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에 진행한 국정감사의 회의록이 공개되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논의의 초점이 된 기업 중 하나가 쿠팡이었다. 국회 환노위와 국토위, 2개 위원회에 쿠팡 계열사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해서 의원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답했다. 질문의 예리함에 비하면 쿠팡 증인들의 답변은 모호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회의록은 쿠팡의 영업 및 노동 관행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생각보다 많이 담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쿠팡 국회 청문회 개최를 촉구하는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을 달성했다. 청문회가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되기를 바라며, 2024 국정감사 회의록 중 쿠팡 관련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본다.
○지난 5월 쿠팡 물품을 배송하다가 숨진 고 정슬기님. 10월 10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재 판정을 받았다. 바로 다음날인 10월 11일, 홍용준 쿠팡CLS 대표는 국감 자리에서 고 정슬기님과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시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지난해 군포의 어느 빌라에서 새벽배송 중 숨진 쿠팡 하청노동자의 유가족에게는 사과했을까? 안 했다. 제주캠프에서 심야노동을 하다 쓰러져 숨진 고 김명규님의 유가족에게는 사과했을까? 안 했다.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고 정슬기씨가 "하루를 통째로 쉴 수 있는 날은 없었"다. "주 7일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고인이 쉬지 못했던 이유는? 무리해서 배송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빼앗아버리는 쿠팡 특유의 '클렌징'이라는 제도 때문이다. 쿠팡CLS가 제시한 수행률 등의 목표치를 충족하지 못하면 대리점의 구역을 회수해서 다른 대리점에 준다. 생계를 건 땅따먹기 경쟁이 계속 벌어지기 때문에 배송기사들의 과로를 유발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홍 대표는 클렌징이 "단기간에 한두 번 배송을 안 한다고 해서 조정이 되는 것이 아니"고 6주간 연속해서 배송이 안 될 경우에 "영업점과 협의를 해 가지고 노선 조정을 하는 그런 제도"라고 답변했다. "6주간 배송 차질이 생기는 것을 계속 방치하게 되면 기사의 과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계약을 해지하지 않고 "구역만 조정"한다는 것이다. 염태영 의원은 "계약기간 내 이런 행위를 하기 때문에 사망 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국정감사 직전에 쿠팡은 클렌징의 기준 10가지 중에 6가지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남은 4가지 중 "월 수행률 95% 미만"이라는 조건이다. 현실적으로 수행률 95%를 맞추려면 다른 택배사가 하지 않는 주간 2회전 배송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수행률 조건이 그대로인 이상 클렌징 제도도 그대로라는 지적이다.
○강득구 의원은 클렌징을 "비정하고 잔인한 제도"라 불렀다. 정혜경 의원은 1990년 도미노피자가 30분 배달 제도를 시행했다가 산재 사고가 발생했고 2011년에 결국 그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설명하면서, 쿠팡이 노동조건을 13년 전으로 돌려놓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른 택배사들은 2021년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 노동시간을 주 60시간으로 제한하고, 작업시간은 하루 12시간으로 제한한다. 그래도 고용노동부 지침의 과로사 산식으로 계산하면 89.4시간이다. 그런데 쿠팡은 그 사회적 합의의 기준마저도 적용하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쿠팡 배송기사들은 주 평균 64.6시간 노동을 한다.
○쿠팡은 내년부터 격주 주5일 야간근무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쿠팡의 홍보 문구에 따르면 "업계 최초 주5일제 도입"이다. 그렇게 바뀌더라도 택배기사들의 노동시간은 주 50시간이고, 야간노동까지 계산하면 과로사 기준을 충족한다.
○고정 야간노동의 문제도 지적되었다. 염태영 의원은 "연속적이고 고정된 야간노동"이 멜라토닌 생성을 감소시키고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인다고 지적했다. 김위상 의원은 유럽연합에서 2023년에 야간 업무를 8시간으로 제한한 근로시간 지침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박홍배 의원은 "야간배송 금지법을 만들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감에 나온 고용노동부 차관은 "원론적으로"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정부가 지금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다 말씀드리기보다는 사회 주체들이 좀 모이셔 가지고 이런 부분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작업들을 같이 해 나가야 되지 않느냐"고 답변했다.
