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계엄으로 확인된 민주주의의 위기, 복지국가의 위기이기도…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민주주의와 복지국가, 복지국가와 민주주의

지난 12월 3일 우리를 덮친 한 밤의 비상계엄은 대부분의 시민들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몇 차례의 정권교체를 거치며 적어도 우리나라의 절차적 민주주의는 안정됐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가 복지국가를 이야기하고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게 된 것 역시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는 인식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간의 개헌이나 권력구조 논의 역시 민주주의를 고도화하겠다는 생각이었지, 민주공화국 자체가 폭력으로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연구자로서 내가 민주주의보다는 복지국가에, 정치보다는 복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온 것 역시 이제는 어느 정도 안정화된 우리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복지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복지국가에 대한 정의는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정의는 이 점에 동의한다. 복지국가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성립하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래전 김대중 대통령이 천명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야말로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슬로건이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연구들이 복지국가를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혹은 양자의 양립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모델이라고 이야기한다.

복지국가는 민주주의를 전제로 성립한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대기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집권자는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에 국민들의 요구나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고, 그 결과 적어도 대기근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마련한다.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민중의 정치적 권력이 보장되지 못할 때 정치권력은 다수의 이해보다 소수 기득권자의 이해에 더 민감해진다. 복지국가가 결국 사회의 생산물은 다수를 위해 분배하는 것이라고 할 때, 그것은 민주주의 위에서 성립한다.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관계가 이처럼 밀접하기에 우리가 이 겨울에 겪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복지국가의 위기이기도 하다. 복지국가가 목표로 하는 것이 시민들의 경제적 안전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고 보면, 민주주의의 문제는 곧 민생의 문제다. 누군가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 결과 비상계엄은 해제됐고, 대통령도 탄핵 심판대에 섰기에 이제 문제는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대통령 탄핵이 다음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를 앞당길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제는 시민들의 시간이 지나고 정치인들의 시간이 다가온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문제가 민생의 문제라는 시각에서 보면, 비민주적 폭력으로 민주주의를 정지시킨 자를 처벌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시는 이런 폭거가 발생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 역시 시민들의 삶의 문제다.

복지국가는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성립하지만, 다시 민주주의를 안정화한다. 정치학자 아담 셰보르스키는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는 경제적 평등을 실현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경제적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복지국가는 여기에서 기능한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 경제의 역동성 뒤에 숨어 있는 빈곤과 불평등을 관리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가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이는 다시 민주주의를 안정화하는 힘이 된다. 복지국가의 역할이 없다면 시장의 자기파괴적 속성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까지 위협할 수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발전된 민주적 자본주의 국가들이 그 유형이나 성격은 달라도 일종의 복지국가라는 통치양식을 취하게 되는 것은 복지국가의 이런 역할 때문이다.

이번 비상계엄과 내란이 직접적으로 불평등과 관계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무리한 주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시민들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그 결과 정치권력 가까이에 선 이들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공간을 넓힘으로써 민주주의를 취약하게 한다. 이번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뿐 아니라 복지국가와도 무관하지 않은 까닭이다. 이제 우리는 내란을 주도하거나 종사, 가담, 방조한 이들을 처벌하는 것을 넘어 우리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한 방안을 숙의해야 한다. 여기에서는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대통령의 자의적 권한을 제한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1차적 과제이겠지만, 복지국가를 통해 불평등을 개선하고 정치적 민주주의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것 역시 이 겨울에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다.

ⓒ프레시안(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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