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수해 매년 반복되는데…김정은, 근본 대비보다 치적 과시에만 집중

[현안진단] 북한 수해, 인도주의 정신으로 남북의 벽을 넘어서자

북한 수해의 규모와 원인

7월 29일자 북한 매체에 따르면 북한 북부 국경지대에 내린 기록적인 폭우로 압록강 수위가 위험계선을 훨씬 넘어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의 여러 섬 지역들에서 5000여 명의 주민들이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압록강 하류의 평안북도 신의주시와 의주군에서만 폭우로 4100여 세대와 농경지 3천 정보를 비롯해 공공건물과 시설물, 도로, 철길이 침수됐다.

북한은 신의주와 의주 지역 이외에 이번 폭우로 인한 북한 전역의 피해 전모를 밝히지 않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피해 규모가 알려진 신의주시와 의주군뿐만 아니라 평안북도와 자강도, 양강도 압록강변의 광범위한 지역을 '특급재해비상지역'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이들 지역뿐 아니라 수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원산 지역에도 617㎜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으며, 천마 지역에도 598㎜의 폭우가 내렸다. 2020년 9월 원산과 강원도 지역에 200mm의 비가 내렸을 당시 북한 당국은 대책회의를 개최하고 주민소개사업 소홀로 '수십여 명의 인명피해'가 나는 중대사고가 발생했다며, 원산시의 "당, 행정, 안전기관 책임일꾼들을 당적·행정적·법적으로 엄하게 처벌한다"고 선포했다.

북한에서 '당적· 행정적·법적 엄한 처벌'은 최고 수위의 징계를 의미한다. 당시와 비교할 때 이번 원산 지역의 피해도 작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북한 수해 규모가 북한 당국이 밝힌 것보다 광범위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정은 위원장은 7월 29~30일 소집한 정치국 비상확대회의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인명피해까지 발생"했다며 폭우로 인한 북한 주민의 사망·실종 가능성을 암시했지만 그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신의주와 의주 지역의 경우 저지대가 많으며, 침수된 압록강의 비단섬 같은 경우 수해에 매우 취약하다.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신의주와 의주의 지형적 특성상 폭우로 인해 인근 상류의 태평만댐과 수풍댐 방류와 밀물 시기가 겹칠 경우 피해는 급격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현지에서 비를 맞으며 구조를 진두지휘하고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은 채 소형 고무보트를 타고 피해지역을 둘러보는 장면은 사태의 심각성을 입증한다. 북한에는 피해 방지와 복구 작업을 위한 총동원령이 내려진 상황이며, 매체들은 각지에서 현장 파견을 탄원하는 사람들이 넘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신의주와 의주를 비롯한 압록강과 두만강 주변뿐만 아니라 북한의 수해가 빈번하게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의주와 의주의 경우 2010년 8월과 2017년 7월에도 압록강 범람의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다.

지난해 7월에도 노동신문은 압록강 하구의 비단섬에 '뜻밖의 재난'이 발생했으나 김정은 위원장이 새 살림집(주택) 건설을 지시하고 부엌세간과 땔감 마련 문제까지 모두 챙겼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 매체는 2012년 7월 내린 폭우와 홍수로 사망·실종자가 569명이라고 보도했으며,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2016년 8월 말~9월 초 함경북도 일대를 강타한 홍수로 133명이 사망하고 395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2020년 8월 강원도 김화군 일대에 90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져 도로가 모두 끊어졌을 때 김정은 위원장은 헬리콥터로 현장을 돌아봐야 했으며, '처참한 참상'을 보고받고 가슴이 떨렸다고 언급했다.

2021년 8월 함경남도 수해 당시 북한은 당 군사위원회 긴급 확대회의를 소집한 바 있으며, 지난해 8월에는 안석 간석지 침수 피해로 김 위원장이 김덕훈 총리를 공개 질책했다.

반복적인 북한 수해는 김정은 정권이 인프라 개선 없이 핵과 국방력 강화, 그리고 치적 과시용 건설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지난해 북한 경제는 3.1% 성장했으며, 아파트와 살림집 등 건설부분이 8.2%로 성장을 주도했다. 반면 전기·가스·수도 부문은 4.7% 감소하는 기현상을 보였다. 주택은 늘었어도 전기, 수도, 가스는 공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프라 없는 북한 건설의 현주소다.

두 번째는 대북제재로 인한 북한 경제 전반에 대한 타격이다. 장기간의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는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으며, 재해방지에 필요한 각종 물품과 중장비 등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의 반복되는 수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하천의 준설과 제방 등 영구적인 구조물들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하지만 북한 교역의 대부분이 제재대상인 현 상황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당장 이번 수해 피해복구를 위해서는 긴급 구호와 함께 건설용 중장비 등이 반입되어야 하지만 운반수단과 금속제품은 모두 북한으로 반입할 수 없는 제재대상이다.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7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22차 정치국 비상확대회의가 29일부터 30일까지 평안북도 신의주시 피해 지역에서 진행됐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김 위원장(맨 왼쪽)이 수해 지역을 보트를 타고 돌아보는 모습. ⓒ로동신문=뉴스1

북한 수해를 보는 남북의 두 시선

8월 2일 김정은 위원장은 수해 현장을 시찰하고 돌아오는 길에 신의주와 의주 지역의 고립된 북한 주민 구조에 나섰던 직승기(헬리콥터)부대를 축하 방문해 훈장을 수여하고 격려 연설을 했다. 김 위원장은 구조에 나섰던 조종사들과 기념촬영을 했으며, 밤에는 부대에 가설된 대형 천막 안에서 조종사 및 간부들을 위한 연회를 베풀었다.

