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얄팍한 정략적 계산' 포기하도록 더 많은 시민이 모이자

[시민건강논평]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들의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아직도 12월 3일, 그날 밤의 충격과 공포, 분노가 가시지 않은 듯하다. 대통령이 국회와 시민을 향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킬지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그동안 야당 일각에서 계엄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수차례 제기됐지만, 2024년 대한민국에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계엄군에 맞서 국회를 지킨 용감한 시민들 덕분에 신속하게 계엄령이 해제될 수 있었지만, 만약 내란 모의 세력의 뜻대로 국회가 통제되었다면 우리는 지금 계엄 통치를 받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번 '12·3 내란 사태'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체제인지 고스란히 드러내 보였다. 정치적(절차적) 민주주의가 일정 수준 달성되었으니 독재의 위험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합법적 절차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알고 보니 매우 비뚤어진 역사관과 폭력적 성향을 가진 극우 파시스트일 때, 그리고 여소야대 국회 지형 속에서 이번처럼 개인의 부정·비리 문제로 궁지에 몰릴 경우 계엄선포권을 사용해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폭거를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폐기되는 장면을 지켜보며 다시 한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만이 넘는 시민들이 국회 앞에 모여 탄핵을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은 누가 봐도 명백한 내란 범죄자를 비호하며 스스로 반헌법·반민주 정당이라는 굴레를 뒤집어 썼다. 당리당략을 좇아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만으로 이미 국회의원·공당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봐야 한다. 머지않아 헌정 질서를 파괴한 군사반란 행위에 동조·가담한 것에 대한 법적·정치적·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현재 시급한 문제는 아직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지 않은 탓에 그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또 다시 내란을 획책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점이다. '2선 후퇴론'이나 '질서 있는 퇴진론'은 모두 권력을 지키려는 비열한 술책에 불과하다. 비상한 시국에는 비상한 대응이 필요한 법.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이 '미치광이' 운전사를 하루빨리 운전대에서 끌어 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절박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여당이 얄팍한 정략적 계산을 포기하도록 만들려면 더 많은 시민들이 대통령 퇴진과 탄핵 요구에 동참해야 한다.

오랜 시간 추위에 떨며 촛불 집회에 참여한 많은 시민들의 집합적 행위는 친위 쿠데타를 일으킨 불의한 정권에 조그마한 정당성도, 잠시의 시간도 줄 수 없다는 절박함 그 자체이다.

급변하는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몰락은 시간 문제라고 판단한다. 시대착오적인 계엄령을 선포한 그 순간 절대 다수 시민들의 마음 속에서 이미 대통령은 탄핵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주말, 국회 앞 광장을 가득 채운 촛불 시민들의 거대한 분노를 목도했기에 그렇게 확신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 촛불 혁명의 주체가 되어 변화를 만들어 가리라는 의미로서 희망하는 것이다.

한편 정권 퇴진 이후에도 민주주의 회복과 강화를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우선 많은 이들이 제안한 바와 같이, 권력 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하마터면 45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릴 뻔한 이런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 독재의 망령에 사로잡힌 사악한 정치 지도자와 그 무리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집어삼켜지는 참사가 발생하지 않게끔 제도적 허점을 개선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제도적 개선만으로 이런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민주주의는 어떤 완성된 형태의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어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번 사태는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사실, 모든 시민의 자율적 통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는 늘 불확실성을 내포한 체제일 수밖에 없다. 파시즘을 "최악의 변종 민주주의"라 부르기도 하듯이 언제든지 억압적 이념의 침투가 가능한 것이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이 '빈 공간'인 민주주의의 중심을 자유와 평등, 평화와 같은 사람 중심 가치들로 계속 채워가야 하는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따라서 우리의 공적 분노가 불의한 정권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윤석열과 같은 '괴물'이 출현할 수 있는 토대가 된, 예컨대 극우 온라인 방송과 커뮤니티 등에서 확대·재생산되고 있는 반민주적 인식과 담론을 향해서도 정치적 분노를 쏟아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민주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태도 아닌가. 동료 시민을 '처단'해야 할 적으로 규정한 계엄 포고령에 환호하고 동조하는 행태마저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 바로 여기가 파시즘이 발흥하는 진원지일 것이다.

나아가 갈수록 심화되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이 이번 사태의 토양이 되었다면, 우리는 내란 주도자와 공범들을 철저히 밝혀내 처벌하면서도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낳은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특정 개인과 집단에 법적·정치적·윤리적 책임을 묻는 것과 사회적 원인을 찾는 것은 다른 문제이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불평등 문제야말로 이러한 분열과 적대가 양산되는 주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트럼프 귀환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극우 정치세력이 득세하며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배경에는 불평등 심화가 자리하고 있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은 실제로는 자본과 특권층의 이익에 복무하면서도 그로 인해 물질적 어려움에 직면한 이들이 분노의 화살을 사회적 약자에게 퍼붓도록 조장하고 있다.

윤석열도 지난 2년 반 동안 꼭 그와 같은 정치 행태를 보이며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 그는 이미 용인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라는 시대적 과제를 외면하였다. 대기업과 부유층 세금은 깎아주면서 정작 경영난에 시달리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지원에는 소극적이었고 사회복지도 축소하였다. 또 노동자와 여성, 이주민, 성소수자, 장애인 등을 차별하고 억압했다. 그는 내란 이전에도 이미 민주주의 정치공동체 지도자로서 실격이었다.

'몫 없는 자들의 몫'을 되찾아주고 모든 이들의 실질적 자유를 확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와 적대를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내란 사태와 탄핵 정국은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를 만드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공적 분노의 힘을 모아 불의한 정권을 타파하고 나아가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구조와 체제까지 바꿀 수 있다면 말이다. 이번 '제2의 촛불혁명'이 더 넓고 깊은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공동 투쟁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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