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위 대학' 그랑제꼴? 프랑스 그랑제꼴에 대한 오해와 진실

[독점과 쏠림이냐, 포용과 분권이냐] 한국에 잘못 알려진 프랑스의 대학 교육 실상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독특한 고등교육 제도를 지닌 나라다. 따라서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왔고, 그만큼 오해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Université) 이름을 없애고 숫자로 표기하여 서열을 없앤 이른바 ‘대학 평준화’는 프랑스 고등교육 시스템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다. 한편, 대학과 별도로 운영되는 그랑제꼴(Grands Écoles) 역시 프랑스만의 ‘엘리트’ 교육 시스템으로 빈번히 소개되어 우리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의 프랑스 대학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의 견고한 대학 서열 시스템과 이로 인한 소모적 입시경쟁과 연관이 깊다. 고교졸업자격증인 바깔로레아(Baccalauréat)만 있으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특정 대학이나 학과로 지나치게 몰리면 추첨을 통해 ‘우연의 결과’로 입학이 결정되는 프랑스의 대학입학 시스템은 등급과 서열이 일상화된 한국 교육문화에서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면, 그랑제꼴은 대학과 달리 치열한 선발 경쟁을 통과해야 하는 독점적 엘리트 고등교육 기관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랑제꼴의 존재로 인해 일부 언론에서는 프랑스의 고등교육체제가 한국 사회의 서열적 대학 체제와 치열한 입시경쟁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소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해도 적지 않다.

프랑스 대학교육의 특징과 최근 변화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68혁명을 기점으로 대학교육을 보편적 기본권으로 정의하고, 이에 따른 고등교육 정책을 펼쳐왔다. 두터운 사회적 안전망과 공화주의적 교육철학, 그리고 68혁명 이후 뿌리 내린 사회적 정의와 평등의 가치 등은 프랑스 교육의 핵심 기조였다. 대학이 국립으로 운영되고 무상교육을 제공해 온 것도 이러한 기조에 근거한다. 따라서 대학입학도 경쟁적인 선발이 아니라 프랑스 시민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권리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최근 프랑스의 대학교육 정책은 변화를 겪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2018년 대학입시 개혁안에 의해 대학입학 방식이 추첨이 아니라 대학 선발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낮은 학사 이수율과 대학재정 문제, 고교 교육과정에서의 전공 연계 진로교육의 필요성 등은 이 대학입학제도 개편의 주요한 원인이다. 이에 따라 고교 교육과정에서부터 대학선발 시스템까지 전면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대학 평준화 체제가 위협받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최근 프랑스 대학들이 국제적 명성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68혁명 이후 숫자로 대체했던 대학명에 다시 고유 명칭을 병기하는 경향에서도 확인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프랑스 대학교육 기조에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대학선발 시스템은 한국사회의 상대평가와 등급제에 기초한 서열적 선발 시스템이나 대학교육체제와는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프랑스는 학문 분야별로 대학이 특화되어 있어, 학생들이 대학 서열보다는 전공에 따라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종합대학 체제인 한국과 달리 프랑스는 몇 개의 단과 대학군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전공에 기초하여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의 역사적 전통이나 사회적 평판, 지역적 위치성에 따라 선호하는 대학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처럼 지역과 대학의 이름에 따른 견고한 서열 체제가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프랑스의 대학교육 시스템 안에 있는 의대도 변화하고 있다. 1971년부터 시행된 국가가 의대 본과 진급 인원을 제한하는 제도인 ‘Numerus Clausus(라틴어로 폐쇄적으로 제한된 수의 의미)’를 폐지하면서, 대학은 자율적으로 자체 역량에 따라 의대 본과 학생 수를 선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의대 본과 진급을 위한 학생 간 소모적인 경쟁을 완화하고,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료인 양성 인원을 개방한 것이다.

그랑제꼴의 이해와 교육불평등

그랑제꼴은 입학절차, 교육목적, 그리고 교육과정에서 대학과는 확연히 다른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역사적으로 18세기 후반 국가의 군사 및 과학 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현재도 엔지니어 양성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꼽히는 에콜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은 학생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은 그랑제꼴이다. 참고로 프랑스의 일반 대학에는 고급 엔지니어를 양성하는 공과 계열 전공이 없다. 2024년 현재 프랑스 그랑제꼴은 약 240여 개로, 경영과 인문사회 계열까지 확장해 왔지만 그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과학 기술 계열의 엔지니어 양성 기관으로 재학생 수의 약 65%가 이 계열에 속해 있다.

