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모디 총리 '압승 실패'…불평등·무슬림 혐오 '부메랑'

단독 과반 실패로 연정 의존 불가피·3연임은 무난할 듯…고성장 아래 빈부 격차 식민지 시대 이상·청년 실업률 17% 달해

4월부터 치러진 인도 총선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3선이 확실해졌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의 정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해 연정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높은 실업률, 힌두 민족주의를 내세워 무슬림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취한 것이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ECI)와 현지 매체 <타임스오브인디아>에 따르면 현지시각 5일 오전 기준 전날부터 이뤄진 총선 투표 집계에서 모디 총리가 이끄는 집권 인도국민당(BJP)이 주도하는 정치연합 국민민주연합(NDA)은 하원 543석 중 293석을 확보해 과반(272석) 달성이 확실시됐다. 그러나 인도국민당이 예상과는 달리 240석을 얻는 데 그쳐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모디 총리가 연임하더라도 이번 재임 기간과는 달리 연합을 꾸린 다른 정당들에 대한 의존이 불가피해졌다. 개표가 완료되지 않아 최종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인도국민당은 2019년 총선에선 과반을 훌쩍 넘기는 303석을 얻었다.

이는 연합이 의석의 3분의 2가 넘는 "400석"을 차지할 것을 목표로 제시했던 모디 총리의 구상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지난 1일 투표 종료 뒤 나온 출구조사 결과와도 상이하다. 출구조사에선 국민민주연합이 적게는 350석에서 많게는 400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로이터>, <AP> 통신을 보면 모디 총리는 4일 밤 승리 연설에서 "국민민주연합이 세 번째로 정부를 구성할 것이 확실해졌다. 국민들은 인도국민당과 국민민주연합에 전적인 신뢰를 보여줬다"며 3기 집권에서 인도가 "새로운 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자, 반도체, 방위 산업 분야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총선에서 의석수를 거의 두 배로 늘리며 약진한 제1 야당 인도국민회의(INC)의 라훌 간디 전 총재는 "이 나라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인도의 헌법을 수호했다"며 선거 결과가 국민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99석을 확보한 인도국민회의가 주도하는 인도국민발전통합연합(INDIA)은 234석 확보가 확실시 돼 지난 총선(119석)에 비해 의석 수가 크게 늘었다. 야당은 전국을 행진하며 유권자들을 만났고 모디 총리 아래 높은 실업률 등을 비판해 왔다.

<로이터>에 따르면 연합을 구성한 주요 정당들이 연합이 굳건함을 확인하고 모디 총리를 지지할 것을 밝혀 모디 총리의 연임에는 문제가 없지만 영향력이 다소 약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개표 전날 모디 총리의 압승을 전망하고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인도 증시는 4일 개표 초반부터 예상이 빗나가자 급락하기도 했다. 인도 경제의 고성장을 이끈 모디 총리의 기존 정책이 연정 아래 흔들릴 수 있다고 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모디 총리 연합의 주요 정당으로 각 16석, 12석을 차지한 텔루구데삼(TDP)과 자나타달(JD)이 명백히 세속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모디 총리의 힌두교 우선주의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반대자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짚었다. 신문은 미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밀란 바이슈나브 선임연구원이 이전엔 "인도국민당이 연합 정당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조건을 지시할 수 있었"지만 이제 "연정을 구성하는 정당들이 정책 결정 뿐 아니라 내각 구성에도 영향력을 가지며 빚을 받아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디 총리 재임 기간 동안 인도 경제가 성장을 거듭했고 외교 측면에서도 성과를 냈음에도 집권당 의석수가 대폭 감소한 데는 이면의 빈부 격차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월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세계불평등연구소(WIL)는 보고서를 통해 1922~2023년 한 세기 동안 인도의 불평등을 추적한 결과 2022~2023년 상위 1%의 소득 점유율이 22.6%로 역대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는 1947년까지 이어진 영국 식민지 시대보다 높은 수준이다. 연구소는 특히 2014~15년, 2022~23년 부의 집중도가 심화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모디 총리는 2014년부터 집권 중이다.

이 가운데 실업률 및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실질적 고통이 더해졌다. <로이터>는 인도 민간 싱크탱크 인도경제모니터링센터에 따르면 인도의 3월 실업률은 7.4%, 4월 실업률은 8.1%까지 올라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15~29살 청년 실업률은 올해 1분기 기준 17%에 달한다. 통신은 식료품 부문 물가 상승이 지속되며 빈곤층의 고통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로이터>에 따르면 인도국민당도 실업률이 선거에 영향을 미쳤음을 인정했다. 당 대변인 고팔 크리슈나 아가르왈은 "고용은 우리도 받아들이고 있는 과제이며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총선에서 인도국민회의에 투표한 우타르프라데시주 출신 노동자 모하마드 아흐메드(42)가 "모디 총리는 무료 식량은 나눠줬지만 일자리를 주진 못했다. 모디 집권 10년간 부자들은 더 강력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 무력해졌다"며 그간 "모디 총리를 아버지처럼 생각해 왔지만 그는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힌두 민족주의를 강조하며 무슬림에 대한 공격적 태도를 보인 것도 역효과를 냈다는 분석이다. 모디 총리는 지난 4월 유세 과정에서 무슬림을 "침입자", "더 많은 자녀가 있는 이들"로 묘사하며 혐오를 부추겼다. 그는 야당인 인도국민회의가 집권할 경우 "여러분의 자산을 거둬들여 자녀가 더 많은 이들, 침입자들에게 나눠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도의 무슬림 인구는 약 1억700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4%에 달한다.

모디 총리는 지난 1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분쟁 지역이었던 우타르프라데시주 아요디아의 힌두교 사원 봉헌식을 직접 맡아 힌두교 쪽 손을 들고 지지층 결집을 꾀했지만 이번 총선 결과 해당 지역 선거구에서 인도국민당이 패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모디 총리의 이러한 행보가 인도 힌두교 내에서 정착된 신분 의식 카스트 제도의 하층에 속하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인도국민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합 정당들이 모디 총리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 모디 총리의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선거로 모디 총리의 "무적" 이미지가 손상됐다고 짚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4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인도국민당(BJP) 본부에 총선 승리 연설을 위해 도착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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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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