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된 전공의 공백…예민해진 교수들, 위축되는 간호사들

[장기화된 의정갈등, 고통받는 병원노동자 ④] 서울 사립대병원 간호사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수련병원을 떠난 지 140일이 넘었다. 남은 병원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환자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이 현장에 미친 영향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 병원 노동자들의 글을 통해 전한다. 편집자

지금 대한민국은 아파도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의료재난 위기에 처해 있다. 아픈 사람이 손해고, 아프면 의사를 찾아 헤매야 하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 6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의대 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의정 갈등이 불거진 지 6개월째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대한민국 전역으로 퍼진 의료대란이 일어난 일이 4년 전인데, 의료계는 아직도 코로나19를 맞이했던 상황과 별 다를 바 없다.

입원을 제한하고, 진료가 지연되고, 암에 걸려도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은 똑같다. 코로나19가 끝나 좀 나아지는가 싶었는데 더 독한 의정갈등 사태로 환자들은 극한 상황에 내몰리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지독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응급환자들은 응급실을 찾아 뺑뺑이를 돌고, 꾸준히 치료 받아아 할 중증 환자들이 방치되고 있다. 의료 현장은 언제 어떤 의료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의사 공백으로 인한 업무 가중은 물론이고, 원치 않는 휴가, 휴직 사용 등 심지어는 임금 및 인력 구조조정까지 위협받고 있다.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는 환자들

항암제 치료를 받는 암환자분이 계셨는데 치료를 끝내고 집에 가는 도중 계단에서 낙상사고가 발생했다. 병원에서 정형외과 진료를 보았고, 팔이 골절되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당장 레지던트가 없어 빨라야 10월에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환자는 수술을 위해 다른 병원을 돌아다녀야만 했고, 수술 후 회복 도중 항암제를 맞는 날짜가 되면 또 다시 병원으로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아야 했다.

의정갈등 사태가 없었다면, 당장 수술을 진행했을 것이고 항암제를 맞는 시기가 되면 담당과와 협진을 하여 편안하게 진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이번 사태로 환자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커지고 있다. 그뿐인가? 노동자들도 벼랑끝으로 내몰리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내일 진료 없어. 선생님이 나와서 할일은 없어. 휴가 들어가"

의정갈등 사태로 외래 진료가 많이 축소되어 다음 달 근무표에도 원치 않는 휴가를 받았다. 하루씩 휴가를 주는 것도 아니고, 반일씩 쪼개 휴가를 보내기 일쑤다. 출, 퇴근 1~2시간 걸려 4시간 일하고 쉬고 싶겠는가? 의사 진료가 없기 때문에 직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강제로 쉬어야 한다. 이게 쉬는 것인가? 계획 없이 갑자기 휴가를 사용하라 하면 사실 버리는 시간 같은 느낌이다. 약속을 잡을 수도 없고, 무엇을 계획 할 수도 없다.

올해 연차 16개 중 벌써 12개를 사용했다. 의정갈등 사태가 불러온 불합리한 폭탄이다. 막상 필요할 때는 신청해도 못 받고 교수의 진료가 없는 날만 쉴 수 있다. 나의 휴식은 오롯이 내가 계획하고, 내가 사용하고 싶을 때 사용하는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고 싶다.

병동 간호사들을 진료지원 간호사로 내몰다

전공의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각 부서에 있던 간호사들이 원치 않는 PA(Physician Assistant, 진료지원) 일을 하게 됐다. 교수들은 PA가 전공의처럼 일해주길 바라지만, PA 간호사는 전공의가 아니다. 어떤 업무까지 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공부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기대만큼 안되니 능력이 안되는 사람으로 낙인이 되어 점점 위축되어 결국에는 상처를 입고 퇴사를 하거나 이전에 있던 부서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내가 근무했던 부서로 다시 가고 싶은데, 이 전쟁은 과연 언제 끝날 것인가?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병원 노동자들이 아니다. 의정갈등 사태로 피해를 보는 병원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늘어만 가는 교수들의 갑질과 폭언, 간호사는 늘 죄인

전공의들의 부재로 교수들의 업무가 과다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만성 피로가 쌓이고 예민해진다.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며 담당 교수에게 보고할 수밖에 없는데, 보고하기가 두렵다. 환자에게 어떤 일도 없기를 바랄 뿐이다. 의사에게 환자 보고를 하면 교수들의 대답은 "어쩌라고요?", "그런 간단한 것들은 '노티(Notify, 알리다)'하지 마세요", "내가 여태 놀았는 줄 아세요? 나도 바쁘다구요. 오전에 수술하고, 오후에 외래 보고,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에요?" 등의 대답으로 곤욕을 치루게 한다.

그 간단한 PRN 처방(필요시 처방)도 없어 환자들이 아프다고 하면 당장 줄 수밖에 없는데 처방이 없으니 담당 의사와 연락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아픈 환자는 급히 처방을 내달라고 재촉해야 겨우 진통제를 맞을 수 있다. 담당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돌보는 것보다 의사에게 '노티'하는 것이 더 지옥이다. 담당교수에게 담당 환자를 보고하는데 왜 늘 간호사들만 죄인으로 취급받아야 하는가?

대화의 장으로 올바른 의료공백 해소책 추진하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제대로 대화의 장을 만들라!

의사들은 즉간 진료거부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환자 곁으로 돌아와야 한다.

정부는 의사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지 말고 대화를 통한 해법으로 풀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국민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재난 상황이다. 더 이상 의료재난 상황이 방치 되어서는 안된다. 병원 노동자들의 생계와 노동강도 강화만 문제가 아니다. 가장 힘들어하는 환자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수술실 인근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와 이동하고 있다(사진은 본 글과 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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