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폭격에 '전쟁범죄' 비난 높아지는데…미 "레드라인 넘은 것 아냐"

국제사회 비난 높아져…스페인, 남아공이 이스라엘 상대로 제기한 ICJ 합류하기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학교를 폭격해 최소 33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스라엘의 무차별식 폭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높아지고 있지만, 미국은 확실한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6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중부에 위치한 누세이라트 피난민촌에 있는 UNRWA 학교를 폭격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이 학교 내에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조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정밀 타격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는 이날 공격으로 누세이라트의 시장인 이야드 알마하리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함께 방송은 가자지구 중심부에 위치한 마가지 난민촌의 주거용 주택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고 전했다. 역시 가자 중심부에 위치한 부레이주 난민촌을 겨냥한 포격도 있었다고 방송은 덧붙였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이날 UNRWA 학교 공격에 대해 하마스 조직원 중 전투에 참여하는 인원 30명과 이스라믹지하드 전투원 9명이 숨어있던 교실 세 곳을 폭격했다며 정밀 타격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피터 러너 중령 역시 이 조직원들이 유엔의 학교를 작전 본거지로 활용하고 있었다면서, 폭격 과정에서도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과는 달리 민간인 피해가 다수 발생했다.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12명의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최소 33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방송 CNN은 어린이 14명을 포함해 4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측은 어린이를 포함한 비전투원 민간인의 사망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러너 대변인은 "민간인 사상자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밝혔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어린이 14명이 사망했다는 CNN 보도를 확인했다면서 "14명의 아이들이 살해됐다는 것이 정확하다면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밀러 대변인은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폭격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며 "우리는 그들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데 의문점 없이 완전히 투명하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이 지난 5월 26일 라파 서부 탈 알술탄 지역 피난민촌을 공습해 최소 35명이 사망한지 겨우 열흘만에 또 다시 유엔 학교를 폭격한 것을 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제시한 '레드라인'을 넘어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밀러 대변인은 지난 5월 26일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은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는 아직 라파에서 대규모 작전이 수행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밀러 대변인은 "하마스와 다른 무장 세력들이 학교 안에 은신하고 있다면 이는(학교는) 정당한 목표물이지만 이들이 동시에 민간인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스라엘은 이들을 표적으로 삼을 권리가 있지만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를 위해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의무도 있다"고 밝혔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라파 침공을 "레드라인"으로 언급했었다. 또 이달 초에는 라파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이 벌어질 경우 이스라엘에 공격용 무기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스라엘의 난민촌과 학교 등의 공격으로 수십명이 사망하면서 전쟁범죄 논란이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이를 '레드라인'으로 간주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의 무차별적 폭격이 앞으로 더 강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이번 폭격에 미국산인 GBU-39 폭탄의 노즈콘(nose cone)이 사용됐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밀러 대변인은 이에 대해 "새로 전할 내용이 없고 이스라엘 정부에 문의해야 할 사안"이라는 답을 내놨다.

가자지구의 상황이 갈수록 참혹해지면서 미국 내에서도 정부의 조치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성명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스라엘에 무기 공급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 6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의 누세이라트 난민촌 내 UNRWA 학교 폭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신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국제사회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앞서 ICJ는 이스라엘에 "군사적 공세를 즉각 중단하고,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국민들을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물리적 파괴'시킬 수 있는 다른 행동을 중단하라"고 명령을 내린 바 있는데,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이날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지난 ICJ 명령에 따라 독립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2일 아일랜드, 노르웨이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공식 인정하겠다고 밝힌 스페인은 ICJ의 명령을 준수하라고 촉구하는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ICJ에 제기한 소송에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말 남아공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인도적 위기를 높이고 있고 국제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협약을 위반하고 있다며 ICJ에 제소했는데, 스페인 외무부는 이 소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ICJ의 허가를 요청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유엔 시설은 무력 충돌 중이어도 침범할 수 없으며 언제 누구에게서든 보호받아야 한다"며 이스라엘의 공격을 규탄했다.

그는 유엔군 전사자 추모행사에 참석해 지난해 UNRWA 직원 135명을 포함해 유엔 직원 188명이 순직했다면서 "이는 유엔 창설 이래 한 차례의 분쟁이나 자연재해로 사망한 인원 중 가장 많은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 등 17개국 정상들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 등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하마스 측은 영구 휴전을 해야 한다고 버티고 있어 양측의 휴전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6일 미국과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 브라질, 불가리아, 캐나다, 콜롬비아, 덴마크, 프랑스, 독일, 폴란드, 포르투갈, 루마니아, 세르비아, 스페인, 태국, 영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2024년 5월 31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밝힌 휴전과 인질 석방 협상을 향한 움직임들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방송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최소 6주의 일시 휴전 기간 동안 가자 내 인구밀집 지역에서의 이스라엘 군 철수와 양측 일부 수감자와 인질 맞교환, 이어 이스라엘 군 완전 철수와 가자지구 재건 등을 휴전안에 명시해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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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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