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살인', 경비 노동자의 울먹이는 유언이 드러내다

[류하경의 불온한 사건첩] 주민 갑질에 자살한 경비노동자 사건

한 통의 전화, 울먹이는 유언 녹음

2020년 5월 11일 아침, 서울 강북구에서 활동하는 빈민운동가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입주민의 갑질로 괴로워하다가 13층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사망했다는 것이다. 입주민 갑질 사건은 이전에도 종종 발생했었다. 나는 생각했다. 입주민의 괴롭힘이 얼마나 심했기에 예순 가까운 한 집안의 가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을까. "가해자 법적 조치, 유가족 보호를 변호사님이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그 말에 단숨에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내용을 들어보니 고인은 아파트 주민 A씨로부터 폭행, 상해, 모욕, 감금 등의 범죄행위를 당했다. 고인은 피해로 인한 입원 치료 중에 정신적 충격으로 2020년 5월 10일 자정 즈음 병원에서 빠져나와 본인의 자택에서 투신하여 자살했다.

고인은 유언을 남겼다. A씨와 2020년 4월 21일 주차 문제로 다툰 뒤에 20여일 후에 A씨에게서 상해와 폭행, 협박 등을 당했다는 음성 유언을 남겼다. "A씨에게 맞으면서 약 먹어가며 버텼다. (A씨가)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일이라며 경비복을 벗고 산으로 가서 맞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비가 맞아서 억울한변 일 당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며 "힘없는 경비를 때리는 사람들을 꼭 강력히 처벌해달라"고 울면서 호소했다.

사건의 경위

A씨는 2020년 4월 21일 오전 고인이 평행 주차 되어 있는 자신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고인에게 앙심을 품고, 고인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①욕설(모욕)하고, ②명예를 훼손하고, ③폭행으로 상해를 입히고, ④화장실에 감금하여 12분가량 구타·협박하며 사직을 종용, ⑤협박성 발언을 하거나 협박성 문자를 보내고, ⑥도리어 피해자 행세를 하며 치료비를 준비하라는 금전청구의 구체적 공갈 또는 협박행위에 착수하고, ⑦A씨 자신의 폭행에 대해 고인의 친형의 폭행으로 누명을 씌우려 시도하고, ⑧A씨 자신이 이 사건과 관계없이 오래 전 입은 부상에 대한 진단서를 고인에게 제시하면서 고인을 상해 가해자로 누명을 씌우려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괴롭혀 왔다.

각 행위는 범죄에 해당하며 그 행위의 구체적 모습은 악랄했다. 4월 21일부터 5월 10일까지의 일이다. 2020년 4월 21일 최초 폭행 시 A씨가 고인을 밀치며 폭행하고 고인은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하는 모습은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후에도 고인이 근무하는 날 A씨가 경비실에 찾아와 수차례 폭행해 코뼈를 골절시킨 혐의도 있다. 도리어 A씨는 고인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인간이 아닌, 다른 사람들 얘기로 '머슴'인 OO씨의 끝이 없는 거짓이 어디까지인지…. 용서할 수가 없네요. 진단서 참조하시고 일단 돈 많이 만들어 놓으셔야 할 겁니다. 수술비만 2천만 원이 넘고 장애인 등록이 된다니 참 남들 얘기로 '머슴'한테 가슴 맞아 넘어져서 디스크 수술을 해야 하는 등 무슨 망신인지 모르겠오."

고인을 머슴이라 칭하고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알리바이를 남기려는 문자였다. 이후 형사재판에서는 위 문자와 같은 A씨의 피해자 행세에 대해 무고죄, "자료를 조작하여 피해자를 협박하는 범행"으로 인정되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입주민들은 분노했다.

민·형사 법적대응

여러 시민사회단체와 입주민들이 '추모모임'을 만들고 2020년 5월 13일 서울북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가해 의혹이 제기된 50대 주민 A씨를 상해와 협박, 모욕 등 혐의로 고발했다. 나를 비롯한 3인의 공동 변호인단이 업무를 진행했다. 추모모임은 기자회견에서 "피고발인의 악마 같은 범죄로 고인이 숨졌다"며 "경비노동자에 대한 주민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처벌 부족과 입법적 예방책 미비로 결국 비극이 벌어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형벌을 가해 일벌백계 해달라"고 검찰과 법원에 요구했다. 추모모임은 "경비노동자에 대한 갑질·폭력 가해자를 처벌하라", "재발방지책 마련하라"고 구호도 외쳤다.

