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 김구>가 정말 하고싶은 말은 '김구는 테러리스트 아닌 연쇄살인마'

[프레시안 books] 정안기의 <테러리스트 김구> 上

올해 8·15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뉴라이트의 부활, 건국절 논란의 재점화로 광복절 행사 마저 두 동강이 나버렸다. 여기에 더하여 정안기라는 자의 <테러리스트 김구>라는 책이 8월 15일에 맞춰 나왔다. 선정적인 제목 때문에 정치적 성향에 상관없이 모든 언론이 요란하게 다뤘다. 그러나 정작 책(이걸 책이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이 나오고 달포가 지났건만, 극우 유튜브에서만 떠들어댈 뿐, 종이 매체나 온라인 매체에서 이 책과 관련된 기사나 서평 등은 별로 많이 볼 수 없다.

뉴라이트 대부 안병직 교수가 정안기를 손절한 이유는?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낙성대 연구소 안병직 교수의 이 책에 대한 짤막한 언급(<조선일보>, 2024.8.26, 안병직 "뉴라이트가 매국? 北 실태 목도한 친북주의자의 자기반성서 출발")과 안병직 교수의 발언에 대한 정안기의 거의 '발작적' 반응(<스카이데일리>, 2024.8.26, 안병직 교수의 '테러리스트 김구' 논평에 대한 저자 반론)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안병직 교수는 뉴라이트의 사상적 대부이자 정안기도 필자로 참여한 <반일종족주의>의 산실인 낙성대 연구소의 정신적 지주이다. 안병직 교수는 정안기가 가끔 낙성대 연구소에 왔지만 "내 제자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면서, "학문의 생명은 객관성인데 그의 관점은 지나치게 치우쳐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백범에 대해 "김구 선생이 해방 이후 건국 과정에서 실수한 것은 있지만 그의 도덕성과 애국심에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한 지사 중의 지사 아닌가"라고 평가했다.

정안기는 안병직 교수의 논평에 대해 "저서의 표지만 본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옮긴 발언"이라 했다. 이어 안병직 교수의 김구 인식과 같은 "거짓과 착각을 파헤치고 논증"한 것이 자신의 책이며 자신은 이 책을 쓰면서 "이론과 실증 면에서 최선을 기하고자 노력"했다고 강변했다. 정안기는 또 안병직 교수를 자신의 스승이 아니라 "경제사 연구 동료"일 뿐이라고 하면서 그의 논평은 "희대의 연쇄살인"을 자행한 김구에 대해 "무지함과 무책임의 극치를 드러낼 뿐"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문과 목차라도 훑어보는"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지 않고 자신을 폄훼했다고 강변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안병직 교수가 왜 정안기를 '손절'했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속된 말로 정안기가 뒤집어써야 할 똥물을 같이 뒤집어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안병직 교수의 논평이 이 책을 읽고 나온 것인지, 아니면 읽을 필요조차 없다는 제자나 후학들의 이야기만 듣고 한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인내력을 테스트해가며 정안기의 책을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꼼꼼히 읽고 이 글을 썼다는 점은 밝혀둔다.

정안기는 누구인가?

정안기는 1990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하여, 2000년 일본 교토대학에서 일본 미쓰이 재벌 계열의 종연방적(해방 후 광주공장은 김무성의 아버지 김용주의 전남방직으로, 경성공장은 태창방직과 방림방적으로 분화)에 대한 경제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안병직 교수의 변신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나카무라 사토루의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2005, 혜안)을 번역하기도 했다. 2015년 고려대학교 수업에서 정안기는 "위안부가 돈 많이 벌었고 성노예 아니다", "식민지 지배 덕에 경제발전 했다" 등의 발언으로 학생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반일종족주의>(2019), <반일종족주의와의 투쟁>(2020)에 공저자로 참여한 정안기는 여러 공저자 중 가장 저열하고 난폭한 주장을 펼쳤다. 그의 첫 번째 단독저서 <충성과 반역>(2020, 조갑제닷컴)은 일본군 출신 중에서도 가장 죄질이 나쁜 친일파로 비판받는 송요찬, 함병선 등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 출신들을 '대한민국 창군, 건국, 호국의 주역'으로 찬양한 책이다. 그는 또 2024년 2월 개봉한 이승만 찬양 다큐 <건국전쟁>에 출연하여 류석춘(역시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비난) 등과 함께 유어만 비망록이라는 괴문서에 근거해 백범 김구를 비난한 바 있다(유어만 비망록의 문제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프레시안> 2024년 6월 26일자에 실린 필자의 「오늘, 김구 암살당한 날 … <건국전쟁>의 총질은 여전히 계속된다」, 참조하기 바란다).

