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1인자 이란서 살해…이란 "이스라엘에 피의 보복"

헤즈볼라 고위 지도자 이어 이란 지원 무장조직 지도부 타격으로 확전 위기 최고조…가자전쟁 휴전 협상 전망도 악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정치국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31일(이하 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되며 이 지역 확전 위기가 최고조로 치솟았다. 전날 이스라엘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를 공습해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고위 사령관도 살해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이틀 연속 이란 지원 무장 세력 지도부에 타격이 가해지며 이란이 역내 분쟁에 개입할지 여부에 촉각이 곤두섰다.

이란 <IRNA> 통신은 하마스가 31일 오전 발표한 성명을 통해 하니예가 "테헤란 내 숙소에서 시온주의자들(이스라엘)의 위험한 습격으로 인해 순교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평소 카타르에 거주하던 하니예는 전날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 참석을 위해 이란에 방문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도 성명을 통해 하니예와 그의 경호원이 테헤란 내 숙소에서 숨졌다고 발표했다. 하마스 정치국 소속 무사 아부 마르주크는 "이스마일 하니예 사령관 암살은 비겁한 행위"라며 "대응 없이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보복을 천명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하니예 살해에 관한 조사 결과를 추후 발표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이란 <타스님> 통신은 하니예가 31일 오전 2시께 테헤란 북부 거주지에서 공중 발사체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미국 CNN 방송은 하니예 암살 관련 질문을 받고 이스라엘군이 "외국 언론의 보도에 답하지 않는다"고만 밝혔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하니예 암살에 관해 함구령을 내렸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지난 1월 베이루트에서 하마스 고위 지도자 살레 알아루리가 살해된 뒤 배후로 지목됐을 때도 공식 확인을 하지 않았다.

하니예는 가자지구 전쟁 휴전 협상에서 핵심 역할을 한 인물로 그의 사망으로 휴전 전망이 더욱 어두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하니예는 이스라엘이 지난해 10월7일 자국 남부에서 1200명이 살해된 습격을 주도한 것으로 보는 하마스 가자지구 지도자 야히아 신와르에 비해 온건한 인물로 평가돼 왔다. 전쟁이 10달 째 이어지며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에 의해 팔레스타인인 3만 9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다만 영국 BBC 방송은 영국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피터 리케츠가 하마스 1인자인 하니예 살해로 네타냐후 총리에게 "가자지구 작전을 축소할 수 있는 정치적 여지가 생겼다"고 평가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하니예 암살은 전날 이스라엘이 베이루트에서 헤즈볼라 수장의 "오른팔"을 암살했다고 밝힌 직후 발생해 위기감을 더욱 키웠다. 이스라엘군은 30일 베이루트에 대한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의 표적 공습으로 "헤즈볼라 테러 조직의 최고위 군사 사령관이자 전략 부문 수장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슈크르가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오른팔"이며 그의 전시 작전 계획 및 지휘 고문을 맡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의 슈크르 살해는 지난 27일 이스라엘이 점령 중인 골란고원 마즈달샴스 지역 축구장에 헤즈볼라가 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로켓이 떨어지며 어린이 12명이 숨진 데 따른 것이다. 헤즈볼라는 축구장 공격을 부인했다. 이스라엘이 축구장 사건 보복으로 베이루트에 공습을 가한다면 가자지구 전쟁 발발 뒤 국경 지대에서 헤즈볼라와 벌이고 있는 제한적 교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던 상황이다.

이스라엘군은 슈크르가 축구장 공격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슈크르가 지난해 10월8일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지휘했고 수년에 걸친 수많은 이스라엘인과 외국인 살해에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표적 공습을 가했다고 밝혔지만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레바논 보건부는 30일 공습으로 어린이 2명을 포함해 3명이 숨지고 84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헤즈볼라 쪽은 슈크르 사망을 확인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NYT)는 두 건의 살해에 대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대응 방식에 따라 분쟁의 향방 및 이 지역이 여러 전선에서 전쟁에 휩싸이게 될지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는 정밀 미사일, 대전차·대함·대공 미사일을 포함해 15만 기가 넘는 미사일과 로켓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돼 이스라엘과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이 지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니예가 이란에서 살해되며 이란의 개입 여부에도 촉각을 기울일 수 밖에 없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하니예가 살해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를 만났다고 지적하며 "하니예와 긴밀히 접촉한 이란 고위 지도자들의 안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 상황이며 페제시키안 대통령은 취임식에 참석한 동맹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부담을 안고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짚었다.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식엔 하니예 뿐 아니라 헤즈볼라 부지도자 셰이크 나임 카셈,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이슬라믹지하드(PIJ) 지도자 지야드 알나칼라, 예멘 후티 반군 대변인 모하메드 압둘살람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역내 무장 세력 지도부가 총출동했다.

<타스님>은 31일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가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은 스스로 가혹한 처벌의 근거를 마련했다"며 "우리는 이란 영토 내에서 순교한 그(하니예)를 위한 피의 복수를 의무로 여긴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31일 하니예 살해 관련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자택에서 역내 이란 연계 무장 조직들을 감독하는 쿠드스군 사령관을 포함해 최고국가안보회의(SNSC)가 열렸다고 두 명의 이란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31일 하니예 죽음에 애도를 표하며 "(하니예의) 피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하니예 죽음이 이란과 팔레스타인 간 "깊고 끊을 수 없는 유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BBC 방송은 이란이 지원하는 무장단체 지도자 두 명의 연이은 살해는 "중동 전역에 확전 공포를 부르는 위험한 사건"이라며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전면전을 꺼리는 태도를 보였지만 역내 다른 이란 지원 단체들이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는 계속 제기돼 왔다고 지적했다.

미 조지타운대 중동·이슬람정치학 교수 나데르 하셰미는 BBC에 하니예 살해가 불과 몇 시간 앞서 일어난 헤즈볼라 고위 지도자 살해와 연관되며 "이제 이란은 이 분쟁을 확대할 모든 동기를 갖게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 지역이 어느 때보다 전면전에 가까워졌다고 내다봤다.

CNN은 미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 선임연구원 피라스 막사드가 하니예 암살이 이란 대리 세력들과 이스라엘 간 "역학을 완전히 바꿨다"며 "이란 지원을 받는 이라크, 예멘, 레바논, 심지어 테헤란의 다양한 무장 세력이 지역 차원의 조직적 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스라엘군은 슈크르 살해를 발표하며 이스라엘 민간인에 대한 사령부 방어 지침에 변화가 없다고 밝혔고 시민들에 대피 명령을 내리지도 않아 즉각적 보복을 예상하고 있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추측이 나온다.

미국은 하니예 살해에 대한 논평을 거부했다. <로이터>는 31일 하니예 사망이 발표된 뒤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외교의 기회와 여지는 항상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지역 상황이 확전으로 번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오스틴 장관은 분쟁이 확대돼 이스라엘이 공격 당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이스라엘을 방어할 것"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니예 사망에 대해 "제공할 추가 정보는 없다"고 덧붙였다.

CNN에 따르면 백악관은 하니예가 이란에서 살해됐다는 보도를 접했다고 밝혔지만 추가 논평은 거부했다.

▲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서열 1위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앞줄 가운데)가 30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해 손가락으로 'V'를 그려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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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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