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폭력 원인을 여성에 돌린 결과는? '가슴 다림질', '목소리 금지'

아프리카 일부서 성폭력 유발한다며 여아 가슴 돌로 짓눌러 발달 막아

여성에 대한 성적 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인 여성에게 돌리는 가부장적 사고의 결과로 아프리카에서 이른바 '가슴 다림질(Breast Ironing)'로 불리는 여성 신체 훼손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최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정권이 여성의 목소리가 남성을 악에 빠뜨린다며 여성이 공공장소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금지하기도 했다.

카메룬을 비롯해 나이지리아, 차드, 토고, 베냉 등 중서부 아프리카에서 존속 중인 가슴 다림질 혹은 유방 편평화(Breast Flattening) 관행은 주로 2차 성징이 발현되기 시작하는 9~15살 여자 어린이들의 가슴을 단단하거나 뜨거운 물체로 다림질하듯 두드리고 짓누르는 행위를 말한다. 행위의 목적은 유방 발달 지연으로 주로 어머니 등 가족에 의해 수행된다. 유엔(UN) 추산 380만 명의 아프리카 10대가 이러한 관행의 영향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행이 여성을 성적 폭력으로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고 본다. 짐바브웨에 기반을 둔 국제보건단체 아프리카건강기구(AHO)는 이 지역에서 가슴 다림질이 유방 발달을 지연시킴으로써 여성이 남성의 성적인 관심을 덜 끌게 되고 강간,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이를 통해 소녀가 성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게 돼 조기 결혼을 피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는 믿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신체나 행동을 교정해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나타나는 극단적 행태 중 하나다.

2021년 의학 전문 학술지 세계건강저널(JoGH)에 실린 관련 연구는 이들 사회에서 여성의 결혼 전 "순결"이 "가족의 명예"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가슴 다림질이 혼전 성관계, 혼전 임신을 막는 방법으로 간주돼 가족의 사회적 지위와 위상을 지키는 데 이용된다고 설명했다. 연구는 "이는 여성의 몸과 성(sexuality)을 통제하려는 시도"이며 "널리 퍼진 성 불평등"과 엄격한 성역할을 강조하고 남성에게 여성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하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관습"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아프리카건강기구는 가슴 다림질에 사용되는 숫가락, 빗자루, 돌 등 관리되지 않은 도구로 인해 피해 여아에게 즉각적인 건강 문제가 발생할 뿐 아니라 여성들이 향후 감염, 발열, 조직 손상, 암, 유방의 완전한 소실까지 겪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나이지리아 남부 카메룬 접경지대 크로스리버주에서 자란 카메룬 난민 여성 엘리자베스 존(27)은 지난 7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거의 20년이 지난 뒤에도 가슴 다림질을 당한 날의 끔찍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증언했다. 그는 10살 생일 다음 날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세 명의 여성이 다리를 꽉 잡은 상태에서 어머니가 뜨거운 절구로 가슴을 짓눌렀다고 말했다. 존은 이후 수년간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심한 가슴 통증에 시달렸고 진통제로 겨우 고통을 다스렸다.

고통은 통증에서 끝나지 않았다. 2021년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존은 의사로부터 가슴 다림질 탓에 유방 조직이 손상돼 모유 수유가 어려울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시술을 제안 받았지 시술비를 감당할 수 없어 포기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모유 수유 때 통증이 더 심해졌음에도 수유를 시도했지만 원활하지 않았고 가난한 형편에 분유값도 감당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존은 생후 4달 된 아이를 잃었다.

나이지리아 인권운동가 데이비드 고즈윌은 알자지라에 이 행위의 실행자들은 "가슴이 발달하면 남성의 관심을 끈다고 믿기 때문에" 딸이나 친척 여아들에게 가슴 다림질을 행하지만 이는 그저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관행일 뿐이라며 "많은 여성들이 이로 인해 건강 문제로 고통 받는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엔 영국의 아프리카계 공동체 안에서도 여아에 대한 가슴 다림질이 자행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며 영국 사회에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여성을 폭력이나 아동 결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몸에 위해를 가하는 역설적인 관행 종식을 위해선 여성을 억압하고 예속하는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영국 포츠머스대 국제개발학 교수는 탬신 브래들리는 2019년 호주 학술 전문 매체 <컨버세이션>에 이 관행의 "원동력"을 바라봐야 한다며 "여성의 성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보고 숨기고 부정하는 광범위한 신념"이 역전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 여학생 "말 할 수 없는 우린 움직이는 시체"…노래 부르는 영상 온라인에 올리는 저항 운동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조직 탈레반이 2022년부터 재집권 중인 아프가니스탄에선 지난달 21일 여성이 집 밖에서 얼굴을 가려야 하는 것은 물론 목소리도 내선 안 된다는 새 법이 공포됐다. 여성의 얼굴과 목소리가 남성을 유혹과 악에 빠뜨린다는 이유다.

탈레반 정권은 이미 여아의 중등학교 교육을 금지하고 여성의 이동권을 제약하며 고용을 제한해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를 지우고 있다.

이 주 초 공개된 영국 BBC 방송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10대 소녀 샤바나(가명)는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선 안 된다는 새 법 공포 뒤 저항할 힘조차 잃었다고 토로했다. 샤바나는 탈레반이 여학생의 중등학교 교육을 막지 않았다면 내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해 경영학을 공부할 예정이었지만 3년 전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다른 소녀들과 사설 영어 강의만 겨우 받고 있다.

샤바나는 방송에 "새 법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수업에 더이상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밖에 나가면 결국 말을 하게 되고 그러면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무사히 집에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수업을 계속 듣게 된 샤바나는 BBC에 "버스에서 무서워서 마스크를 벗지 않았고 우리(친구들)끼리 말하는 것조차 피했다"며 "말을 할 수 없다면 왜 살아야 하나? 우린 움직이는 시체와 같다"고 했다.

아프간 여성들을 위한 비밀 학교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는 심리학자 카리나(가명)는 BBC에 새 법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여성이 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방송에 이 여성들이 "모든 희망을 잃었고 삶을 이어갈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며 상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밀 학교를 운영하는 여성 조직의 일원인 교사 시린(가명)은 "이슬람 역사에선 목소리를 낸 여성이 너무나 많다"며 새 법이 이슬람 율법에 부합한다는 정권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탈레반이 "여성을 인간이 아닌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도구로 본다"고 비판했다.

목소리를 막는 새 법에 대항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온라인에 올리는 여성들의 저항 운동도 등장했다. 지난 5일 미 CBS 방송은 이 운동에 참여한 한 여성이 "탈레반은 여성을 두려워한다. 여성의 목소리를 두려워한다. 그들은 아프간 여성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고 우리 목소리가 그들을 파괴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여성혐오 법으로 사회의 절반을 침묵시키려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자매들과 함께 아프간 북부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영상을 녹화해 올린 이 여성은 "아프가니스탄 여성을 잊지 말아 달라"고 국제사회에 간청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의 한 작업장에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리는 이슬람 복식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들이 손수건에 수를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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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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