고발장 접수 직후 수사기관은 A씨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했다. 한편 같은 아파트 주민이 청와대 홈페이지에 2020년 5월 11일 올린 "저희 아파트 경비 아저씨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는 이틀 만에 30만여 명이 동의했다. 고인의 발인식은 2020년 5월 14일 오전에 열렸다. A씨는 2020년 5월 22일 구속됐다. 법원은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과 도망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의 진지한 반성과 성찰은 여전히 없었다. A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했다. 이런 태도가 이어지면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해보였다. 대리인단 변호사들은 민사 손해배상청구도 같이 제기했다.

민사법원은 2020년 8월 A씨에게 1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현실상 법원이 인정 가능한 최대치였다. 근로복지공단은 2021년 2월 이 사건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했다.

형사재판의 경우 1심은 2020년 12월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국민감정에서는 높지 않은 형량이지만 대법원 양형기준보다 높은 이례적 판결이었다. 판사는 대법원 양형기준 내에서 선고형을 정한다. 양형기준보다 높게 선고한 판결은 대리인단 변호사들 모두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다소 놀랐다. 민변의 수십년 선배 변호사들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7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상해, 보복상해, 보복감금, 강요미수, 무고, 보복폭행, 협박 등이다.

재판 초기에 난항이 있었다. 2020년 6월 12일 구속 기소된 이후 A씨가 선임한 사선변호인이 두 차례나 기일변경신청을 했고 2020년 7월 24일 비로소 열린 첫 공판기일에서는 전격 사임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특별히 알지는 못하나 기자들, 법률가들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추측했다. 이후 법원에 의해 의무적으로 선임된 국선변호인 역시 2020년 8월 10일 스스로 사임했다.

검사는 마지막 공판에서 "갑질로 피해자가 숨진 사건으로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피고인은 전혀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가 당한 골절을 피해자의 형에게 구타당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며 징역 9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재판부는 이렇게 판결문에 남겼다. 판사의 엄한 꾸짖음이 문장들에 담겼다. "범행의 경위, 방법 및 내용 등에 비추어 사안이 무겁고, 죄질이 매우 좋지 않은 점", "피해자의 유족으로부터 용서를 받지도 못하여 피해자의 유족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또 수사과정의 태도와 법정 진술을 보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고인은 피고인의 집요한 괴롭힘에 못 이겨 사직을 하고 싶어도 생계유지를 위해 사직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피고인의 폭언·폭력 등이 계속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상생활을 제대로 영위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하면서 결국 "대법원 양형기준 권고 형량은 징역 1년~3년 8월이지만 여러 사항을 고려해 권고형량 범위를 벗어나 형을 정한다"고 했다.

이후 A씨는 민사, 형사 모두 항소했지만 각 1심 판결들은 모두 그대로 확정되었다. 특히 형사재판 2심 법원은 더 강력히 훈계했다. "피고인은 여전히 설득력이 없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질타하면서 "피고인이 이 법원에 수차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하였으나, 피고인이 위와 같이 현 상황에 대한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만 하고 피해자나 언론 등의 타인을 나무라거나 원망하며 자기 합리화만을 꾀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한, 위와 같은 반성문을 통해서는 피고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없어 진심 어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또한 정작 반성과 사과의 상대방이 되어야 할 피해자의 유족들에게는 제대로 된 반성이나 사죄를 하지 않았고 사건 발생 후 1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용서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의 변함없는 태도를 재차 강조했다. A씨는 2심 판결에도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2021년 8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고인의 친형은 형사재판 선고 후 법원 앞에서 기자들에게 "징역 5년이라는데 고인에게 형으로서 너무 죄송하게 생각한다. 좀 더 강력한 법을 만들어서 이런 일이 앞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한다."고 울먹였다. 그는 A씨를 향해서도 "잘못했다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달라.", "고인이 영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민 갑질로 인해서 경비원이 사망하고 짓밟히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좋은 법이 생겨서 사회적 약자가 같이 손을 잡고 갈 수 있는 갑질 없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을 마쳤다.

'경비원갑질방지법'을 탄생시킨 사건

고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하고 민·형사재판 과정을 중계했다. 경비노동자 갑질피해 관련 이전의 사건들도 다시 주목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6년 전인 2014년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인 이른바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사건'이었다. 2014년 7월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이모씨에게 입주민 이씨는 공개된 장소에서 폭언을 퍼부었고, 유효기간을 지난 음식물을 먹으라고 던져주는 등 인격적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경비노동자 이씨는 해당 아파트 배치 한 달 여 만에 중증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이후 경비팀장 등에게 병가와 근무지 교체를 요구했으나 오히려 사직을 권유받았다. 3달 후 아침부터 위 가해자 이씨에게 질책과 욕설을 들은 경비노동자 이씨는 이날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한 달 뒤 후유증으로 숨졌다.

