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냉탕(冷湯)’이 무슨 말

우리 말에는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많다. 사장님 차에는 사장이 타고, 회장님 차에는 회장이 타는데, 유모차에는 유모가 타지 않고 아이(유아)가 탄다. 요즘은 아이가 탄 것을 보기도 힘든 세상이다. 저녁 무렵에 인천대공원 산책을 즐기는데, 유모차(?)를 보면 거의 개(강아지는 아니었다)가 타고 사람이 밀어주고 간다. 뭔가 주객이 바뀐 것이 맞다. 차라리 견용거(犬用車)나 견자차(犬子車 : 사실은 인력으로 미는 것이니 ‘차’보다는 ‘거’가 맞다. 인력거처럼)

얼마 전에 ‘개’의 문화 문법에 관한 글을 썼다. 과거에는 ‘개’라는 접두사가 원래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나 ‘모자라는 것’에 붙었는데, 지금은 ‘아주 좋다’는 의미로 바뀌었다고 했다. 물론 아직 이런 것이 사전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젊은이들은 모두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개좋아!”, “개미쳤어(아주 잘한다, 대단하다는 의미로 쓰임)”, “개멋있어!” 등과 같이 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베이비 부머 세대와 현대의 젊은이들과는 소통의 문제가 발생한다. 과거에 일본 순사를 ‘개나리’라고 부르던 것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개복숭아도 과거와는 다르게 귀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하다.

이렇게 언어는 늘 변한다. 태어나고 성장하며 소멸하기도 한다. 이것을 언어의 역사성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언어가 언중들에 의해 성장하고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가끔은 태어날 때부터 이상한 단어도 있다. 우리말이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만 필자가 볼 때는 “이게 무슨 소리여?” 하는 것들이 제법 많다. 그 중 하나가 목욕탕에 있는 ‘냉탕’이라는 말이다. 목욕탕(沐浴湯)에 가면 온탕(溫湯), 냉탕(冷湯)이라는 곳이 있다. 요즘은 열탕(熱湯)이라고 쓴 곳도 있다. 열탕은 상당히 뜨거워서 쉽게 들어가기 어렵다. 열탕은 아주 뜨거우니까 어울릴지는 몰라도 냉탕이나 온탕은 어감상 문제가 있다.

냉탕冷湯을 한자로 보면 찰 랭冷, 끓일 탕湯이다. 씻을 탕(盪) 자도 있는데, 사전에는 ‘물 끓일 탕(湯)’을 쓰는 것이 특이하다. 제사 지낼 때 탕국이 끓인 국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탕(湯) 자가 들어 간 것은 대부분 국물이 있는 것으로, 끓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매운탕, 설렁탕, 내장탕 등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냉탕’이라고 하면 '차가운 끓인 물(혹은 차가운 끓는 물)'이 된다. 그렇다면 한자어에 다른 뜻이 있는가 찾아보자. 탕(湯)을 자전(字典)에서 찾으면 ‘끓일 탕’, ‘물이 세차게 흐를 상’, ‘해돋이 양’ 등으로 나오고, 또 다른 의미로는 ‘넘어지다, 쓰러지다, 국의 다른 말’ 등으로 나타나 있다. 국어사전에는 “찬물을 채워 놓은 탕(냉(冷) + 탕(湯)”이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형태상으로도 ‘탕’이 그릇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쩌자고 목욕탕에서 냉탕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 궁금하다. 아마도 반(盤 그릇, 목욕통)의 의미로 쓰고 싶었는데, 사람들이 탕이라는 어휘를 많이 쓰다 보니 그것을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마치 저육(猪肉 돼지고기)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제육’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식당에서 그대로 ‘제육볶음’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온탕도 마찬가지다. 온탕(溫湯)은 따뜻할 온溫, 끓일 탕湯이므로 문제가 있는 단어임이 확실하다.

그냥 찬 물, 더운 물, 뜨거운 물이라고 하면 어색하지는 않았을 텐데 굳이 한자로 써서 헷갈리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일본에 있는 독자가 한 수 거들고 나섰다. 그곳(일본)에서는 냉수(冷水), 온수(溫水)라고 쓴다고 한다. 우리도 냉수, 온수라고 하든지, 차가운 물, 따뜻한 물이라고 쓰기를 권한다. 굳이 말도 되지 않는 ‘냉탕’이라는 말을 언제까지 쓸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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