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극우파 연합에 맞서 좌파 재편이 필요하다

[장석준 칼럼] 신자유주의와 극우 포퓰리즘의 종합에 맞서

프랑스 조기 총선은 파리 올림픽 한 달 전인 7월 7일에 끝났다. 이날 실시된 2차 투표에서 비록 과반을 획득한 정당이나 정당연합은 나오지 않았지만, 가장 많은 당선자를 낸 세력은 명확했다. 좌파정당들이 모인 '신인민전선(NFP)'이었다. 신인민전선이 하원 총 577석 중 180석을 차지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공화국을 위한 앙상블'이 169석, 극우파 국민결집(RN)이 142석을 기록했다.

총선 결과대로라면, 마크롱 대통령이 신인민전선의 추천을 받은 인물을 총리로 임명해야 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은 올림픽 핑계를 대며 총리 임명을 미뤘다. 신인민전선이 총리로 추천한 소장파 여성 경제학자 루시 카스테트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으면서 말이다.

이것은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역사로 보더라도 전례 없는 상황이었다. 사회당 소속이었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드골파였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각각 1986년, 1997년 총선에서 반대당이 승리하자 자신의 최대 정적(미테랑의 경우는 시라크, 시라크의 경우는 리오넬 조스팽)을 총리로 임명했다. 그러나 이제 이 전통과 상식은 마크롱에 의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돼 버렸다.

그러던 마크롱이 9월 5일 드디어 새 총리를 발표했다. 오랫동안 프랑스 우파의 대표 세력이었지만 현재는 원내 3대 정파(좌파, 마크롱파, 극우파)와 크게 차이 나는 제4세력(39석)으로 전락한 '공화파(LR, 드골파)'의 노장(1951년생) 미셸 바르니에였다. 총선 결과와는 상관없는, 아니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 결정에 신인민전선은 곧바로 반대 입장을 밝혔고, 특히 신인민전선 내 급진파인 장-뤽 멜랑숑의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I)'는 '총리 불신임,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콩코드 광장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셸 바르니에 = 신자유주의 + 반이민

총리로 임명된 바르니에는 어떤 인물인가? 많은 프랑스인에게 이 이름은 낯설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1978년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이 된 이후 거의 반세기 동안 드골파 명망가로서 의회 주변을 떠나지 않았고 장관직만 여러 차례 역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르니에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분명히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평생 당대 프랑스 우파의 평균적 신조를 대변하며 화려한 이력을 쌓아왔을 뿐 인상적인 업적이라 할 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아니, 하나가 있기는 하다. 바르니에의 이력 가운데 많은 이들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게 한 가지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강렬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영국인들이다. 바르니에는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유럽연합의 브렉시트 협상단 대표로서 영국에게 가혹한 협상조건을 강요하는 역할을 맡았다. 말하자면 1997년 외환위기 때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 총재가 한국인들에게 남긴 것과 같은 쓰디쓴 기억을 최근 영국인들에게 안겨준 인물이다.

한데 이 짧은 소개가 이미 바르니에를 상당부분 설명해준다. 바르니에가 평탄하게 정치 엘리트로 살아간 지난 반세기는 신자유주의가 탄생하고 승리를 구가하다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다. 이 시기에 프랑스 전후 우파의 주류인 드골파는 미국 주도 대서양주의에 맞서며 국가 개입 성향이 유독 강한 국가관리형 자본주의를 추구하던 창시자 샤를 드골의 이념, 노선과 계속 멀어지기만 했다. 이들은 동쪽 이웃(서독/독일)의 우파정당(기독교민주연합/기독교사회연합)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서쪽 이웃(영국)의 우파정당(보수당)이 열어놓은 신자유주의 물결에 동참했다. 바르니에는 이 흐름의 한 가운데에 있던 인물이다.

그러다가 신자유주의도 어느덧 황혼기에 접어든 2020년대 들어 바르니에는 오랜 정치 이력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을 도전에 나섰다. 브렉시트 협상단 대표 활동을 끝마친 바르니에는 소속정당인 '공화파' 안에 자신의 분파 '애국-유럽파'를 결성했다. 2022년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기 위해서였다.

이미 드골주의의 핵심을 내버린 '공화파' 안에서 바르니에가 '애국'의 내용으로 제시한 것은 비유럽계 이민 규제 강화였다. 반이민 정서가 동력 역할을 한 브렉시트에 대해 '징벌적' 협상조건을 강요했던 인물이 바로 그 반이민 선동을 수입하는 데 앞장선 것이다. 당 내 경선에서 바르니에는 헌법에 이민 제한 규정을 못 박고 이를 유럽연합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바르니에의 성적은 당 내 경선에서조차 3위에 그쳤고, 이걸로 정치 인생도 막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 내려간 줄 알았던 막이 다시 올라갔다. 7년 전 '낡은' 프랑스 정치를 호되게 비판하며 바람을 일으켰던 마크롱 대통령은 73세의 이 노정객을 무대로 한 번 더 불러냈다. 마크롱이 사회당 내 우파나 사회당과 연관이 깊은 명망가를 총리로 지명해 신인민전선 내부의 분열을 꾀할 것이라던 많은 언론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덕분에 신인민전선에 참여한 정당들은 사회당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한 목소리로 바르니에 총리 임명을 반대하고 나섰다.

