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공백 메우고 있지만, 누구도 간호사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장기화된 의정갈등, 고통받는 병원노동자 ③] 서울 사립대병원 간호사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수련병원을 떠난 지 140일이 넘었다. 남은 병원 노동자들은 과중한 업무로 고통받고 있다. 환자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 의정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공백이 현장에 미친 영향을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소속 병원 노동자들의 글을 통해 전한다. 편집자

간호사는 고된 직종 중 하나이다. 요즘은 특히 더 힘들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높은 입·퇴사율이 그대로 보여준다.

가장 힘든 것은 3교대(낮근무·Day - 저녁근무·Evening - 밤근무·Night) 근무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환자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의 아픈 곳을 돌봐야 한다. 환자의 아픈 상태를 점검하고 기록하는 일부터 환자와 보호자에게 질병에 관련된 기본적인 설명과 각종 검사 안내를 한다.

이처럼 여러 업무를 하다 보니 다른 부서 동료와 부딪히는 경우도 많다. 의사와는 늘 업무 갈등을 겪는다. 의사가 제때 처방을 내지 않아 환자가 간호사에게 재촉하기도 하고, 심부름성 업무를 간호사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간호사는 간호사 고유업무만을 하길 원한다. 그런데 의대정원 증원 문제로 의사와 정부가 대치상황에 놓이면서 간호사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의사가 업무를 거부하고 현장을 떠났지만 남아 있는 교수들이 환자를 진료하고, 의사의 빈 공백은 간호사가 메우고 있다.

의정갈등 5개월이 지나고 있는 지금, 간호사들은 정신적·육체적 소진으로 분노와 자괴감에 빠져 있다. 간호사가 전방위적으로 동원되고 있지만 누구 하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의사 공백으로 정부가 긴급하게 시행한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으로 간호사가 하지 않던 의사 업무를 하게 되었다. 의사가 하던 업무이다 보니 의사의 대체제가 된 기분이다. 엄연히 직종이 다른데 왜 의사의 업무를 다른 직종이 해야 하는지 억울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에게 본인의 연차휴가까지 강제로 소진하라고 한다. 인턴과 전공의가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이후 병원은 전공의의 역할이 컸던 몇몇 병동을 폐쇄했다. 갑자기 근무지를 잃은 인력들은 일방적으로 휴가를 보냈다. 하루, 이틀... 몇일이면 해결 되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길어지는 의료공백사태에 이제는 불안이 커지기 시작했다.

"내 휴가를 이렇게 강제로 정하는 것이 어딨어"

"나는 하반기에 쓸 계획이 있는데, 지금 다 써버리면 어떡하지?"

"육아로 휴가를 많이 써야 하는데…. 나중에 휴가가 필요하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 연차휴가는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의료공백 사태는 병원 경영진이나 간호부 구성원들에 의해 자초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 그러나 병원 경영진은 우선 급한 일을 메울 인력이 필요하고 매출 감소로 비용 절감을 해야 하니 간호부가 강제휴가를 보내는 것을 묵인하고 있다.

간호부는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 한다는 식으로 환자 수가 줄었으니 남는 인력은 휴가를 사용하라고 한다. 평상시에 늘 부족한 인력으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니 이럴 때라도 적정인력으로 일하라는 배려는 아예 없다.

병상가동률이 떨어지니 병동 간호사들에게 개인 휴가를 사용하게 하는 것은 제일 쉬운 해결 방식이고 간호부는 그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야말로 권력 남용이다.

예전의 세대라면 '어쩔 수 없지, 우리가 해야지, 우리가 참아야지'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그렇지 않다. 권리에 대해 매우 예민하다. 내 것을 빼앗기는 것을 참지 못한다. 남의 의지대로 내가 움직이는 것도 싫어한다. 요즘 세대에게 개인의 휴가를 부서장이 임의로 부여하는 것은 매우 부당하게 여겨진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불만을 부서장에게 직접 표현하지는 않는다. 관리자가 싫어하는 말을 하면 불이익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해서이다. 몇몇 간호사가 "저는 휴가 사용하지 않을래요" 대놓고 말한다. 돌아오는 반응은 "병원이 이렇게 어려운데 이기적이다", "본인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평간호사들과 관리자들 간의 생각의 거리가 참으로 멀다.

병원은 "바쁜 병동은 휴가도 사용하지 못할 만큼 바쁜데, 다른 병동은 그렇지 않다면 상대적 박탈감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렇다고 남의 휴가를 임의로 부여해서는 안된다. 적정인력으로 상시보다 조금 더 환자에게 세심하게 돌볼 수 있도록 하거나, 인력을 고루 배분하여 모두의 업무강도를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관리자의 진정한 역할일 것이다.

이 사태가 길어질수록 간호사들의 염려가 커지고 있다. 유급연차휴가를 다 소진했지만 지금처럼 병상이 빈다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더 길어진 의료공백 사태로 강제 휴가를 보낸다면 그야말로 노동자도 병원과 대치 상황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 문을 닫은 진료과에서 한 환자가 간호사로부터 휴진 안내를 받고 있다(사진은 본 글과 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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