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빵 후원' 바꿔야 안세영 셔틀콕이 자유롭게 난다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안세영의 '파리 독립선언'과 리나의 '단페이'

안세영 발언 때문에 10년 전 중국 여자 테니스 스타 리나(42)가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여자 단식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다시 봤다. 리나는 2011년 프랑스 오픈 여자 단식에서도 우승을 차지했었다. 아시아 선수 최초의 그랜드슬램 테니스 대회 단식 우승이었다.

안세영과 종목도 다른 리나의 경기 장면을 다시 본 이유는 그녀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중국 테니스 협회로부터 독립했던 최초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코트 위를 나는 '단페이' 리나의 탄생

리나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연관 단어로 '단페이(单飞)'가 생성된다. 중국어로 '홀로 난다'는 뜻이다. 왜 단페이가 리나의 연관 검색어가 됐을까?

중국 테니스 유망주 리나는 2001~2002년 사이에 중국 테니스 협회와 갈등 관계였다. 리나는 스파르타 식의 중국 스포츠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를 원했지만 중국 테니스 협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대학에 갔고 잠시 동안 테니스 코트에서 멀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2년 뒤 테니스 라켓을 다시 잡았고 2008년 중국 테니스 협회로부터 독립했다. 이 때 생겨난 말이 단페이였다. 리나는 이 순간부터 자신이 선택한 개인 코치와 해외 투어를 다녔고 그녀가 상금과 기업 후원 등으로 벌어들인 수입의 90%를 가져갈 수 있었다. 협회가 선정한 코치 밑에서 훈련을 받고 상금과 기업 후원의 절반이 넘는 금액을 중국 정부가 가져갔던 과거와의 결별이었다.

2014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여자 단식에서 리나가 정상에 올랐을 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리나의 우승을 이렇게 평가했다. "중국 대표팀에서 보낸 시절이 없었다면 리나의 성공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리나의 성공에는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흘린 땀방울이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중요한 건 자유였다. 그 심리적인 평화가 리나를 세계 정상으로 이끄는 결정적 동력이 됐다.

하지만 중국은 리나의 우승을 애국주의로 승화시키려고 했다. 리나의 고향인 우한이 위치하고 있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서기 리훙중은 그녀에게 80만 위안(13만 2000 달러)의 포상금을 줬다. 중국 테니스 협회에서 벗어나 개인 팀과 함께 성공시대를 연 리나가 아닌 중국이 키운 위대한 선수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중국 공산당의 접근 방식은 중국 내에서도 비난의 대상이 됐다. 테니스에서 이룬 리나 개인의 성공을 중국 공산당의 정치적 업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활약하기 위해 독립을 선언한 리나에게 중국 정부가 포상금을 준다는 것은 그녀에게 실례이며 세금낭비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후베이성으로부터 포상금을 받는 기념행사에 마지못해 참여했던 리나의 얼굴도 굳어져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오픈에서 우승하고 나서 그녀가 했던 유쾌한 농담은 이 행사장에서 들을 수 없었다. 단페이 전향 이후 리나는 중국 정부로 받은 포상금은 주로 기부했다.

▲ 2011년 프랑스오픈, 2014년 호주오픈 등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중국 테니스의 전설 리나 ⓒ리나 페이스북

안세영의 파리 독립 선언과 배드민턴의 특수성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22)은 경기 자체보다 경기 후에 나온 발언 때문에 더욱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누군가는 기대치를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성과를 낸 한국의 파리 올림픽 축제 분위기가 안세영의 발언으로 깨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배드민턴 대표팀 체제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안세영의 파리 선언이 궁극적으로 한국 스포츠의 커다란 분기점이 됐으면 한다.

그녀의 용기 있는 발언이 실제 변화로 이어지려면 우선 배드민턴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배드민턴 선수 안세영의 독립은 테니스 스타 리나의 단페이와는 다르다. 배드민턴 선수가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대표팀 자격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대다수 국가의 배드민턴 협회가 개인 자격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테니스는 개인 자격으로 자유롭게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배드민턴은 테니스와 같이 개인 선수의 독립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안세영이 개인 스태프와 함께 배드민턴 대회에 참가하려면 대한 배드민턴 협회의 규정이 바뀌어야 한다. 현재 한국 배드민턴 협회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선수가 국제대회에 참가하려면 국가대표 활동기간이 5년이 넘고 여자의 경우 만 27세 이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안세영은 2028년 LA 올림픽까지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물론 협회가 안세영뿐만 아니라 향후 개인적으로 팀을 꾸려 국제대회에 참여하려는 한국의 배드민턴 선수들에게 독립의 길을 열어 줄 수 있다. 협회가 선수들의 세계 랭킹에 따라 국가대표 자격만 부여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배드민턴 협회를 운영하는 국가도 꽤 있다.

안세영 독립에 걸림돌이 되는 대한 배드민턴 협회의 몰빵 스폰서십

규정이외에도 대한 배드민턴 협회의 스폰서십 구조는 안세영 독립에 또 다른 걸림돌이다. 협회는 현재 일본 요넥스로부터 연간 30억 원 이상의 후원을 받는다. 대표 선수가 요넥스의 유니폼, 라켓과 운동화를 모두 사용해야 하는 조건이다.

