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국회에) 못 들어갔냐" "본회의장으로 가서 4명이 1명씩 들쳐업고 나오라고 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2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기소하면서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사태 당시 발언 내용이다. 이 발언들을 접하면서 떠오른 말이 하나 있다. '지랄발광.' 천주교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가 지난 9일 대전 대흥동 성당 미사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를 표현한 이 말은 비록 비속어지만 상황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지랄'은 원래 뇌전증(간질)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뇌전증 증상이 몸을 떨며 데굴데굴 구르는 것에 빗대 '분별없이 법석을 떠는 행위'를 가리키는 욕설이 됐다. '발광'은 미친병의 증세가 밖으로 드러난 비정상적이고 격한 행동을 뜻한다. 김용태 신부는 한국 첫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일한 후손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하다 사전까지 찾아보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을 두고는 검찰총장 시절부터 '저돌적'이라는 표현이 늘 따라다녔다. '저돌'이라는 말에는 과감, 용감, 정면 돌파 등의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난폭함, 공격성, 무모함 등의 뜻도 내포돼 있다. 내란 사태의 저돌은 불행히도 후자였다. 비상계엄 당시 윤 대통령의 행동은 저돌(猪突)의 저(猪)가 뜻하는 동물의 속성 그대로였다. 민주주의 수호에 나선 시민들이 쏜 불화살을 맞고 길길이 괴성을 지르며 날뛰는 야수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진다.
공교롭게도 검찰의 발표가 나온 그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 의원들이 우원식 국회의장 앞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하는 모습이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텔레비전 하단에 긴급 뉴스 자막이 떴다. "윤석열, 수방사령관에게 '총 쏴서라도 국회 진입' 지시". 국회에 '발포 명령'을 내린 내란 수괴를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르는 요란한 함성, 그리고 그 소음을 배경음악으로 깔고 등장한 경천동지할 뉴스, 이 그로테스크한 조합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다시 '열혈사제' 김용현 신부의 표현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지랄발광 이중창'.
국민의힘은 한술 더 떠서 검찰의 공소 내용을 비판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입장문을 언론에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윤 대통령이 국회를 향해 총을 쏘라고 지시하고, 국회를 무력화시킨 뒤 별도의 비상 입법기구를 창설하려는 의도가 확인됐다는 검찰의 공식 발표가 나왔는데도 국민의힘은 아무런 분노도 충격도 느끼지 않는다. 대신 검찰 발표를 "픽션" "여론선동" 등으로 비판한 범죄자의 '확성기' 역할을 자처했다. 아직도 집권 여당이라고 우기는 국민의힘의 이런 엽기적인 정신상태를 뭐라고 표현해야 좋은가. 속된 표현을 거듭 쓰는 게 미안하지만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총체적 지랄발광'.
이뿐만이 아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등 국무위원 14명은 지난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한덕수 대행 탄핵소추 재고를 요구하고 나섰다. 내란 사태 이후 국무위원 공동 대국민사과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갑자기 우르르 몰려나와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는 내각 전체에 대한 탄핵소추와 다름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데 이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국민 대다수의 마음속에 현 내각은 이미 탄핵된 상태다. 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국무위원들을 모조리 쫓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도 간신히 참고 있는데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나오니 도리 없이 또 말하련다. "지랄들을 떨고 있네."
내란 옹호 세력의 '집단적·총체적 지랄발광'은 단순한 정신분열증세가 아니다. 그 저변에는 명백한 전략과 노림수가 있다. 일종의 '카오스(chaos) 전략'이다. 전통적인 군사 전략이나 정치 전략과 달리 '질서를 무너뜨리고 예측 불가능성과 혼란을 조성해 상대를 압도하거나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전략'이 카오스 전략이다. 주로 힘이 열세인 '비대칭 전력'을 가진 국가나 조직이 구사하는 전략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차고 넘치는 범죄 행위 증거, 국민의 압도적인 탄핵 여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싸늘한 시선 등 모든 면에서 내란 옹호 세력은 심각한 열세의 '비대칭 전력'이다. 이런 상황에서 찾은 게 카오스 전략이다. 예측 불가능성과 혼란을 조성하고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려 반전의 기회를 찾으려는 것이다. 국가의 신인도가 한없이 추락하든, 제2의 외환위기 사태가 닥치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한사코 거부하는 것은 카오스 전략의 대표적인 예다. '9인 완전체'를 만드는 것이 재판의 정당성을 보장하고 헌법과 상식에 부합하는데도 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정족수 부족 사태 등을 이끌어 뒤죽박죽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예측 가능성은 이들의 최대의 적이다. 카오스 전략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분탕질 전략'이다.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흐트러뜨리는 행위'가 바로 분탕질이다. 지금 내란 옹호세력은 헌법재판소의 정상적인 운영에 한사코 분탕질을 치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내란죄는 공수처 수사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버티는 것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은 공수처와 경찰, 국방부가 참여하는 공조수사본부가 체포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서도 "권한 없는 기관에 의한 체포영장 청구"라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 평생 검사 생활을 했다는 사람이 종국에는 요리조리 법망을 피하려는 '법꾸라지'의 추한 모습을 보인다. 국민의힘은 내란 특검법도 거부하고 있다. 수사 기관들의 불필요한 경쟁을 막고 수사 관할권의 법리적 문제를 말끔하게 정리하기 위해서도 특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질서보다는 혼란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카오스 전략의 선봉에는 조선일보가 있다. '못난 정치가 고조시킨 경제 불안, 외환 위기급 충격 올 수도' '29건 '연쇄탄핵병' 민주당도 이 전체 사태에 큰 책임 있다' '헌법도 예측 못 한 막장 정치 갈등, 출구가 안 보인다'…. 최근 잇달아 나온 사설 제목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혼란과 위기의 근본 원인이 윤 대통령의 내란 범죄에 있음을 외면한 채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기 바쁘다. 정치권 공동 책임을 탓하는 비분강개한 문장 뒤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두둔하는 말이 숨어 있고, 여야의 타협을 촉구하는 점잖은 훈계 뒤에는 탄핵을 반대하는 속마음이 감춰져 있다.
'최 대행 대행도 재판관 임명 부정적, 여야 타협 불가피'란 조선일보 사설은 내란 사태에 대한 이 신문의 근본 인식을 보여준다. '대행 대행'이라는 표현이 헌법 규정에도 맞지 않는 '선전선동용 말만들기'라는 것은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헌재 재판관 임명 문제에 '여야 타협'을 요구하는 것은 '임명하지 말자'는 뜻임은 삼척동자도 안다. 특히 주목되는 말은 "3명이란 숫자는 헌재의 대통령 파면 재판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3명 중 2명이 민주당 추천이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행위가 과연 민주당 추천 헌재 재판관은 파면에 찬성하고, 국민의힘 추천 재판관은 반대할 그런 사안인가. 하기야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찬양하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사회혼란으로 폄하하고, 계엄하 언론인 체포를 앞장서 옹호한 게 이 신문이다. 조선일보의 내란 옹호 전통은 유구하게 살아 숨쉰다.
이제 카오스 전략에 쐐기를 박을 때가 왔다. 그 첫걸음은 법원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으니 이에 따라 엄정한 법 집행을 하는 일이다. 내란 범죄자는 현직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체포·구속하는 것이 법의 공정이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대통령을 단호히 응징해 국가를 원래 상태로 돌려놓자는 게 평범한 대다수 국민의 염원이다. 지금이야말로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을 명징하게 구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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