바르니에 총리 임명의 논리 - 신자유주의와 극우정치의 새로운 종합

마크롱이 두 달이나 미적대다 결국 바르니에를 선택한 이유는 2025년 예산안 처리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마크롱은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이번 총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분명히 했지만, 헌법상 새 총선은 1년 뒤에나 실시할 수 있다. 물론 마크롱은 지난 두 달 동안 의회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내각을 통해서도 충분히 통치할 수 있음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래도 내년 7월까지 의회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 딱 한 가지 있다. 바로 정부 예산안 처리다. 이 절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크롱은 신인민전선 분열 획책 같은 정치적 곡예 따위는 집어치우고 바르니에를 낙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재정 문제는 현재 마크롱 정부, 더 나아가 프랑스 정치 전반의 뜨거운 쟁점이다. 유로존 내 제2의 경제 대국인 프랑스는 유럽연합 안에서 정부 부채의 절대적 규모가 가장 큰 나라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매년 정부 적자가 GDP의 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재정 상황에는 마크롱 정부도 한 몫 했다. 2017년에 마크롱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부랴부랴 추진한 정책은 부유세 폐지였다. 젊은 뜨내기 정치인을 집권자로 벼락 출세시켜준 기득권층의 은혜에 대한 참으로 성실한 보답이었다.

▲5일 취임식을 가진 미셸 바르니에 프랑스 총리(오른쪽)와 가르리엘 아탈 전 총리. ⓒ프랑스24 갈무리

하지만 덕분에, 가뜩이나 만성 경기 침체에 시달리던 나라의 재정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지난 7년 동안 마크롱 정부의 행보는 이 재정 적자 문제를 어떻게든 완화하려는 노력으로 점철됐다. 다만 부자 감세 기조를 버리거나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해결 방향은 하나뿐이었다. 부자에게 감세한 만큼 서민에게 증세할 수밖에 없었다. 즉, 아래로부터 위로 소득을 재분배해야 했다. 마크롱 1기 정부, 2기 정부에서 반복된 거대한 대중 항쟁이 모두 이런 뻔뻔한 도발에 맞선 저항이었다. 부유세 폐지-유류세 인상 패키지에 맞선 노란 조끼 운동이 그랬고, 연금 수급 연령 상향(달리 말하면, 연금 지출 축소) 시도에 맞선 작년 시위가 그랬다.

두 달 전 조기 총선에서 신인민전선은 이 문제에 대해 나름의 해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마크롱 정부 7년의 부정, 그 역전이었다. 부자 감세 철회나 부유세 복구 수준을 넘어 대대적인 부자 증세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신인민전선이 약속한 기존 복지 체제 유지와 생태 전환 투자를 실현하려면, 이런 세수 증가를 상회하는 지출 증가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인민전선 안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경우는 적자 폭 허용 수준에 대해 유럽연합과 재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쨌든 출발점은 서민이 아니라 기득권층의 부담으로 당장의 재정난을 진화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같은 급진좌파 정파만의 주장이 아니다. 연금제도 개악에 맞선 시위를 주도한 노동조합총연맹들(CGT 등)과 시민사회 단체들의 공통 요구이기도 하고, 토마 피케티를 비롯해 신인민전선 선거정책 작성에 참여한 비신자유주의-탈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입을 모아 권고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바로 이 목소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총선 결과에도 불구하고 신인민전선에 정부 구성 기회를 줄 수 없었던 것이다. 반면에 바르니에를 비롯해 드골파 전체는 마크롱 세력과 마찬가지로 '균형재정 준수 + 아래로부터 위로 향하는 재분배'라는 유럽연합형 신자유주의의 신도다. 하원에서 마크롱 세력에 드골파를 더하면 일단 신인민전선 의석을 상회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산안을 가결시킬 수 없다. 신인민전선을 따돌리는 것 외에도 또 다른 정파의 찬성 내지는 기권이 필요하다. 그 정파란 다름 아닌 국민결집이다. 그런데 국민결집은 신인민전선과 달리 바르니에 총리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다. 그럴 만도 하다. 바르니에가 대변하는 두 가지 정책 기조 가운데 '반이민'은 본래 국민결집의 창당 이념이자 핵심 가치다. 바르니에 내각 수립은 곧 국민결집 집권이 초읽기에 들어갔음을 뜻한다. 국민결집의 핵심 정책을 이미 실시하는 정부에 최상층 책임자로 가장 어울리는 이들은 (뒤늦게 전향한 마크롱파나 드골파가 아니라) 국민결집 인사들일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재정 문제에서도 국민결집은 마크롱-바르니에의 신자유주의 연합과 가까워지고 있다. 2022년 총선 이후 원내 주요 세력이 된 국민결집은 자본 진영에게 '책임 있는' 수권 세력임을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래서 부자 감세 기조를 뒤집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으며, 주류 세력의 '건전재정'론에 동조한다. 이민 규제 관련한 예산 항목만 자신들 뜻대로 조정할 수 있다면, 다른 내용은 신자유주의 연합에 전혀 이의가 없다는 식이다. 그러니 마크롱이 국민결집의 지지 혹은 기권을 예상하며 안심하고 바르니에를 총리로 임명할 만도 하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프랑스 주요 정치세력 간의 묘한 역학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마크롱이 이끄는 신자유주의 세력(자칭 '중도파' 연합)은 극우파의 집권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집권하고 있다. 그러나 집권 내내 이들은 사회의 더 많은 부분을 불만과 분노의 소용돌이로 내몰아 극우파의 집권 가능성을 높여줬다. 이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연합은 극우파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며 극우파의 핵심 주장을 받아들였고, 반대로 점점 더 제도권 지분을 넓혀가는 극우파는 신자유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로 자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직 좌파만이 '민주주의'의 신실한 신자로 남아 그들의 기회를 주장하고 나서자, 신자유주의 세력과 극우파는 한 몸뚱이가 돼 이에 맞서고 있다. 드디어 자본주의의 참된 여당이 완성돼가는 것이다.