2017년 3월 법원은 피해자의 유족들이 가해 입주민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위자료 2500만 원을 인정했다. 다른 사건으로, 2019년부터 아파트 상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경비노동자들에게 "멍멍 짖어봐" 등의 폭언과 욕설을 하면서 부당한 업무지시를 일삼은 입주민은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또 2020. 5. 아파트 경비실에서 자리를 비웠다며 경비노동자에게 "내가 누군지 아느냐"며 욕설을 하고, 소주병을 바닥에 던져 깨트리는 등 행패를 부린 입주민이 재물손괴, 폭행 등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밖에 경비원을 대상으로 한 폭행, 폭언, 상해, 업무방해 사건들은 너무나 많았다.

시민사회와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입법이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힘입어 경비원에 대한 갑질을 막기 위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만들어졌다. 경비원에게 허용되는 업무와 제한되는 업무를 명시해 부당한 업무 지시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이른바 '경비원갑질방지법'으로 불리는 이 시행령은 2021년 10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시행령에 명시된 업무 외의 지시를 내리면 지방자치단체에서 과태료 300만 원의 행정처분과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공동주택(아파트) 경비원에게만 적용되는데다 초단기 계약을 맺는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경비원들이 부당한 업무 지시를 신고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허점이 있다. 이 역시 향후 입법 개선되어야 한다.

경비원 갑질 문제의 배경에는 고용형태와 실질의 괴리가 있다. 아파트가 어떤 형태의 고용방식을 선택해도 경비노동자에게 '갑'은 입주민이다. 경비노동자의 고용은 아파트 입주민 회의가 직접 하거나, 혹은 아파트 입주민 회의가 용역업체를 선정한 뒤, 그 업체가 경비원을 고용할 수도 있다. 입주자 대표회의가 위탁관리회사에 경비 업무를 맡기기도 한다. 이러한 도급계약, 용역계약, 위·수탁 관계로 맺어진 경비원은 노동자로 지위 인정이 안 되어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게 되고, 근로계약이나 법률상 규정된 업무 외에도 각종 일들을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자칫 입주민 눈에 어긋나면 바로 계약해지 방식으로 해고되기 때문이다. 경비노동자 갑질 문제는 금지 규정을 세운다고 다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고용형태와 실질의 괴리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경비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형태를 개선하고 사용자를 분명히 하여 법적인 사용종속관계를 단순화해야 갑질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입주민들의 인식개선도 중요하다. 입주민 중에는 '내 관리비로 경비노동자가 월급을 받아먹고 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있다'거나, 이 사건 가해자처럼 경비노동자를 "머슴"으로 여기는 극소수의 특이한 사람들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으되 여러 비슷한 양상의 갑질 입주민들이 많다. 개인적 인식과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 바뀌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상 직장내괴롭힘금지 규정이 아파트 경비노동자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개정하거나, 아파트 경비노동자에 대한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안을 별도로 만들 필요도 있다. 포괄적인 입법으로는, 비공개된 상황에서 감정노동자에 대한 폭언과 폭력을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할 것으로도 보인다.

이웃들의 연대

사건 당시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아파트 경비실 앞에는 분향소가 마련됐고, 수많은 추모 메시지가 붙었다. 지금도 아파트 앞에서는 매해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최초 사건 발견 및 조력도 아파트 입주민들이 했다. 긴급 주민회의를 열어 사건대응을 결의하기도 했었다. 구조개선도 중요하지만 피해자에게 정말 간절한 것은 그 순간 바로 옆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다. 이웃들의 관심과 작은 실천이다. 방관은 결과에 있어 저마다 몫의 책임을 남긴다. 방관은 안 좋은 결과를 낳고 악화하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사건 이웃들의 개입은 힘이 셌다. 그 힘이 시민단체들, 변호사들, 수사기관과 법원을 고인의 마음속으로 불러 모았다.

▲ 2020년 5월 28일 오전 서울 중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북부지사 앞에서 '고(故) 최희석 경비노동자 추모모임'이 개최한 '고 최희석 경비노동자 산재신청 및 경비노동자 조직화 기자회견'에서 최씨의 유족이 업무상 재해 인정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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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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