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산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전라북도 정읍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

우리의 현대사는 이념갈등으로 인한 국가폭력으로 격심하게 얼룩지고 왜곡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이념시대의 폐해를 청산하지 못하면 친일청산을 하지 못한 부작용 이상의 고통을 후대에 물려주게 될 것입니다. 굴곡진 역사를 직시하여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의 비전을 펼쳐 보이는 일, 그 중심에 민간인학살로 희생된 영령들의 이름을 호명하여 위령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름을 알아내어 부른다는 것은 그 이름을 존재하게 하는 일입니다. 시간 속에 묻혀 잊힐 위기에 처한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여 기억하고 그 이름에 올바른 위상을 부여해야 합니다. <프레시안>에서는 시인들과 함께 이러한 의미가 담긴 '시로 쓰는 민간인학살' 연재를 진행합니다. (이 연재는 문화법인 목선재에서 후원합니다) 편집자

정읍, 산내

호남의 너른 평야 정읍, 산내는

9.28 수복 후

빨치산 전북도당의 거점 회문산 인근

그들의 보급 투쟁 지역이었다*

'해방구'였던 순창 쌍치면 오봉리

추령천 학살지와

방산마을 두들재 망대봉

경계지 머구실(먹우실)과

소금 한 되로 콩 한 되를 바꿔먹던 시절

콩 너(넷) 되를 줘야하는 첩첩산중 너디마을 넘어

칠보발전소

섬진강 상류의 물이

옥정호를 거친

남한 유일의 발전소로

취수구가 있던 산내의

탈취 작전은 결사항쟁터였다

그럼에도 차일혁 18사단 대대장이

공비 대장과 담판 지어

절대적 국가 재산

'칠보발전소는 파괴하지 말자'

남·북한을 넘어서는 평화의 약조로

지킨 일도 있었다는데

빨치산 전북도당 기포병단에게

학도병들이 몰살되자

복수한다고, 군경들이

땅만 파고 살던 사람들까지

낮 밤 없이 끌고 갔던 논둑길

그 자락마다 한 몸처럼 파묻히고

호수에 잠겼으니..**

품앗이하면서 순했던 혼백들

죄명이 무엇인가

해마다 그맘때, 9월이 오면

시퍼렇게 질린 가슴들 포개졌던

옥정호 언저리마다

붉디붉은 구절초로 피어

묻고 또 물어오는가!

* 차길진 「또 하나의 전쟁」 156쪽

** 김희곤(당시, 쌍치면 부동마을 주민) 증언- 유튜브 「군인이 온다」

▲ 정읍 옥정호. ⓒ백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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