신자유주의-극우파 연합에 맞서 좌파 재편이 필요하다

바르니에 내각의 등장은 신인민전선에게는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유권자가 부여한 집권 기회를 결과적으로 놓쳤다는 점에서는 물론 커다란 위기다. 그러나 바르니에 총리가 드러내는 현 프랑스 집권연합(신자유주의 + 극우파)의 명확한 색깔은 신인민전선이 제1야당으로서 응집력과 확장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신인민전선 내부의 오른쪽 구심인 사회당과 왼쪽 구심인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사이의 조기 격돌을 피했다는 점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간 벌기'이지 문제의 '근본 해결'은 아니다.

아니, 사회당 내 우파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 사이에 잠복한 근본적 입장 차이는 오히려 바르니에 내각 등장과 함께 더욱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간 프랑스 좌파에게 당연시됐고 이번 조기 총선에서도 결국은 신인민전선의 승리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이른바 '공화국 전선', 즉 '반극우파 연합'의 유효성이 심판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반극우파 연합'이란, 간단히 말해, 대선 결선투표나 총선 2차 투표에서 극우파에 맞서 신자유주의파와 좌파가 연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바르니에 정부를 통해 신자유주의파와 극우파가 서로 수렴하고 있음이 분명해진 지금 상황에서도 과연 '반극우파 연합'은 유효한가? 이제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와 극우정치의 새로운 종합에 맞서는 '더욱 좌파스러운' 좌파연합이 아닌가?

이 물음에 대해, 지난 지방선거에서 사회당 선거연합의 약진을 이뤄낸 라파엘 글뤽스만이 이끄는 사회당 안팎의 리버럴 세력은 여전히 '반극우파 연합'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멜랑숑식 급진좌파 정치와 결별해야 한다고 답한다. 정반대로, '총리 불신임, 대통령 탄핵'을 외치며 가두 투쟁을 시작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는 신인민전선 총선 공약을 중심으로 마크롱-바르니에 정부에 강경하게 맞섬으로써 정치 실망층과 국민결집 지지층까지 견인하는 더욱 강력한 좌파연합을 구축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들은 더 나아가 마크롱이 반민주적 통치를 펼치는 데 제도적 기반이 되고 있는 현 제5공화국 헌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인민전선의 나머지 세력들은 이 두 극 사이에서 동요하고 있다. 공산당과 녹색당은 상대적으로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지만, 사회당의 경우는 신인민전선 결성에 앞장선 올리비에 포르 현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번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을 비롯한 노장 세력과 힘겹게 대치하고 있다.

복잡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시대의 급속한 변화에 맞춰 좌파 전체를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시도를 주저할 수는 없다. 이 점에서, 신인민전선의 급박한 결성과 열정적인 선거운동, 누구도 예상 못한 2차 투표 승리와 같은 이번 조기 총선의 장쾌한 이야기들은 실은 더 긴 드라마의 제1막 제1장에 불과하다. 드라마는 이제 다시 한 번 엘리제궁을 벗어나 거리에서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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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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