○2020년부터 4년 동안 쿠팡과 쿠팡CLS의 평균 재해율은 5.9%에 달한다. 2021년에는 11%를 넘겼다. 건설업 재해율이 1.45%고 산업 전체 재해율이 0.66%인 것과 비교하면 쿠팡과 쿠팡CLS의 재해율은 지나치게 높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쿠팡 택배 일을 하다가 사망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국토위에서 홍 대표는 "언론에 보도된 14명 숫자는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송기헌 의원은 "16명"이라는 숫자를 제시했다. 2023년 쿠팡CLS에서 415건의 산업재해가 발생했는데 근로감독은 했을까? 안 했다.
○작년 국감에서 홍 대표는 쿠팡 배송인력의 산재보험 가입률이 91%라고 답변했다. 올해 국감에서는 이것이 위증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올해 7월 근로복지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쿠팡CLS 물류센터 위탁업체와 위탁대리점의 산재보험 미가입률이 각각 91%와 78%에 달한다.
○고 정슬기 노동자의 카톡도 국정감사장에 등장했다. 개인사업자 자격으로 대리점과 계약한 퀵플렉서에게 쿠팡CLS가 업무 지시하면 불법이다.
박정 의원 : 이런 사례가 있어요, 없어요? 고 정슬기 씨한테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증인 홍용준 : 저렇게 지시하는 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카톡을 통해 CLS직원이 지시한 화면이 공개되었는데 회사에서는 지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안호영 의원은 회사 지시에 어긋나게 "계속 하고 있는 직원"에 대해 징계 같은 조치가 있었냐고 물었다. 특수고용 노동자인 쿠팡 퀵플렉서의 지위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되었다. 과연 퀵플렉서는 쿠팡의 통제와 지시로부터 자유로운가? 고용노동부 차관은 "개별 사안에 대해서 좀 더 살펴봐야 될 것" 같다고 답변했다.
○미국 아마존 이야기도 나왔다. 올해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에서는 아마존 위탁업체의 택배노동자에 대해 아마존이 공동사용자라고 판단했다. NLRB의 판정에 따르면 아마존은 택배노동자들과의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 김태선 의원은 "똑같은 구조 아닌가요?"라면서 쿠팡에도 노조법 2조의 실질적 지배력 부분을 적용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고용노동부 차관은 "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답했다.
○택배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핵심은 분류작업을 기사에게 전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의 설문 결과에 따르면 쿠팡 배송기사들은 하루 평균 3시간 24분 동안 분류작업을 한다. 그래서 국토위 윤종오 의원이 영상을 보여주면서 분류작업에 관한 입장을 물었다.
윤종오 위원 : 이게 분류작업 아니에요?
증인 홍용준 : 위원님, 제가 말씀드린 사회적 합의….
윤종오 위원 : 이거 분류작업이냐고, 아니냐고?
증인 홍용준 : 저희는 저것을 사회적 합의에서 얘기하는 분류작업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환노위에서 강득구 의원도 물었다.
강득구 위원 : 분류작업은 배송기사들의 업무영역이 아니라고 했지요. 얘기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증인 홍용준 : …
강득구 위원 : 얘기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증인 홍용준 : 제가 얘기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의견이 엇갈렸다. 영상으로 작업 장면을 같이 봤는데도 의원들은 분류작업이라고 하고 증인은 분류작업이 아니라고 했다. 의원들은 롤테이너에 "A, B, C, D가 섞여서 오기 때문에 나눠서 차에 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홍 대표는 4명이 나누는 게 아니라 최대 2명이 나눈다고 했다. 또 홍 대표는 쿠팡 택배기사들이 롤테이너의 짐을 차에 싣는 작업이 1.7~2시간 걸린다면서 다른 택배사의 기사들이 상품을 차량에 적재하는 시간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4명이 하면 분류작업이고 2명이 하면 분류작업이 아닌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의원들은 쿠팡 택배기사들의 '분류작업'이 공짜 노동이고 착취라고 주장했다. 이학영 의원은 이 공짜 노동으로 쿠팡CLS가 벌어들이는 돈을 계산했다. "하루 평균 3.2시간"이라고 치고 원래는 시간당 1만1500원의 수수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계산. 퀵플렉서 1만2000명이 주 6일 근무를 한다면 주당 105억원 정도. 쿠팡CLS는 연 1271억원의 이익을 가져간다.