요넥스가 많은 후원금을 내놓는 이유는 한국이 배드민턴 강국이기 때문이다. 특히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몇몇 스타 선수들의 광고효과가 그 중심에 있다. 그러다 보니 협회는 간판 선수가 개인 용품 후원을 받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협회 후원금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 독립을 원하는 간판 선수가 개인 팀을 꾸리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 테니스나 골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배드민턴 대회의 상금만으로는 개인 팀을 제대로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개인 후원이 절실하다.

무릎 부상 중에도 파리 올림픽에서 높은 시드 배정을 받기 위해 많은 대회 출전을 강행했던 여자 세계랭킹 1위 안세영이 2023년에 받은 상금은 9억 원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테니스는 그랜드슬램 대회 단식 우승 상금이 30억 원이다. 심지어 그랜드슬램 대회는 물론이고 그보다 한 단계 낮은 투어 급 테니스 대회도 참가 선수에게 호텔과 공항 픽업 차량을 제공한다. 테니스가 배드민턴에 비해 산업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론 절충안은 있다. 협회가 선정한 후원업체 유니폼을 입고 운동화와 라켓은 개인이 후원을 받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 방식은 일본 배드민턴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본 배드민턴 협회가 이렇게 협회 후원과 개인 후원을 나눠 놓은 근본적 이유는 운동화와 라켓의 경우 개인별로 선택하는 게 경기력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안세영이 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의 배드민턴'만큼 '나의 배드민턴'도 중요하다

안세영 발언 이후 대한 배드민턴 협회 입장에서 '몰빵 스폰서십'은 양날의 검이 됐다. 오랫동안 주니어 배드민턴 선수를 육성하고 성인 대표팀의 훈련과 국제대회 출전을 지원할 수 있는 대한 배드민턴 협회의 힘은 스폰서십에서 나왔다. 실제로 안세영도 주니어시절부터 이런 배드민턴 후원 체제의 혜택을 받았다.

배드민턴은 1980년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대기업 회장 체제로 운영될 수 없어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작은 봉제 회사 루루 산업의 유이균 대표가 협회 회장으로 적지 않은 찬조금을 출연하며 근근이 버텼다.

하지만 1990년 루루 산업이 도산하자 배드민턴 협회는 회장의 출연금 없이 운영됐다. 협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용품 후원사와의 계약에 눈을 떴고 2000년대 이후에는 비인기 종목 협회로는 드물게 재정적 자립에도 성공했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배드민턴 국제대회가 된 코리아 오픈 대회도 용품사의 후원을 토대로 성장했다.

문제는 협회가 몰빵 후원 계약의 달콤한 맛을 너무 오랫동안 탐닉했다는 점이다. 이미 배드민턴 스타였던 이용대가 협회의 이런 후원 계약에 불만을 품고 대표팀 은퇴를 한 시점부터 깊은 논의를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협회는 어린 시절 선수들이 협회 후원의 혜택을 누렸으니 나중에 스타가 되어서 이를 보상해 줘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갇혔다. '한국의 배드민턴'만큼 '나의 배드민턴'도 선수들에게 중요하다는 점이 간과된 셈이다.

지금 당장은 몰빵 후원 계약이 '제2의 안세영'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길게 보면 선수들의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 개인 후원의 자유가 더 많은 배드민턴 스타 탄생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배드민턴 스폰서십 다각화의 시작점은 동남아시아

그런 의미에서 어렵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협회 스폰서십의 다각화가 필요하다. 협회가 대표 선수들이 사용하는 모든 용품에 대한 후원 계약을 하지 않아야 적어도 운동화나 라켓에 대한 개인 후원이 가능하다. 줄어든 용품사의 후원 금액은 다른 기업 후원으로 상쇄해야 한다.

다양한 기업으로부터 후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협회 후원 상품 목록 자체가 세분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일본 배드민턴 협회 후원사는 대표팀 공식 용품 제공사, 대표팀 공식 후원사, 대표팀 공식 서포터사와 협회 공식 후원사로 나뉘어져 있다. 하지만 대한 배드민턴 협회 후원사는 국가대표 공식후원사라는 타이틀로만 존재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일본 배드민턴의 최대 후원사인 다이하츠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도요타의 자회사인 다이하츠는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은 경승용차를 만든다. 배드민턴이 국기(國伎)인 인도네시아에는 다이하츠 자동차를 생산하는 대규모 공장도 있다. 다이하츠가 배드민턴에 열광적인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즐겨 보는 제팬 오픈의 타이틀 후원사가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한국 배드민턴에도 이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역에 총 344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는 KB금융은 지난 2016년부터 대한 배드민턴 협회를 후원하고 있다. 2023년 협회 후원사가 된 에스-오일(S-Oil)도 지역별 매출 비중에서 배드민턴에 관심이 많은 동남아시아가 국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한국 경제에 점점 더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동남아시아에서 배드민턴이 꽤 인기 있는 스포츠라는 점은 배드민턴 협회 후원 다각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여기에 배드민턴이 동호인 스포츠로 한국에서 매우 인기가 높고 다문화 시대에 적합한 종목이라는 점도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만 한다. 안세영의 독립도 이같은 협회의 미래지향적 접근에서 출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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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성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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