그랑제꼴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그랑제꼴을 대학과 위계적 관계로 인식하거나 모든 그랑제꼴을 엘리트 교육기관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대학과 그랑제꼴은 서열이 아니라 교육목적과 역할에 따라 구분된다. 대학이 연구중심의 보편적 교육을 제공하는 반면, 그랑제꼴은 특정 직업군에 맞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따라서 교육과정도 실무 중심이다. 만약 그랑제꼴 졸업생이 박사 학위를 취득하려면 대학에 등록하여 별도의 학위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또한, 모든 그랑제꼴이 엘리트 양성 기관이 아니다. 그랑제꼴은 수가 많은 만큼 사회적 위상, 학생과 학부모의 선호도, 교육과정 운영 방식, 등록금 수준 등에서 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그랑제꼴을 이해하는 중요한 특성으로 이질성을 꼽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랑제꼴 입학을 위한 준비반인 CPGE(Classe Préparatoire aux Grands Écoles, 일명 프레빠) 과정을 2년간 수료하고 치열한 선발 경쟁을 통과해야 하는 경우는 매우 제한된 소수다. 한국 사회에 잘 알려진 파리 고등사범학교(ENS)나 에콜 폴리테크닉(École Polytechnique)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고교졸업 후 프레빠 과정을 이수하지 않고 바로 입학하거나 특별한 선발 과정 없이 대학보다 입학이 훨씬 쉬운 곳도 많다.

한편, 최근 그랑제꼴도 변화를 겪고 있다. 4명의 대통령과 8명의 총리를 배출한 프랑스의 고급 관료 양성기관인 ENA(École Nationale d’Administration: 국립행정학교)를 폐교한 것은 그 대표적이다. 그동안 ENA는 견고하고 폐쇄적인 계층세습과 졸업생들의 고위 관료직 독점으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판받으며 프랑스 사회의 불평등을 상징하는 학교였다. 가정적 배경에 관계 없이 능력에 따른 고급 관료 양성기관으로 출발했지만, 재학생들의 다수가 상류계층 출신이어서 90년대 이후 특권층의 독점이라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아왔기 때문이다.

능력이나 노력의 결과에 따른 선발이나 사회적 보상은 신분제가 사라진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값이다. 교육은 이러한 능력주의를 구현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제도의 역할을 부여받아 왔다. 그러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른 교육 불평등은 오래된 불편한 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공정하다고 믿는 개인의 능력이 개인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개인의 삶이 어느 부모에게 태어났느냐에 의해 결정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회의 몫이다. 프랑스는 이러한 문제에 매우 민감하게 대응해 온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다. ENA 폐교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적지 않지만, 프랑스의 상징적인 그랑제꼴 폐교는 이러한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우리 교육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

정권의 성향에 따라 정책의 방점에 차이는 있지만, 공화주의적 능력주의를 표방해 온 프랑스의 교육 제도는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근대 시민사회의 이상에 기초하여 운영되어 왔다. 만 3세부터 시작되는 의무 공교육인 유아교육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프랑스의 학교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원·관리하는 공적 시스템이다. 대학을 포함한 모든 공교육이 무상인 것도 이러한 원칙에 따른 것이다. 최근 고등교육 정책이 가파른 변화를 겪고 있지만, 공적 영역으로서 교육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방향성에는 변함이 없다.

각국의 교육은 그 사회의 특수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반영한 결과다. 따라서, 서로 다른 사회의 교육체제를 단순한 잣대로 비교하는 것은 위험하고, 그 한계도 명확하다. 짧은 지면을 빌린 이 글 역시 이러한 한계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회에 대한 관심은 우리에게 당연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을 낯설게 사유할 수있는 기회가 된다. 우리를 둘러싼 제도나 환경에 익숙해지면 그에 대한 판단력을 잃게 된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고, 새로운 교육시스템에 대한 상상력을 놓치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프랑스 그랑제꼴은 한국 사회에서 흔히 얘기되는 것처럼 '대학 위 대학'이 아니다. ⓒ https://www.polytechnique.edu/

(이 연재는 공공선 거버넌스(원장 강치원)에서 기획한 것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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