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공원에서 다시 만난 방영환 열사
몇 달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일터에서 2025년 새해를 맞아 1월 2일, 모란공원을 찾았다. 전태일 열사를 비롯해 많은 열사들의 무덤과 동상, 묘석을 보며 이 많은 열사들을 떠나보내며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방영환 열사 무덤 앞에서는 유독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얼마나 괴롭고 아프셨을까, 또 얼마나 서글프셨을까 굳이 애쓰지 않아도 너무나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방영환 열사는 해성운수 소속 택시 노동자였다. 그는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다 해고되었고, 사납금 제도에 반대하고 그런 자신에게 온갖 불이익과 괴롭힘을 행사하는 사측에 맞서 싸우다 분신하여 택시 노동자들이 겪는 부당함을 세상에 알렸다. 사납금 제도는 간단히 말해 법인 택시 기사가 당일 수입금 중 기준금을 회사에 납부하도록 하는 제도다. 한국에서 사납급 제도는 2020년 1월부터 폐지되었지만 택시 회사들은 변종 사납금 제도라 할 수 있는 '기준 운송 수입금' 형태를 고안해 사납금과 동일한 부당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방영환 열사는 2023년 9월 26일 스스로 자신의 몸을 불태우며 산화했다. 그런데 사납금제 철폐를 주장하며 목숨을 잃은 택시 노동자들이 1980대 이후 2023년까지 50여 명에 이른다. 끊임없이 저항했지만 끝내 분신을 선택하기까지 방영환 열사는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고 또 슬펐을까. 그리고 과연 지금 택시 노동자들은 노동을 정당하게 인정받고 있을까.
명동에서 만난 살아 있는 열사들
모란공원에서 일정을 마치고 명동에 있는 세종호텔 앞으로 향했다. 오늘은 '세종호텔 신년투쟁의 밤' 집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세종호텔 사측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악화를 핑계로 내세우며 실제로는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일방적인 해고를 단행했다.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은 3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단단하게 싸움을 이어 나가는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오늘도 온화하면서도 강한 표정과 목소리로 정당한 투쟁을 이어갔다. 세종호텔 집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함께하는 지혜복 교육 노동자도 볼 수 있었다. 지혜복 교육 노동자는 30년 넘게 교단에 섰던 선생님으로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 하고 공익제보했다가 이를 외면하는 학교와 교육청에 의해 부당전보 및 해임을 당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혜복 노동자도 당당하면서도 부드러운 모습으로 집회에 모인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런데 낮에 방영환 열사를 만나고 와서였을까. 세종호텔 노동자들도, 지혜복 노동자도 서글프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지지하고 연대하고 함께 싸우는 여러 노동자가 주변에 많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서글픔이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찬란하게 빛나는 응원봉이 진정한 빛이 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사실 '전 대통령' 혹은 '씨'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현재 공식 직함이 '대통령'이므로)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난 후 온 나라 곳곳이 아수라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크리스마스도 송년회도 신년회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조차도 낯설고 이질적인 그 무엇인가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반짝이는 응원봉을 흔들며 탄핵과 민주주의를 외치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또 한 번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런데 반짝이는 응원봉 자체가 우리의 빛이 될 수는 없다. 응원봉이 우리의 빛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아직은 그렇지 못하는 듯하다. 그래서 세종호텔 노동자들도 지혜복 노동자에게서도 서글픔이 어려 보였던 것이 아닐까.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한덕수 국무총리가 탄핵된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자본가, 기득권자가 만들어 놓은 법 테두리 안에서 운영되는 민주주의 내에서 다수 노동자 민중이 원하는 민주주의와 공정한 세상이 구현될 수 있을까? 2025년, 이제 살아 있는 우리가, 열사들이 진정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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