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법정에 선 독재자의 전형을 보여주다

[박세열 칼럼] 양심을 제거한 윤석열의 뻔뻔함

캄보디아에서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 학살을 저질렀던 독재자 폴포트에게 미국인 기자 네이트 세이어가 '뚜얼슬렝 구금 시설에서 1만6000명의 남성, 여성, 어린아이가 죽은 것을 아느냐'고 물었다. 폴 포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직책의 위치상 아주 중요한 사람들에 관한 결정만 내렸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 나는 그 기지(뚜얼슬렝)와 하위 계급을 감독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양심과 사명에 관한 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크메르루주의 또다른 주요 지도자 키에우 삼판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었으므로 당시 상황에 개입하거나 바로잡았어야 했다는 말은 쉬운 상상일 뿐이다. 정말로 내가 우리 민족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고 생각하느냐. 현실은 내게 아무런 힘도 없었다는 것이다."

실험심리학자인 에밀리 캐스파 교수는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력자, 그리고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피해자의 심리와 뇌 활동을 연구했다. 그의 저서 <명령에 따랐을 뿐>(Just following orders)에는 피해자에게 고통(전기충격 버튼)을 가하라고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자, 명령을 받아 전기 충격 버튼을 누르는 중간 관리자의 심리 상태에 대한 분석 실험이 나온다.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자(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전기 충격을 당하는 피해자의 심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느낌을 받았고, 명령을 수행하는 자는 명령의 책임감으로부터 벗어나 양심의 가책을 덜 느끼게 돼 전기 충격 버튼을 누르게 된다. 비극은 그렇게 발생하는 것이다.

크메르루주의 학살자들은 '나는 내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그 수하들은 '나는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캐스파 교수는 조직의 계층적 사슬이 복잡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조직에서 명령은 길고 다층적인 지휘 계통으로 퍼져 나간다. '우두머리'로부터 받은 명령은 다시 수 많은 명령자를 통해 다양한 행위자에게 전달된다. 군대에서 작전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면 작전과, 정보과, 군수과, 특수임무과 등에 다층적인 역할 수행 명령이 전달돼야 하고, 그 명령과 실행들은 달성하려는 목적에 복무하며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현대 관료제의 이런 복잡한 계층 사슬 구조는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력자와 그걸 수행하는 중간 관리자들의 양심의 가책을 덜어준다.

이 실험에서 중요한 것은 모든 이들이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권력을 당연시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받았을 때 그걸 기계처럼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명령을 내릴 때 큰 책임감을 느꼈고, 명령을 받아 수행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윤석열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을 때, 중간관리자인 수도방위사령관, 정보사령관, 특전사령관, 경찰청장 등은 첫째, '책임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고, 둘째, 실제 명령을 수행하는 이들이 겪어야 할 상황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따랐다. 하지만 피해자(국민과 국회의원)와 대면해 명령(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끄집어내라)을 직접 수행하는 하급자들(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은 이 명령의 부당성을 느끼고 양심의 가책에 빠지게 된다. 실제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킬링필드, 아우슈비츠 등 비극적 학살 사건들이 발생한 구조는 이런 식이었다. 그리고 비극적 학살 속에서도 '부당한 명령'에 저항했다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계엄을 선포하고 정치인을 잡아들이라는 최초의 명령을 내린 자, '여소야대' 정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윤석열은 '망상적 책임감'에 휩싸여 수하들에게 이런 저런 명령을 하달한다.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명령을 내린 윤석열은 머뭇거리는 부하들에게 "총을 쏴서라도", "4명이 한 명씩 데리고 나오도록", "2번, 3번 계엄을 할 테니" 머뭇거리지 말라고 다그쳤다.

역사 속 독재자와 학살자들도 모두 '망상적 책임감'에 휩싸였다. 그들은 역사를 좀먹고 있다는 유대인들을 쓸어버리려고 했고, 농민의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읽고 쓸 수 있는 자들'을 제거하려 했다. 수많은 명령 서류에 사인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이 자신의 위치에서 정당한 일이었다고 강변하거나, 권력의 정점에서 세세한 부분을 신경 쓸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 놓았다.

윤석열은 비상 계엄이 국회에 의해 저지된 후에도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기가 내린 명령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얼버무리거나, 대수롭지 않은 듯 뭉갠다. 한동훈 체포를 지시한 윤석열은 한동훈이 직접 찾아와 '왜 나를 체포하려 했느냐'고 항의하자 "그랬다면 '국회와 정당 등 정치활동 금지'를 명시한 계엄포고령 위반이니 체포하려 했을 것"이라고 뻔뻔하게 답한다. 포고령을 시행할 의지가 없었다고 하면서도, 한동훈 체포는 '포고령 위반'이니 그랬을 것이라며 남 일 보듯 말했다. 앞뒤 다른 말을 쉽게 하는 그는 망가진 논리 체계를 동원해 "민주당의 폭거를 알리기 위한 것이고 야당에 경고만 하려 했던 것으로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궤변으로 일관하더니, 또 말을 바꿔 "계엄 선포의 이유는 야당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에게 호소해서 (국회 독재에 대한) 엄정한 감시와 비판을 해달라는 것"라고 정정했다.

국회의원과 시민을 막으려 총든 군인을 투입하고, 정치인 체포조를 짜고, 국회를 폐쇄하려는 목적의 작은 명령들은 윤석열의 '큰 명령'에서 나온 가지들이다. 그의 모습은 마치 폴포트가 모든 학살이 내 책임이 아니고 자신은 중요한 인물들에 관한 결정만 내렸다고 항변한 것이나, 키에우 삼판이 "내가 그런 일(학살)이 일어나길 바랐을 거라 생각하느냐"고 뻔뻔하게 강변하는 모습들과 겹친다. 윤석열은 계층적 사슬의 복잡성 뒤에 숨어 있다. 형법상 내란죄를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거라 생각지도 못한 시민과 법 집행자들의 헛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그는 느끼지 못한다. 아니,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역사의 죄인임도 끝내 깨닿지 못할 것이다. 역사속 독재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윤석열은 보여주고 있다. 폴포트는 저 인터뷰를 마친 후 몇개월 지나 집에서 자다가 편안하게 세상을 떴다.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고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수준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태업했던 사람들, '명령에 따랐을 뿐'이란 변명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우린 내란 단죄를 향해 느리지만 뚜벅뚜벅 가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윤석열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조기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4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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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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