언어들을 나열"했을 뿐 아니라 "이 사안과 관련해 MBC 사측의 태도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향해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명백한 2차 가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인은 생전에 MBC 관계자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했고 사망 전에도 여러 불안 징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MBC 사측은 직장 내 괴롭힘의 발생 여부에 대한 인지, 이에 따른 후속 대처 등 필요 조치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MBC를 지키고자 나섰던 수많은 시민 대다수가 고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이며, 차별과 혐오에 저항해 온 노동자들임을 사측은 직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MBC는 지난달 27일 "고인이 당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직장 내 괴롭힘 등)을 신고했거나, 신고가 아니더라도 책임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사를 했을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실도 알지 못한 채 마치 무슨 기회라도 잡은 듯 이 문제를 'MBC 흔들기' 차원에서 접근하는 세력들의 준동"이라고 해 반발을 샀다.
언론노조는 특히 "고인의 죽음은 비정규직 노동자, 더 정확히는 방송산업 내 '위장 프리랜서' 노동자의 피눈물 나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외주화의 흐름 속에서 '병(兵)'과 '병'이, '정(丁)'과 '정'이 서로 경쟁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구조가 뿌리 깊다"며 "그 구조 속에서 노동인권은 땅에 떨어지고 득을 보는 건 오직 방송 사용자들"이라고 꼬집었다.
언론노조는 또 고인의 죽음을 방송사 탓으로만 돌리는 정치권을 향해 "법과 제도를 개선해 무분별한 비정규직 사용과 차별·착취를 규제해야 할 정치의 책임은 아무리 지적해도 모자람이 없다"며 "이번 사안에 입장을 밝혔던 여야 정치인들은 더욱 책임 있게 방송 비정규직 문제의 개선을 위해 입법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고인과 같은 비정규직 프리랜서도 방송사의 구조적 차별을 겪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고 이재학 PD를 언급하며 "이 PD가 세상을 떠났을 때 이 구조를 깨기 위한 중단 없는 투쟁을 다짐했"지만 "반복되는 희생 앞에 너무도 죄스럽다"면서 "책임을 통감하며 방송산업, 나아가 미디어산업 내 비정규직 노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14년간 일했던 이 피디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으며, 근로자 지위확인소송 1심 패소 후 "억울해 미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지난 2020년 2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오는 4일은 이 피디의 5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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