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2.26 대국민담화를 통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사실상 거부한 데 대해 여야 정치권과 언론에서 비판이 빗발치고 있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수석으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는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27일 불교방송(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전날 한 총리의 담화에 대해 "궤변", "몽니"라며 "진짜 어떤 무속적인 충고를 받는 것 아닌가"라고까지 했다. 그는 "한 총리가 본래 그런 분이 아닌데, 무속에 젖어있는 사람들과 많은 조언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박 의원은 "현재 일부 여권에서 나오는 '여권 대통령 후보가 없다. 그러니 한덕수 대행을 대권 후보로 내보낸다'라는 설도 있다"며 "자기가 대통령 하려고 혼란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저는 생각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전날 한 총리 담화 내용에 대해 "헌법재판관 세 분은 인사청문회에서 적격으로 판단했고 국회 추천, 본회의 인준을 받았다. 그렇다면 임명하는 것이 순서인데 여야 합의? 헌법에도 국회법에도 그러한 법은 없다"며 "한 총리도 총리 인준을 받을 때 여야 합의가 아니라 표결을 해서 다수가 나온 것이고 반대도 있었다. 그런다고 총리가 안 되느냐? 과반수 이상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그는 "법적 하자도 없고, 헌재에서도 대법원에서도 임명해야 된다는데 이런 생뚱맞은 소리를 하는 것은 진짜 일부에서 의심하는 '여권의 대통령 후보로 자리매김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의심이 간다"며 "제가 오늘 아침 신문을 다 봤다. 어느 신문 하나도 한 대행을 탓하고 있지 잘했다는 데는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27일자 <중앙일보>, <동아일보> 사설은 한 총리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았다. <중앙>은 "한 대행의 재판관 임명 보류로 헌재 정상화는 암초에 걸렸다. 재판관 임명을 두고 여야가 맞선 상황에서 한 대행은 결과적으로 여당의 손을 들어줬다"며 "대다수 학계는 물론 헌재와 대법원에서도 '권한대행이 국회 추천 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는 견해가 이어졌지만, 한 대행은 한사코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임명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여당인 국민의힘은 계엄사태 이후 지연 전술로 일관해 왔고, 대다수 여당 의원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에 불참했고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도 반대했다"며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하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겠다”는 한 대행의 주장은 공염불과 다를 바 없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 "한 대행이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헌재 정상화를 위해 한 대행을 바꾸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했다.
<동아>도 '비현실적 합의 핑계로 헌재 재판관 임명 피한 韓의 무책임' 제하 사설에서 "야당의 탄핵 공세에도 ‘여야 합의 우선’을 내세워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한 대행의 태도는 소극적인 미루기를 넘어 적극적인 버티기에 들어선 모양새"라며 "한 대행이 주장하는 여야 합의는 듣기엔 그럴듯한 얘기지만 그런 합의가 우리 정치권에 기대하기 어려운 비현실적 희망이 된 지는 이미 오래다. 그런 정치 현실을 한 대행이 모를 리 없는데도 여야 정치권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그간 대화와 타협은 거부한 채 야당에 책임을 미루다 결국 극단적 위헌 행위까지 벌인 윤석열 대통령식 행보를 연상시키기도 한다"고 한 총리를 비판하며 "실현 가능성이 없는 '여야 합의'를 핑계로 내건 그의 권한 행사 자제론은 결국 책임 회피이자 소수 여당이 반대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기독교 계열 보수성향 매체인 <국민일보>도 "여야 합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도 한 대행이 정치권의 합의를 재판관 임명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본인의 책임을 정치권에 떠넘긴 것"이라며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도 한 대행에게 임명권이 있다는 공식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한 대행은 헌재를 온전한 9인 체제로 만들어야 탄핵심판 결과가 나온 뒤에도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날 국회 의결로 한 대행이 그런 체제를 만들 수 있게 됐는데도 이를 회피한 것은 역사적인 책무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친한계에서도 박 의원과 마찬가지로 한 총리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선언에 어떤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어린 시선이 나왔다.
김종혁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은 이날 문화방송(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굉장히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결국은 역사적으로 평가가 될 것"이라고 한 총리의 전날 담화 내용을 비판하면서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야당에게 탄핵을 당해서 물러난다면 나중에 나의 어떤 정치적인 입지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비대위원은 "한 대행은 본인이 임명을 거부하면 탄핵될 거라는 것을 너무나 불 보듯 뻔하게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어차피 권한대행으로 계속 있어봤자 좋은 소리 들을 건 하나도 없고, 앞으로 첩첩산중 어려운 과제만 남아있고, 본인이 만약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 윤 대통령 탄핵에 본인이 도움을 줬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을 가능성이 크고, 그러니까 빨리 사라지는 게 어떻게 보면 개인으로서는 굉장히 편한 선택이고 책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김 전 비대위원은 한 총리의 대권 도전설에 대해 "지금 친윤이 내세울 만한 대권후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니 그런 면에서 보면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아서 물러난 한 총리가 대안으로 떠오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을 하고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며 "그게 국민적인 용납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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