<테러리스트 김구>는 거대한 신화적 존재가 된 백범 김구에 대한 탈신화 작업을 표방하면서 백범 김구를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의열투쟁의 최고지도자로 높이 평가해온 한국학계를 비판하고 있다. 정안기는 테러와 테러리즘이 갖는 두 얼굴,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언론매체에서 접하는 부정적인 성격에 대비되는 약자의 저항수단으로서의 테러행위가 갖는 적극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듯한 입장을 보인다. 정안기는 "김구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혹은 '테러리스트여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역사적 강박관념'이 오랫동안 한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20, 이하 정안기 책은 면수만 표시)해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의 역사학계가 김구, 김원봉 등의 행위를 '의열투쟁'으로 미화하며 테러와 구분짓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을 저질러온 '불편한 진실'을 밝히겠다고 주장(25-30)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도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고, 정안기도 미주(60번)에서 테러와 의열투쟁을 구분짓는 행태에 대한 필자의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 필자와 정안기의 동행은 딱 여기까지다.

▲ 1948년 4월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하려고 38선 앞에 선 김구. 백범김구기념관 전시 사진 ⓒ손호철

정안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김구는 테러리스트도 아닌 연쇄살인마

'테러리즘 있는 테러(terror with terrorism)'와 '테러리즘 없는 테러(terror without terrorism)'를 굳이 구분하는 정안기의 의도는 김구의 행동은 '테러리즘 없는 테러', 즉 살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안기가 원래 붙이고 싶었던 이 책의 제목이 <백정일지>였다고 한다. 이로 보아 그가 정말 하고 싶은 얘기는 김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그가 유튜브에서 자주 주장하는 것처럼 김구는 '연쇄살인마'라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살인, 방화, 약탈을 일삼는 범죄자나 마적떼로 보는 것은 딱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그 앞잡이들의 시각이다. <테러리스트 김구>는 김구의 활동을 항일테러, 밀정테러, 정적테러의 3부분으로 나누었다. 1부 항일테러에서는 치하포 사건, 이봉창 의거, 윤봉길 의거, 2부 밀정테러에서는 김립 암살, 옥관빈 암살, 안공근 실종 사건, 3부 정적테러에서는 송진우 암살, 여운형 암살, 장덕수 암살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 모두를 김구가 자행한 살인행위라고 단정하였다.

책이 출간된 직후부터 극우 유튜브에서 정안기는 책에 담지 않은 새로운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는 백범이 죽인 사람을 모두 81명이라 했다가 최근 유튜브에서는 열댓 명 더 늘어나 백범이 죽인 사람을 96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표적이 된 인물 중 일본인은 3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동족을 대상으로 한 살해행위였다고 했다.

이 같은 정안기의 주장은 두 가지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 첫째는 정안기가 김구의 손에 의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의 죽음이 김구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이다. 윤봉길 의거 당시 백범의 피신을 도왔던 피치 목사는 김구는 "그가 폭력에 참여했다면 용기 있게 그에 대한 책임을 졌"었다고 주장하면서 김구를 장덕수 암살의 배후로 몰고가는 자들의 견해를 반박했다. 실제로 김구는 치하포 사건이나 윤봉길과 이봉창의 의거, 김립의 '처형', 그 밖에 다수의 밀정처단에 대하여 이 사건들이 자신의 책임하에 이루어진 일임을 밝혔다. 그런데 정안기는 사건 당시의 수사당국이나 해당 사건을 정밀하게 다룬 수많은 연구들이 김구의 책임이라고 단정하지 못한 사건들에 대해 아무 새로운 증거 없이 김구의 소행이라고 못 박는 뇌피셜을 자행하고 있다.

둘째 밀정 처단은 독립운동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의병도 일본군과의 직접적인 교전보다도 일진회 등 친일파 처단과 관련된 활동이 대부분이었다. 임시정부나 의열단의 각각 '7가살'이라 하여 독립운동가들이 마땅히 처단해야할 부류로 하고 있었다. 김구의 밀정처단은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안기는 왜 스스로 '입에 칼을 물고 널을 뛴다'고 할까?

