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금융에 포박당하다

[인문견문록] <레이디 크레딧>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스물이 갓 넘은 듯한 그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애매했다. 손님을 맞으려는 얼굴이 아니었다. 자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는 나를 보자 그녀는 어쩔 줄 몰라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성으로서의 수치심과 매춘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결단. 두 가지 감정 속에서 동요하고 있었다. 그녀의 어쩔 줄 몰라함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게 뭐지. 그녀에게 나는 창녀를 찾는 쑥맥청년으로 보였을 것이다. 나에게 그녀는 손님 맞기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아마도 처음일지도 모르는 그래서 위악적 가면을 쓰지 못하고 인격을 설핏 드러내는 어설픈 588 누나로 보였다. 서로의 숙맥스러움과 어설픔이 서로를 당혹하게 만드는 짧은 순간과 공간을 우리는 함께했다.

고등학생 시절 집으로 가기 위해 '청량리588'을 지나야 했었다. 588 누나에게서 한 인간의 동요하는 내면을 발견하는 일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창녀가 아닌 '인간'을 만나서였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필자가 철학자 레비나스의 주체에게 도덕적 명령을 내리는 '타자의 얼굴'이란 개념을 접하고 바로 이해가 됐던 것은 그때의 경험 덕분이었다. 그날 이후 필자에게 타인들은 폭력주식회사 대한민국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애달픈 영혼들이었다. 폭력주식회사는 엄격한 계서제로 작동한다. 그 기제의 끝단에 내몰린 채 생존을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성매매 여성'으로 불린다. 덕성여대 김주희 교수의 책 <레이디 크레딧>(현실문화 펴냄)을 펼치면서 오래전 그 일이 생각났다.

저자 김주희는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를 일상 관행으로 하는 자본주의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볼 것을 주문한다. 저자는 그라민은행의 사례를 소개한다. 그라민은행의 설립자 무함마드 유누스는 빈곤퇴치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에도 그라민은행과 관련한 많은 뉴스와 정보들이 쏟아졌다. 그라민은행의 성공은 가난한 농촌 여성들의 성실성 덕분이라는 상찬이 언론을 가득 채웠다. 이후 방글라데시 출신 인류학자 라미아 카림은 '수치의 경제'라는 개념을 통해 이 은행대출업의 성공비결을 폭로했다. 연체가 발생하면 여자를 망신주기 위한 다양한 수법이 동원되었다. 보수적 농촌마을에서 행해지는 집요한 추심을 농촌 여성들이 감내하기란 너무 어려웠다. 그녀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빚을 상환했다. 그라민은행의 사례는 제3세계 가난한 여성조차 금융 자본주의체제에 '완벽히' 포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3세계 농촌 여성의 경우가 이럴진대 자본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여성들을 향한 금융의 압박은 어떨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 여성을 향한 그간의 담론은 이런 것이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확장에 따라 성산업도 그 뒤를 따라갔다. 80년대 이후 여성들의 길거리 납치가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연구자들이 성매매 현장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이들은 포주에 의한 선불금문제 해결을 성매매 산업의 핵심사안으로 보았다. 활동가들의 노력 덕분에 성매매 여성을 옥죄던 선불금 채무는 법원의 무효 판결로 이어졌다. 선불금이 사라진 후 성매매 산업의 현장에서는 성매매 여성의 ‘자율적 선택’임을 강조하는 성노동자담론이 등장했다. 급기야 ‘밀사’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활동가는 아예 성노동자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연구자들이 성매매를 ‘성노동’으로 격상시키고 그들에게 ‘성노동자’라는 정체성을 주입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그들의 정신적 건강이 본질적으로 나아졌음을 알리는 어떤 지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성매매 여성의 부채를 경감시키면 모순이 해결될 것이라 믿은 부채담론, 매춘 여성이 아닌 성노동자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면 모순의 질곡이 완화될 것이라 믿은 소득담론 두가지 모두가 현실 앞에서 거꾸러졌다. 두 담론 모두 동일한 가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설명이다.

