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제한 완화" 인권위 권고에 "규제 강화하겠다" 반발한 학교

학생인권조례·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정면 위배…인권위 유감 표명

등교 후 모든 일과시간 동안 학생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금지해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개선 권고를 받은 고등학교가 도리어 규제를 강화했다.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과도하게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국내·국제 규정들을 정면으로 위반한 셈이다.

인권위는 개선 권고를 수용하지 않은 이 학교에 유감을 표하며, 학교는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가 16일 공개한 결정문에 따르면, A학교는 '학생생활지도규정'에 따라 매일 담임교사가 조회 시간에 학생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하고, 긴급 상황을 제외한 일과시간 동안 소지와 사용을 금지했다. 또한 정당한 이유 없이 일과 중 휴대폰을 제출하지 않고 소지한 학생에게는 학교봉사와 사회봉사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었다.

이에 A학교 재학생 B씨는 학교가 학생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및 통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자유롭게 사용하면 게임이나 유해 사이트에 몰입할 수 있어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고, 급우 간 대화 단절, 협동심이나 배려심을 키우기 어려우며 무분별한 촬영으로 성범죄 등에 악용할 소지도 매우 높다"며 휴대전화 규제가 정당하다는 입장이었다.

인권위는 A학교의 조치에 대해 "그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적합할 수 있다"면서도 "학생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교육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수 있음에도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제한해 헌법이 요구하는 과잉금지원칙에 반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또한 "휴대전화 소지를 전면 금지하기보다 공동체 내에서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스스로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게 보다 바람직하다"며 지난해 4월 해당 규정을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A학교는 인권위의 권고 이후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며 일과 중 학생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기존 규정을 유지하는 한편, 학생의 휴대전화를 수업방해 물품으로 다루는 규정을 신설해 휴대전화 제한을 도리어 강화했다.

이에 인권위는 학교 규정을 그대로 두고 교육활동 방해 행위에 대한 관리·감독만을 강화한 데 대해 인권위의 권고를 불수용한 것이라고 판단,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사회적으로 환기할 필요가 있다"며 A학교의 조치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A학교의 조치는 아동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는 국내·국제 규정들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에 의해 효력이 재개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이 학생의 휴대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의 소지 및 사용 자체를 금지하면 안 된다고 규정했다. 경기도학생인권조례도 교장 등은 학생의 휴대전화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되며 교육활동과 같이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따라서는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을 규제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은 당사국의 어떠한 아동도 통신에 대해 자의적이거나 위법적인 간섭을 받지 않고(제16조),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과 협약에 부합하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28조 제2항)고 규정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정에도 학생들의 휴대전화 소지·사용을 제한하는 학교들이 여전히 많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인권위가 다룬 학교 내 인권침해 사건 2716건 중 두발·용모·복장·휴대전화 제한, 과도한 소지품 검사 등 권리 제한 사건이 1170건(43.1%)로 가장 많았다.

▲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가 열린 2024년 4월 26일 오후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대한 반대 집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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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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