<테러리스트 김구>는 처음부터 끝까지 백범을 깎아내리고 모욕 주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집필 목적이기도 하다. 백범에 대한 평가가 과장된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고,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다면 바로 잡으면 될 일이다. 예컨대 1997년 도진순은 김구의 최초의 '살인'인 치하포 사건의 경우 피살자인 쓰치다 조스케가 백범이 생각한 대로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군인이 아니라 일본상인이었음을 밝혔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까지 별다른 이론 없이 학계에 받아들여 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유튜브나 대중적인 서적에서는 김구 신화의 일부분으로 과장되게 통용되는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왜 정안기는 스스로 밝히듯이 "입에 칼을 물고 널을 뛰는 심정"(7)으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정안기나 <건국전쟁> 부류가 김구를 깎아내리는 이유는 이승만을 띄우기 위해서이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아무리 이승만을 띄우려 해도 김구의 눌려 이승만이 높이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승만 추종자들이 이승만에게 형광등 300개를 켜대도 이승만의 얼굴은 김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다. 초조해서일까? 김구의 신화를 깬다라는 주장을 펴기에 이 책의 논증은 너무 허술하다. 상식과 통념을 깨는 전복적인 주장을 하려면 철저한 사료검증에 기초한 치밀한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문제는 무려 1,500개의 주가 달린 이 책의 논증이 학계의 기본 상식과 룰을 크게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미주를 하나하나 확인하며 꼼꼼히 읽고 보니

이 책은 본문 뒤에 실린 미주만 158쪽에, 개수가 무려 1,525개에 달한다. 얼핏 보면 매우 충실하게 주를 단 것처럼 보인다. 우파 유튜브에서도 정안기가 실증에 완벽을 기했다고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과연 그럴까? 요즘은 페이지 하단에 각주가 달린 책은 골치 아프다고 생각하여 독자들이 외면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본문 뒤에 미주를 다는 경우가 많다. 출전을 확인해 보려는 연구자에게 본문과 미주를 대조하며 읽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왔다갔다 읽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미주를 꼼꼼히 확인하며 본문을 읽었다. 단지 미주에 어떤 자료가 인용되어있는가를 본 것이 아니다. 단순한 사실관계를 서술한 것을 제외하고 전체 미주의 3분의 2쯤은 인용된 자료의 원문을 확인했다.

정안기가 인용한 논문이나 원자료의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필자도 이미 본 것이고, 또 필자의 컴퓨터 안이나 책꽂이에 파일, 혹은 원본으로 보관되어있다. 이로 인해 다행히 원전 확인이 가능했다. 정안기의 책을 읽다가 인용된 자료나 논문을 내가 분명히 본 것인데 그런 내용이 있었나, 그 출전의 저자가 저런 얘기를 했었나 계속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인용된 자료와 논문을 확인을 해보게 된 것이다. 이를 확인하는 과정은 '어?'를 넘어 '헐!'과 '허걱'의 연속이었다. 뇌피셜로 가득한 이 책의 잘못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자면 이 책보다 더 두꺼운 책을 써야할지도 모른다. 문장 하나하나를 그냥 넘어가기 힘들 정도다. 그래서 이 책의 문제점을 세세하게 지적하는 대신 정안기의 사료 취급 태도에 국한해서 지적하고자 한다.

주에 인용된 전거를 찾아봤는데 본문에 주장한 내용이 없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 이유 중의 하나는 미주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작 해당 책의 페이지를 찾아보면 본문에 서술된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한 예로 정안기는, 여운형이 사장으로 있던 <조선중앙일보>가 임시정부를 후원하는 장개석을 비난한 사설 때문에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328) 정안기는 주 1049에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이 쓴 <몽양 여운형> 76쪽을 출전으로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1927년 장개석의 배신으로 국공합작이 결렬되고 수많은 중국혁명가들이 학살당할 때 여운형도 체포될 뻔했다가 간신히 탈출한 사실이 나온다. 이런 경험 때문에 여운형은 사석에서나 지면을 통해 장개석이 가식인이며 위선자로 중국을 통치할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운홍의 책 어디에도 사회적 물의가 일었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장개석을 비판한 일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적 물의가 일었던 일 자체가 없었다.

