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12년째 대리운전을 해 온 대리기사다. 대리운전은 막장 직업으로 여겨진다. 심야에 음주운전을 방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사회에서 필수적인 일을 한다고 해서 "필수업무근로종사자"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고강도 감정노동과 열악한 처우로 인해 기피 직업이 된 지 오래다.
10년 전과 변함없는 운임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오히려 반토막. 기사 수는 두 배가 됐지만 대리운전 콜은 경기 침체로 20~30% 줄었다. 날마다 '의자놀이'가 진행되고 회사는 일감 경쟁을 이용해 기사들을 쥐어짜는 데 여념이 없다.
국토부 표준계약서가 있고 공정거래위원회 노무제공자 보호지침이 있지만 그림의 떡이다. 고객과 다툼이 있거나 회사에 항의하게 되면 문제 있는 기사로 찍히고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가 일감을 제한당하는 일을 겪지 않은 대리기사가 없을 정도다.
대리운전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서 근기법상 부당해고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회사는 악용해 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마련한 노무제공자보호지침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사측이 기사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리기사에게 떠넘기는 대표적 불공정 행위인 "관리비"는 관행으로 취급되고 거래상지위나 시장지배적 지위가 입증되지 않으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국토부 표준계약서는 안 지켜도 그만이라 있는지조차 모르는 회사들도 많다.
노동자라면 보장 받아야 할 권리들이 배제된 채 차별을 견뎌왔지만 그래도 노동조합이 있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희망했다. 그런데 12월 3일 윤석열은 그 희망마저 짓밟으려 했다. 노조를 약화시키는 것이 소명이라는 듯 (대리기사들의 롤모델인) 화물연대와 건설노조를 폭력배로 몰아 탄압하고 노조법 2, 3조 개정안을 거부권으로 무력화하고 노조 없는 노동약자 보호를 선심 쓰듯 흔들더니 이제 노동조합과 민주주의를 계엄을 통해 짓밟으려 했다.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 "사회혼란을 조장하는 파업, 태업, 집회행위를 금한다" 지금도 읽으면 소름이 돋는 '포고령 1호'의 이 명령들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노동조합을 찾아온 우리 플랫폼 노동자들 마음을 짓이기고 무너지게 만드는 플랫폼기업의 무시무시한 알고리즘을 닯았다.
필요하면 언제든 노동자를 쥐어짜고 자를 수 있도록 윤석열은 기업주의 소원을 폭력적으로 관철시키려 했다.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은 보다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이며 민주주의다. 윤석열이 날뛰는 세상은 민주주의도 희망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윤석열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염원하고 노동조합을 꿈꾸는 모든 노동자들의 요구와 닿아 있다.
문제는 윤석열을 몰아낸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와 노조 할 권리가 자동으로 복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윤석열의 폭력적인 노조 혐오, 부자 감세와 상위 1%만을 위한 각종 정책들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던 더 많은 윤석열들이 플랫폼을 비롯한 각종 기업에 임원으로 있고, 사회 곳곳의 고위직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석열 파면에 그치지 않고 사회 곳곳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더 많은 윤석열들을 남김없이 몰아내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선거와 합법적 절차를 통해서 또 다른 윤석열들이 노동조합을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권리를 박탈하는 일들을 소리 없이 진행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CJ, 삼성, SK 등 대기업 임직원을 고객으로 대리운전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청방이라는 대리운전 회사가 경조사비 강제 인출에 항의하며 사용 내역 공개와 단체교섭을 요구한 노동조합 조합원을 해고하는 일이 있었다. 그 대리기사는 두 자녀의 학비를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다. 해고 예고도 없었고 징계절차도 없었으며 퇴직금은커녕 가상계좌를 막아 잔금 인출도 동결시켰다. 문자로 온 해고 통지에는 "회사와 방향이 다르다"는 해고 사유가 붙었다.
회사는 자신들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는 대리기사를 처단해 다른 대리기사들에게 본보기로 삼으려 했을 것이다. 윤석열이 포고령을 통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을 처단하려 했던 것처럼 말이다. 노동조합이 부당노동행위로 구제신청을 하고 고용노동청에 고발했지만 회사는 아무런 해명도 없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답변서 제출을 예고한 상황이다.
집회장의 누군가 말한 것처럼 플랫폼 노동자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계엄 상태였다. 운임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물어봐서도 안 되고 따지는 건 더 안 된다. 취객에게 봉변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혹여 고객의 맘을 상하게 하기라도 했다면 계정정지가 떨어진다. 근로기준법이 적용 안 된다며 부당해고로 다툴 수도 없고, 노조를 만들어 교섭을 요구하니 문자 하나로 먹고 살 길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퇴진 후에도 포기할 수 없다. 계엄 포고령과도 같은 알고리즘을 통해 우리를 지배하는 거대 플랫폼기업, 노조 만들었다는 이유로, 또는 고객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실업자를 만드는 또 다른 윤석열을 몰아내고, 모든 노동자들이 차별 없이 근로기준법의 보장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한남동 윤석열 체포 집회에서 만난 대리기사들은 "밤새 혹한의 아스팔트 위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자리를 지키는 2030들을 두고 도저히 갈 수가 없다. 윤석열이 저 젊은이들의 미래를 망치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생계를 뒤로 하고 거리를 지켰다. 윤석열이 체포되는 날 축하 전화를 받았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게 되었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표정이 전화기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한 응원봉 동지는 자유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성이며 노동자의 자녀이고 성소수자이자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입니다. 더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라는 이유로 특수고용·플랫폼·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천대받는 세상에서 살지 않겠습니다. 윤석열 탄핵 이후의 세상은 차별받지 않고 천대받는 이 없이 모두가 존중받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세상입니다. 연대해 함께 만들어 갑시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노동자와 학생과 시민의 연대와 공동행동이 윤석열 탄핵 이후에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거대한 운동으로 지속해 나가길 바란다. 대리운전기사들도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그 운동을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길로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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