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크라 장거리 미사일 사용 승인했지만…NYT "전장 바꾸지 못할 듯"

젤렌스키 "미사일이 말할 것"…러, "3차 대전" 경고 속 우크라 에너지 시설 대규모 공습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취임을 앞두고 복수의 외신이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가 염원했던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영토 내 공격을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전장에 북한군이 투입된 것이 이러한 조치의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러시아 의원들은 3차 대전을 언급하며 반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에 대해 대규모 공습을 퍼부으며 지난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대화를 시도했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에 대한 비판이 계속됐다. 숄츠 총리는 트럼프 당선 뒤 유럽 지도자가 러시아와 대화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17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AP> 통신 등 복수의 외신에 따르면 미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지원 사거리 300km의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내 목표물 공격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전했다. 미국산 장거리 미사일의 러시아 영토 내 사용 허가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지속적 요구 사항이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7일 영상 연설을 통해 우크라이나 "승리 계획"에 "장거리 능력이 핵심"이라고 언급하고 "언론에 우리가 각 행동에 대한 허가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공격은 말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발표되지 않는다"며 "미사일은 스스로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승인 자체에 대한 공식 발표 없이 장거리 무기를 사용함으로써 이를 드러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 백악관, 미 국방부,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관련해 논평을 거부했으나 미 당국자들은 장거리 미사일 사용 허가가 러시아가 전장에 북한군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데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자들은 장거리 미사일이 우크라이나가 일부 점령한 러시아 서부 쿠르스크에 가장 먼저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쿠르스크 탈환을 위해 5만 명을 동원했다고 밝혔고 미국은 쿠르스크에 1만 명 가량의 북한군이 투입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확전 위험 탓에 장거리 미사일을 허용하지 않다가, 장거리 공격을 통한 다른 방법으로는 불가능했던 특정 중요 목표물에 대한 타격 가능성 및 북한에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에 상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잠재적 이점 때문에 마음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한 당국자는 이번 조치가 부분적으로 북한이 추가 병력을 보내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쟁을 "24시간 내" 끝내겠다는 트럼프 당선자 취임이 다가오며 협상이 당겨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장거리 미사일 허용 배경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쪽은 점령한 쿠르스크 영토를 협상에서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와의 교환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러시아가 쿠르스크 수복에 성공하면 이러한 전략은 무용지물이 된다. 미 당국자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장거리 무기를 통한 방어 없이는 쿠르스크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압도할 수 있다는 우려에 흔들렸다고 설명했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미 당국자들은 이번 승인이 전쟁의 방향을 바꿀 것으로 생각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장거리 무기 승인에 행정부 내에서 가장 회의적이었던 미 국방부 당국자들이 장거리 무기 제한 해제 가능성을 예상한 러시아 정부가 이미 올해 초 대부분의 전투기와 기타 자산을 사거리에서 벗어난 러시아 깊숙한 곳으로 물렸기 때문에 이점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고 설명했다. 신문에 따르면 한 미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의 에이태큼스 승인은 전장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제한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는 확전 우려를 제한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장 상황을 바꾸기엔 이미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하원 정보위원장인 마이클 터너 의원은 성명을 통해 "나는 몇 달 동안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러한 제한을 해제할 것을 촉구해 왔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간청에 훨씬 더 빨리 귀를 기울여야 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미 싱크탱크 대서양협의회(Atlantic Council) 비상근 선임연구원 알렉스 플리차스는 "표적 제한 해제는 우크라이나가 한 손을 등 뒤에 묶고 싸우는 상황을 멈출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에이태큼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 브래들리 장갑차, 에이브람스 전차(탱크), F-16 전투기와 마찬가지로 이 결정은 너무 늦게 나왔다. 이 모든 게 훨씬 더 빨리 필요했다"고 짚었다.

다만 지난 8월 미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는 러시아가 전투기를 에이태큼스 사거리 밖으로 재배치 했더라도 여전히 사거리 내 최소 225개의 다른 러시아 군사 시설이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수령한 제한된 수의 에이태큼스도 사용된다면 상당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 정치권은 "3차 세계대전"을 언급하며 크게 반발했다. 17일 <로이터>는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부위원장 블라디미르 자바로프가 장거리 무기 사용 허용에 관해 "3차 세계대전 시작을 향한 매우 큰 발걸음"이라며 러시아의 대응이 즉각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러 국영 <타스>를 인용해 보도했다. 안드레이 클리샤스 러시아 상원의원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서방이 아침까지 우크라이나 국가가 완전히 폐허가 돼 끝장날 수준의 확전을 결정했다"고 으름장을 놨다.

트럼프 당선자의 영향력 아래 현 위치를 기반으로 한 협상 가능성이 대두되며 러시아 공격 규모는 커졌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7일 연설에서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및 주요 기반 시설을 향해 미사일 및 무인기(드론) 210대를 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공격이 "전쟁 전체에서 가장 크고 위험한 러시아 공격 중 하나"였다며 다행히 대부분의 표적이 요격됐다고 설명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공군은 미사일 120발 중 104발을 파괴했고 무인기 90대 중 42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다.

17일 <타스>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군이 지난 24시간 동안 "우크라이나의 군사·산업 단지 및 군수품 생산 기업 운영을 보장하는 에너지 기반시설의 주요 시설을 정밀 타격 시스템으로 광범위하게 공격했다"고 밝혔다. 러 국방부는 모든 목표물이 타격됐다고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번 공격으로 백만 가구 이상이 정전됐고 리비우, 키이우, 폴타바,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오데사, 자포리자 등 많은 지역에서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영국 BBC 방송은 이날 공습으로 최소 10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8월 말 이후 가장 큰 규모였던 이번 러시아 공격은 "이웃 국가를 겁먹게 하고 예속시키려는 모스크바의 극단적 열망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영하 10~20도까지 떨어지는 우크라이나의 혹독한 겨울을 앞둔 이 공격의 "진짜 목표"는 "국민의 사기"라고 지적했다.

이번 공격으로 지난 15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해 거의 2년 만에 직접 대화한 숄츠 총리에 대한 우크라이나 등의 비판이 거세졌다. 독일 정부는 숄츠 총리가 러시아가 회담에 나설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설득하고 우크라이나 지원 지속 의지를 밝혔다고 설명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러한 통화가 푸틴 대통령의 "고립을 약화"시킬 뿐이라며 비판한 바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7일 연설에서도 대규모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이 "대화, 전화 통화, 포옹 등 회유를 통해 푸틴에게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답"이라고 숄츠 총리를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도날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1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숄츠 총리를 직접 언급하진 않은 채 "누구도 전화 통화를 통해 푸틴을 막을 수 없다. 이 전쟁에서 가장 큰 공격 중 하나인 어젯밤 공격은 전화 외교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전체의 실제 지원을 대체할 수 없다는 걸 증명했다"고 비판했다.

<로이터>를 보면 17일 숄츠 총리는 취재진에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관련 "대화는 매우 자세했지만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에 대한 시각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인식에 기여했다"며 "이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이 통화에 영향을 미쳤다며 "내 생각에 만일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회담이 이뤄지는데 주요 유럽 국가 지도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좋은 생각이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다.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미사일 공격 뒤 우크라이나 북동부 수미에서 우크라이나 응급 구조대가 차량에 붙은 불을 끄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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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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