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출산제, 비혼 엄마와 아이 사이를 가로막는다

[보호출산제로 보호받는 고통⑥]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보호출산제 시행 두 달이 돼가는 시점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왜 이렇게도 힘들며 어려움이 느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초저출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부는 보호출산제 시행 한 달간 보호출산제를 통해 상담하고 보호출산제로 출산하겠다고 하는 익명의 임산부들이 15명이라며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아직 보호출산제를 모르는 임산부를 위해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홍보하겠다고 말한다. 갑자기 왜 이렇게 열심히 홍보하고 적극적인지 조금은 의아스럽기도 하다.

임산부는 익명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며 출산기록도 남기지 않고 국가가 나서서 모든 것을 숨겨주겠다고 한다. 출산에 관한 병원비도 지원을 받는다. 퇴원하면 바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다. 당신의 출산 사실을 철저히 비밀로 해줄 것이다. 당신을 통해 태어난 아기는 절대로 당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동의하기 전까지는.

이렇게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 보호아동시설에 맡겨져 돌봄을 받게 될 것이다. 아기는 엄마, 아빠의 성이나 이름조차 알 수 없도록 새로운 성본 창설을 통해 단독으로 호적을 갖게 되며 그의 뿌리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하고 부모가 지어주는 이름 대신 지자체에서 만들어 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보호출산제를 선택한 임산부라면, 보호출산제가 나의 비밀을 보장해주고 나를 살렸다고 생각할 것인가? 또, 당신이 태어나는 갓난아기의 운명이라면 엄마 품을 떠나 시설 혹은 입양되어 살아가는 처지에 놓이게 될텐데, 그런데도 여전히 보호출산제는 좋은 제도라고 말할 것인가?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해결을 위해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라는 말을 많이 듣게 되고, 하게 된다. 그래야만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헤아릴 수 있고 보다 나은 해결책을 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당사자의 입장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도움이 과연 그들을 도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말 못 하는 아기의 처지에서 보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일 것이다. 부모의 존재를 모르게 하고 나의 성본조차 알 수 없는 심지어 국가가 나서서 나를 합법적 유기피해인으로 만들어 준 것에 감사해야 하나? 우리는 산모의 권리와 아기의 권리를 보호라는 이름으로 모두 빼앗고 있는게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보호출산제가 과연 아동 최우선이익에 맞는 제도인지, 아동의 알 권리와 기본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지 정말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언론과 방송 매체에서는 보호출산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보호출산제가 좋은 제도라고 생각하다가 몇 마디만 설명하면 '아, 내가 잘못 알고 있고, 잘 못 판단하고 있었네요'라고 180도 생각을 바꾼다. 과연 자신의 권리를 모두 앗아가는 이 제도가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천륜을 끊어 놓는 이 제도에 대해서 깊이 반성을 해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 우리의 속담처럼 결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입양 기록 때문에 현재도 수많은 해외 입양인과 국내 입양인들이 고통받고 있다.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결코 보호출산제를 앞세워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는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생명을 살리고자 한다면 임산부들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도록 강력한 지지와 지원체계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베이비박스ⓒ

보호출산제가 없었더라면 열다섯 엄마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상담이 필요한 임산부는 위기 상황에 놓여 있거나, 현재 자신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막막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로부터 지지받기 어려울 수도 있고 부모나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임신 사실을 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임신기에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아 협회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를 많이 봤다.

나 또한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숨기기 급급했고 누군가 눈치챌까 두려웠다. 함께 살고 있던 언니에게도 말하지 못했었다. 내 임신은 축하받지 못했고 당장 병원 가서 낙태하자는 말을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다. 위기임산부들의 어려움은 매우 다양하다. 예전 같으면 입양과 양육을 심각하게 고민하겠지만, 지금은 보호출산제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은 지난 한 달 동안의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호출산제가 없었더라면 열다섯 엄마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위기임산부들을 위해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임신기부터 출산 후 안정된 양육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한 지원이 있기를 바라며, 아래와 같은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요청한다.

첫째, 임신 6개월 이후부터 임신축하금 지원을 요청한다. 임신축하금은 임신한 여성이면 누구나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임신 사실은 분명 축하받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미혼모들은 임신 사실을 숨기거나 의논할 사람도 없고 병원을 가는 것도 두려워한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임신축하금을 지원한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이 될 것인가? 모든 임신이 축복이 될 수 있도록 정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둘째, 임신 7개월부터 4개월간 예비부모수당 지원을 요청한다. 현행 제도는 임신·출산진료비 카드(국민행복카드) 100만 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출산 후 아기의 출생신고가 이루어진 후에야 지원이 이뤄진다. 하지만 미혼모들에게는 예비부모수당이 절실히 필요하다. 임신 중기 이후가 되면 일을 계속하기 힘들고 권고사직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공과금, 주거비, 생필품, 식료품비 등등 생계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임신한 몸으로 혼자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모아둔 돈이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마저도 태어날 아기를 위해 아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근 타 기관 상담사례에서 임신 9개월 차 엄마가 일을 못 하고 수중에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있었다. 앞으로 돈이 없어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임산부는 없어야 할 것이다.

셋째, 안정된 주거 지원을 요청한다. 지역사회에서 안정된 공간에 살고 있는 경우 월세 지원을, 또 주거가 불안정한 경우는 LH전세임대를 지원해 태어날 아기를 안전하고 나은 환경에서 양육할 수 있도록 적극 주거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엄마들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기와 살 수 있는 안정된 주거공간이다.

임신기부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산모수첩이 필요하다. 산모수첩은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임신 사실 확인 후 발급을 받을 수 있으므로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미혼모들이 병원 진료를 꺼리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출산을 위해 병원을 찾게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임신축하금을 받고, 예비부모수당을 받으며, 임신 중 LH전세임대를 지원해 임신 사실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축하를 받는 문화로 전환되길 바란다.

넷째, 아동 연령 중심의 지원을 요청한다. 엄마의 나이나 경제상황에 관계없이 아동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것을 결정할 때, 아동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태어나는 아동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아동의 연령을 중심으로 지원해야 한다. 엄마의 나이가 많다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위의 요청사항들을 먼저 실행한 뒤 임신기부터 지원을 확대해 위기에 놓인 임산부들을 실제로 돕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미혼모와 그 자녀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원가족 보호 정책을 최우선으로 실행해야 한다.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나는 이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아이를 선택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아이를 선택할 것이라고.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생각지도 않았던 삶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국이 이렇게 잘 사는 선진국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보호출산제가 시행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우리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내가 가져가야 할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떠넘기고 두려워 회피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통감해야 한다. 책임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 낼 힘은 누구에게나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잘 보듬어준다면 지금 당장은 해결책이 아닌 것처럼 보이겠지만, 엄마와 아이를 분리하지 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지원이며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양육미혼모 관점에서 다시 한번 말하자면 엄마와 아이가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분이 응원을 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엄마와 아기를 생이별시키는 보호출산제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으며 엄마와 아이를 보호하지도 않는다. 엄마의 나이가 아닌 아동의 나이를 기준으로 더 세심한 지원과 임신기부터의 지원이 잘 이루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보호출산제가 여성의 모성과 아이의 인권을 지켜주는 법인가. 임신, 출산을 유지하기 힘든 여성의 어려움엔 눈 감고 이 제도 하에서 태어난 아동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권리마저 빼앗긴 이등시민을 만드는 법이다. 영화 <브로커>의 한 장면. ⓒ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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