시기상 도저히 출전이 될 수 없는데도 버젓이 주로 달린 사례도 드물지 않다. 정안기는 윤봉길의 폭탄테러가 백암 박은식의 지적과 같이 파벌의식과 합의무상(合意無常)의 민족적 고질만 드러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마치 박은식도 윤봉길의 테러를 비판한 듯싶지만, 박은식은 윤봉길의 테러 7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정안기는 윤봉길과 김구를 깎아내리기 위해 박은식을 끌어왔는데, 정직한 연구자라면 이 말이 윤봉길 의거와는 직접 상관없는 이승만의 탄핵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박은식의 탄식이었음을 밝혔을 것이다. 또 여운형이 1943년 7월 사건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근거로 주 1057은 1935년 12월에 간행된 <사상휘보> 5호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별개의 사건으로, 1935년의 자료가 어떻게 7년 반 뒤 집행유예의 근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유리하면 그냥 인용, 불리하면 막무가내 배척: 사료비판 전혀 없어

요즘 가짜뉴스가 논란이 되지만, 역사연구를 할 때도 자신의 주장이 되는 사료가 정확한 것인가 먼저 검토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안기의 책은 엄정한 사료비판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예컨대 정안기는 1955년 서울시경 사찰과에서 작성한 <사찰요람>이란 자료에 의거하여 여운형 암살범이 김구라고 단정한다.(357) 그런데 <사찰요람>은 근거가 불확실한 서술이 많아 비판을 받는 <나무위키>에서조차 인용해서는 절대 안 될 왜곡된 자료라고 할 정도로 문제가 많은 자료다. 그런데 정안기는 당시 사찰형사들의 왜곡된 시각을 그대로 인용하여 김구로 암살범으로 몰고 갔다.

반면 고하 송진우의 최측근이었던 김용완은 송진우가 암살되기 전날 저녁 송진우를 만나 아래와 같은 결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송진우 씨가 피살되기 전날 저녁 궁금해서 송진우씨댁에 가서 송진우 씨를 만났다。그 집에 가니까 변영태 씨가 와 있었고 정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그때 찬탁이냐 반탁이냐를 둘러싸고 정객들이 나누어져 싸움을 벌였는데、송진우씨는 찬탁도 반탁도 아니었다。그런데 어떻게 찬탁으로 몰려 「송진우 죽일 놈」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송진우씨는 그날 저녁 김구씨를 만나러 경교장으로 갔다。그래 그 혼란 속에서 찬탁도 반탁도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고、송진우씨는 평소에 김구씨를 따랐으므로 김구씨는 송진우씨를 무척 아꼈다。김구씨는 송진우씨더러 『여보게 오늘 저녁은 나하고 같이 자세。세상이 하도 소란하니, 이 밤은 같이 지내세』 하고 자고 가기를 권했는데、송진우 씨는 김구씨에게 『어떻습니까。괜찮읍니다』하고 집으로 돌아와 잤다는 이야기다。그런데 그날 밤 송진우씨는 밤에 자다가 변을 당했다. (<재계회고> 3. 122)

일제의 정보문서까지 샅샅이 뒤졌다는 정안기가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자료를 못본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주장이 결정적으로 불리하니 못 본 척 한 것일까? 김용완은 고하 송진우의 애제자이자 인촌 김성수의 매부로 어느 모로 보나 고하 쪽 인물임에 틀림없다. 전경련 회장을 10년 넘게 지냈으니 김구를 위인으로 조작했다는 종북좌빨일리는 더욱 없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다. 정안기는 불리한 자료는 배척하고 유리한 자료는 사료비판이나 검증도 없이 뇌피셜에 의존해 모두 다 김구가 암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서로서 기본이 안 된 책이다.

처음부터 김구는 살인자라는 결론을 갖고 출발한 정안기에게는 사료의 신뢰성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정안기는 어떤 사료든지 김구에게 불리한 것이면 가치 있는 것으로 인용하고, 김구에게 유리한 것이면 무조건 배척했다. 또 주를 1500개나 달았지만 다른 연구자가 먼저 밝혀낸 역사적 사실을 아주 새로운 해석이나 새로운 자료의 추가 없이, 인용할 때에는 선학의 연구성과를 명기해주는 것이 도리이다. 그러나 정안기는 학계의 그런 최소한의 도리도 지키지 않았다. 예컨대 임경석이 러시아문서를 발굴해서 김립과 관련된 많은 내용을 밝혀낸 것이나, 도진순이 백범일지 원본에서 안공근에 관한 내용이 잘려나갔지만 희미하게 남은 부분을 복원해낸 것 등은, 별다른 출전 없이 인용하다가 비판할 때에만 이름을 등장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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