압록강변의 대규모 지역을 '특급재해비상지역'으로 선포하고 전국적인 총동원령을 내린 국가적 위기 속에서 훈장을 수여하고 축하 연회를 개최하는 것이 그리 급한 일이었는지 김 위원장 스스로 자문할 일이다.

기록적인 폭우로 신의주와 의주를 포함해 평안북도, 자강도, 양강도 등 압록강 인근 북한지역에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것은 7월 27일이다. 그러나 7월 28일자 <노동신문>은 전날 있었던 북한 전승절(정전협정기념일)에 김정은 위원장 참관 하에 치러진 노병들과의 상봉모임, 6.25 상징종대의 행진, 기념공연 등 3건의 성대한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수해에 대해서는 알리지 않았다. 조선중앙TV 역시 수해 피해를 외면하고 전승절 기념행사를 특집 편성해 집중적으로 보도했을 뿐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번 훙수 피해의 책임을 물어 사회안전상을 해임하고 관계자들을 엄하게 질책했으며 처벌을 지시했다. 그러나 천재에 가까운 이번 홍수 피해를 인재로 몰아가는 것은 김 위원장 본인을 대신할 희생양 찾기라는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작 대규모 수해가 발생한 시각 김 위원장 자신은 평양에서 성대한 전승절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월 31일 국내 한 매체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수해로 인한 사망·실종자가 1100명에서 최대 1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악천후 속 복수의 헬기가 추락 또는 불시착했고, 탑승인원 전원이 사망한 사례도 있었다"고 구체적인 상황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를 깎아내리고 우리 공화국의 영상에 먹칠을 하자고 악랄한 모략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비난하며, 신의주 지구에서 인명피해가 한 건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임무수행 중 1대의 직승기가 구조 지역에서 불시 착륙한 사실이 있으나 비행사들이 모두 무사했다"며 우리 매체의 보도를 조목조목 부인했다.

김 위원장까지 직접 나서 수해복구에 나선 인도적 위기 상황에서 사실 확인이 어려운 정보로 북한을 자극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된다.

헌법정신에 따른 조건 없는 인도협력

다행인 것은 대한적십자사가 북한 수해에 대해 인도적 지원을 제의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2022년 코로나19 사태 당시 대북 의료지원 제의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 이루어진 두 번째 제안이다. 통일부 역시 대북지원 제의에 대해 북한의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우리 민간단체도 북한 수재민 지원을 위한 대북 접촉 신고를 했으며, 국제사회도 대북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7월 30일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마치며 북한이 위기를 한두 번 겪은 것이 아니라며 "언제나 기적만을 창조하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에도 "위기를 딛고 억세게 떨쳐 일어나 기적적인 성과들을 일으켜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핵과 국방력에 자원을 집중하고 과시용 건설 사업에 주력하는 정책으로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반복적인 수해는 북한체제의 구조적 모순에 근거하는 것이며, 매번 기적만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시대착오적인 자력갱생 구호만으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자충수일 뿐이다.

이민위천과 인민대중 제일주의를 내세우는 김정은 정권이 할 일은 당장 이재민을 구호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것이며, 중장기적으로 북한의 취약한 재해방지 인프라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처럼 내민 우리의 손을 잡아야 하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인도협력은 인류보편의 가치이며, 북한도 1984년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서울 경기 충청지역에 발생한 대규모 수해에 대해 대남 수해지원물자를 보내온 사례가 있다는 점을 상기할 일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북·통일정책 추진에 있어 헌법정신을 강조해왔다. 헌법 제3조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은 잠재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 이탈주민이 자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이유이다. 헌법정신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인도적 위기에 대해서 당연히 우리 정부의 책임과 의무가 발생한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우리의 대북지원 의사 공개 직후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며 대남 적대 의식을 드러낸 만큼 이번 북한 수해를 계기로 남북협력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1983년 북한의 아웅산 묘소 테러사건으로 경직된 남북관계가 1984년 9월 북한의 대남 수해지원으로 해빙기를 맞았으며, 1985년 남북 첫 이산가족상봉 성사, 그리고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과 박철언 안기부장 특보의 방북으로 이어진 사례를 상기할 일이다.

고강도 군사적 대치국면의 장기화는 남북 모두에게 고비용 구조를 강요할 뿐이다. 윤석열 정부는 집권 직후부터 남북관계 정상화를 강조해왔다. 남북관계 정상화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입각해 남북 간 화해와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며, 중장기적인 상호 공존 과정을 통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것이다. 큰 수해를 당한 북한 주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은 동포애와 인류애에 비추어 당연하다. 평화도 거기에서 시작된다. 남북 당국이 속히 조건 없는 인도협력을 위한 접촉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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