○"건설 및 제조업에서나 있을 법한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쿠팡에도 있는 것 아십니까?" 김주영 의원이 질의했다. 쿠팡 하청업체의 일을 대행하는 또 다른 하청업체. 가짜 3.3 형태의 개인사업자 계약. 이런 구조에서는 노동자가 부당한 위약금 제도로 피해를 입거나 일방적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등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쿠팡이 노동자 동의 없이 퇴직금 지급 대상을 줄였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쿠팡풀필먼트(쿠팡CFS)가 2023년 5월 취업규칙을 변경하면서 법에 규정된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애초에 퇴직급여법 위반인 내용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적정으로 승인해 주고, 2년째 160여건의 미지급 신고를 받고도 27건에 대해 법 위반 없음으로 처리했다. 고용노동부 부천지청에서는 시정 지시를 했지만 쿠팡풀필먼트는 이행하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도 진행되지 않는다. 김주영 의원은 "보이지 않는 힘이 강력하게 작용하는 것 아닌가"라고 물었다. 여기에 김형동 의원이 간단하게 한 마디 보탰다. "일했는데 퇴직금 안 주면 법 위반입니다."
○쿠팡 물류센터의 냉난방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이학영 위원 : 저 안에까지 이동식 에어컨이 들어갑니까?
증인 정종철 : 지금 최우선적으로 직원들이 상주해서 계속 같은 곳에 근무하는 곳에는 냉난방 시설을 완비하고 있습니다.
이학영 위원 : 언제 한번….
증인 정종철 : 그리고 위원님께서 말씀 주신 그 구역에는 직원들이 힘들면 쉴 수 있도록, 1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곳에 냉난방이 완비된 쿨존(Cool Zone)을 설치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상주해서 계속 같은 곳에 근무하는 곳"은 어딜까? 그러면 계속 이동하며 물건을 나르는 노동자는 어디서 열을 식힐까? 쿨존이 있다는데 그 쿨존을 이용할 휴게시간도 주어질까? 관리자 눈치를 보지 않고 쿨존을 이용할 수 있을까? 내년 여름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온열질환 환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시민사회는 '쿠팡 블랙리스트'라 부르고 쿠팡은 '인사평정 자료'라 부르는 그것. 쿠팡은 지금도 그것을 작성하고 있다.
박해철 위원 "쿠팡CFS에서 올해 2월 MBC가 방송한 사항인데 쿠팡 블랙리스트 건입니다. 혹시 이 내용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 만든 거 인정하십니까?"증인 정종철 "예, 인사평정 자료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용우 위원 : 그러면 현재도 이런 방식으로 인사 관리하고 계시나요?"
증인 정종철 : 방식은 다릅니다만 유사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용우 위원 : 유사하게 하고 있습니까?
증인 정종철 : 예.
이용우 위원 : 블랙리스트가 계속되고 있네요.
쿠팡은 블랙리스트 폭로와 관련해서 변호사, 활동가, 제보자 등을 고소했고, 지금까지도 고소를 유지하고 있다.
○"쿠팡은 한국 기업입니까, 미국 기업입니까?" 김태선 의원이 물었다. 홍 대표는 "한국에서 고용 창출 2위 기업"이고 "수조 원을 한국에 투자한 한국 기업"이라고 답했다. 고용노동부 차관은 "미국 기업이고 어쨌든 간에 국내에서 많은 고용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갖고 있는 기업"이라고 답했다. 김태선 의원은 쿠팡 Inc.(미국 소재)가 주식회사 쿠팡(한국 소재) 지분을 100% 가지고 있으므로 "미국 기업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주식회사 쿠팡의 자회사 대표 두 명이 국감에 출석했지만 김범석 의장을 부를 수 없다는 점에서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박홍배 의원은 쿠팡 창업자 김범석 의장의 영상을 틀었다. 미국 이름 Bom Kim, 이사회 의장으로서 시총 50조원의 쿠팡을 실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새벽배송 뒤에는 지금도 자기 자신을 로켓배송의 연료로 태우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쿠팡은 이들을 일용직, 단기 기간제, 단시간 노동, 특수고용 노동자로 헐값에 사서 물류를 돌리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서는 혁신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박홍배 의원의 아내는 최근 10단계에 걸쳐,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쿠팡 멤버십을 해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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