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으로 가는 '나락 콘텐츠'…피해자 밟고 가는 '유튜버 돈벌이'

범죄 피해자·지원단체 "출발은 피해자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돼야"

일부 유튜버들이 피해자의 반대에도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2차 가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유사 범죄 피해자와 지원단체가 "피해자의 존엄을 해치는 신상 공개는 어떠한 이유로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며 피해자의 의사를 묵살한 유튜버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양육비를 주지 않은 '나쁜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해 온 구본창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옛 배드파더스)' 대표는 10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피해자 "피해자 동의 없는 신상 공개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대표는 "피해자가 원치 않음에도 폭로를 계속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다름없다"면서 "(유튜버들이) 오로지 수익 창출을 위해 폭로한 것이라면 명분이 없더라도 돈벌이를 위해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귀가 도중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폭행당한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 김진주(필명) 씨도 이날 SNS를 통해 "(범죄) 피해자는 살면서 트라우마에 고통받아야 한다. 잊지 않아야 할 일들이 생기기도 하지만, 억울한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며 피해자를 거론하는 것은 피해자의 회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동의 없이 밀양 사건 피해자와의 통화 내용과 판결문을 공개하며 '영상을 지우고 싶다면 연락달라'고 말한 유튜버를 두고 "피해자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영상을 내리지 않겠다는 명백한 협박"이라며 "피해자에게 잊힐 권리도 줘야 한다. 피해자는 충분히 숨어도 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 채널 '나락보관소' 글 갈무리.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은 웹사이트를 열고 양육비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했으며, 부산 돌려차기 사건은 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해자의 신상이 알려졌다. 사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해 가해자의 정보가 알려졌다는 점은 밀양 사건의 신상 공개 방식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양육비해결하는사람들은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의 동의를 기반으로 채무자의 신상을 공개했다는 점에서 '피해자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현재 논란과 차이를 보인다. 구 대표는 피해자에게 양육비 이행명령 등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법원의 서류를 확인한 뒤, 미지급자에게 연락해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고, 그래도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온라인 사이트에 신상을 공개했다. 이 과정은 모두 피해자와의 소통 아래 이뤄졌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경우, 김진주 씨의 동의 아래 신상 공개가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신상 공개를 결정한 유튜버는 김 씨와 인터뷰를 진행할 정도로 적극적인 교류가 있던 사이였다.

김 씨는 11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신상 공개에 대해서는 유튜버와 의논하지도,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피해자에게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할 법적 권리가 있는 건 아니"라면서도 "신상 공개 당시 해당 유튜버와 사건에 대한 대면 인터뷰를 진행한 상태였다"며 유튜버와 소통 관계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밀양 성폭력 가해자들의 정보를 폭로하는 유튜버들은 이 같은 사례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피해자의 여동생은 9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 공론화를 원하면 직접 하겠다"며 신상 공개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유튜버들은 이를 무시한 채 영상을 계속해서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 중 '나락보관소'는 "가해자 44명 신상을 전부 공개하기로 가족과 이야기됐다"며 사실과 다른 공지와 함께 영상을 올렸으며, '판슥'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변조 없이 공개한 뒤 "피해자는 공개를 원치 않으면 내게 연락달라"고 말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처럼 남발하는 신상 공개 콘텐츠가 언제든지 2차 가해로 변질될 수 있음에도, 이를 통제할 수 있는 법적 제도는 미비한 상황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 교수는 "현행법상 2차 피해를 유발하는 게시물이 불법정보로 규정되지 않아 피해자를 위한 규제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현행법상 신상 공개 대상자가 유튜버를 고소할 수는 있지만, 이는 피해자의 권익 보호와 거리가 멀뿐더러 유튜버의 사익에 기여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상공개에서) 피해자 보호에 대한 법적 규제를 만들기는 쉽지 않지만, 유튜브가 적극적인 규제 기준으로서 범죄 피해자의 정신적, 신체적 안녕을 위협하는 정보를 자율규제하는 방식은 가능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공론화의 목적이 정말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보다 피해자의 입장을 고려해 그 방식을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밀양 집단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해온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난 일주일간 이뤄진 신상 공개는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들을 밟고 지나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며 "과거사에 대한 해소를 원한다면, 그 출발선은 피해자의 일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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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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