”두 개의 대립적 담론은 모두 유사한 인식론적 가정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성매매 경제는 이 시대 자본주의 경제가 작동하는 방식과 무관하며 고립된 ‘(비)경제적 영역’에 머물러 있다는 전제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는 성매매 문제의 역사적이고 정치경제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아 발생하는 오류로, 결국 성매매 여성들은 업주의 악행이나 선의와 같은 도덕 수준에 영향을 받는 주체로 위치화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매매 문제는 행위자들의 도덕적 조정을 통해, 소득을 증진시키거나 부채를 해결함으로써, 성매매 용인 또는 거부라는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나온다“ 저자는 두가지 태도 모두 오류임을 지적한다. 부채에 기반한 금융자본주의는 개인의 윤리적 결단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는 괴물이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의 성매매 산업은 '부채 경제'와 연동되어 있다. 포주와 성매매 여성 간의 사적인 채무관계는 사라지고 대부업체나 금융자본이 등장한다. '포주-아가씨의 이항구조'가 '포주-금융권·대부업체-아가씨의 삼항구조'로 재편되었다. 이런 구조의 변동은 성매매여성들을 더욱 벗어날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예전의 구조가 포주로부터의 탈주를 통해 새로운 삶이 가능했다면 현재의 구조는 성매매 현장을 탈출하더라도 결국 금융의 추심대상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주는 여성에 대한 개인적 채권을 금융회사에 양도하고 금융회사는 여성에게 추심을 집행한다. 포주와의 사적 관계는 드디어 공적 관계로 설정되었다. 그래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압력도 전사회적으로 작동한다. 성매매 여성은 꼼짝할 수조차 없다. 달아나서 숨을 공간이 아예 삭제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태생부터 여성에 대한 착취와 함께 시작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담론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상가들을 소개한다. 페미니스트 사상가인 실비아 페데리치는 자본주의 이행기가 여성들의 고통과 추락으로 시작되었음을 지적한다. 유럽의 마녀사냥은 원시적 자본축적의 핵심기제였다. 마녀사냥은 여성들의 신체를 박탈하고 여성들의 재생산과 노동을 자본축적의 수단으로 작동하도록 강제했다. 페데리치는 마녀사냥의 근원에는 토지분쟁이 숨겨져 있었음을 폭로한다. 마녀사냥이 눈에 띄게 활발했던 지역은 어김없이 인클로저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저자는 또 다른 학자인 마리아 미즈도 소개한다. 미즈에 따르면 현재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발전은 식민지를 착취하는 국제적 수준의 노동분업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성별간의 노동분업에도 의존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주부 또는 매춘부로 이들의 노동이 교환되는 비자본주의적 외양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위해 기능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말이 좀 어렵다. 풀어쓰면 이런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사회의 전부문이 자본주의화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합리적 자본주의적 방식이 기능하는 상위 경제를 착취가 횡행하는 하위경제가 떠받치는 방식을 통해서만 자본주의는 유지·작동된다. 한 사회의 잘 나가는 자본주의적 부문도 다른 착취적 요소와 결합되어야만 유지된다는 의미다. 재벌기업이 자기 회사의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잘 나가는 것이 아니다. 2차, 3차 하청으로 이어지는 위계질서를 따라 착취는 외부화되고 그 외부의 마지막에 주부와 성매매 여성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성매매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의 몸을 상품으로 한 수십조 원대 규모의 산업은 비틀거리는 한국 자본주의에 있어서 단비같은 존재다. 제대로 된 국가라면 공적 복지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할 것들이 성매매 여성들의 개인적 고통과 결단을 통해 해결된다. 그들의 고통이 바닥에 깔리고 나서야 자본주의는 잘 작동하기 시작한다. 한국 자본주의가 아주 성숙해지면 성매매 산업은 자연히 사라지게 될 것이란 생각은 그래서 망상에 가깝다.

한국의 커뮤니티 여론에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측은지심은 사라진지 오래다. 아주 오래 전 이들을 바라보던 시선에서 멸시와 측은이 교차했던 것과 많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의 확산과 함께 자유로운 계약의 관념이 보편화된 점이 가장 큰 원인이다. 대중들은 성매매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전에 비교해 포주에 의한 인신구속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생겨난 인식일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구속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포주라는 개인으로부터의 속박은 흐릿해졌지만 이제는 포주를 대신해서 자본주의 사회 전체가 그들을 철두철미 구속한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여러 겹의 부채가 빠르게 회전하는 가운데 신용을 관리하고 자유를 확보하고자 하는 여성들 스스로의 의지와 성매매를 통해 부채를 상환하라는 금융화된 성매 매산업의 명령이 결합해 여성들은 파산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여성의 몸을 수단화하며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자본이 허락한 자유의 기회를 통해 이들은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주체가 된다. "파산불가능한 주체는 이제 어떤 상황에 내몰린 주체일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책의 핵심 요지다." 성매매 종사 여성들은 '자유로운' 파산불가능한 주체로서 자유 획득의 비용을 개인이 지불하도록 만드는 자본의 전략 속에서 이 시대 금융화된 성매매 산업과 금융자본을 떠받치고 있는 합법적인 담보물이 되어 성매매 산업에 더욱 중층적으로 결박되고 있다."

합법적 담보물? 역사에는 그런 사람들을 일컷는 말이 있다. '채무노예'라고 한다.

▲ <레이디 크레딧>(김주희 지음, 현실문화 펴냄) ⓒ현실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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