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팔레스타인 피난민 100만 명 모인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 공격 승인

군대 투입하면 무기 수출 안하겠다더니…3주만에 입장 바꾼 바이든

미국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피난민 100만 명 이상이 모여있는 라파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에 동의했다. 이스라엘이 라파 지역을 공격하면 무기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고가 무색해진 셈이다.

22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백악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스라엘에 방문해 라파에 대해 자세한 논의를 했다"며 "어떻게 이스라엘이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가자지구의 모든 곳에서 하마스를 격퇴할 수 있을지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 관리들과 전문가들로부터 민간인 피해를 고려하면서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개선된 이스라엘의 계획에 대해 보고 받았다"며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은 더 표적화되고 제한적이었고 밀집된 도시 지역 중심부의 군사 작전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설리번 보좌관은 "이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봐야 한다"며 "우리가 살펴볼 것은 많은 사망자와 파괴가 발생하는지, 정확하고 비례적인지의 여부"라고 말해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을 반대한다는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미국은 가자지구 피난민 100만 명 이상이 모여있는 라파 지역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반대해 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일 미국 방송 CNN과 인터뷰에서 "아직 진입하진 않았지만, 그들(이스라엘군)이 라파로 진격한다면 나는 그들이 지금까지 라파와 다른 도시들을 상대하는 데 사용했던 무기를 공급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민간인 사상자를 제한하라는 요구가 자신의 "레드 라인(최소 기준)"이라며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고, 이후 이스라엘은 민간인 100만 명 이상이 피난처를 찾았다고 주장하면서 군사 작전을 위한 미국의 동의를 받아냈다.

▲ 22일(현지시각)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돌아온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의 이번 결정으로 군사 작전의 장애물이 없어진 이스라엘군이 라파지역으로 진격할 경우 적잖은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카타르 방송 <알자지라>는 23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부의 라파로 진격하고 있으며, 시 중심부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지역 가장자리에 진을 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 통신 역시 이날 이스라엘의 탱크가 가자지구의 남부와 이집트 국경을 따라 더 서쪽으로 이동해 새로운 진지를 만들었으며, 현재 라파 중심 인근에 있는 이브나 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중심부로 진입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방송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이스라엘군이 밤새 이브나에 총격을 가했으며 어선에도 총격을 가해 일부에 불이 붙었다고 말했다"며 "이번 진격은 이스라엘군이 라파에 대해 지금까지 가장 격렬한 폭격을 가한 후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라파 공격이 이뤄지고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하면 국제사회의 여론도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20일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의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를 두고 미국과 영국은 반대 입장을 표했지만 프랑스와 벨기에 등은 ICC의 독립성을 지지하고 나섰다. 중국 역시 ICC의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표했다.

여기에 유럽의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페인은 현재 상황 해결을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호 국가성을 인정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이 최우선돼야 한다면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이같은 흐름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유엔과 같은 국제무대에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입장에 서 있는 국가로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목소리들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확실히 봤다"며 "이는 이스라엘의 장기적인 안보에 기여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우려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두 국가 해법은 직접 당사자의 협상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일방적인 인정이 아니라 당사국을 통한 직접 협상을 통해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이후 이날까지 3만 5709명의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사망하고 7만 999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팔레스타인 보건부가 밝혔다. 이스라엘 측 사망자는 1139명이며 123명의 인질이 억류돼 있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 인질 가족 모임은 피랍 과정을 기록한 영상을 공개하며 이스라엘 정부에 하루 빨리 인질 귀환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해당 영상에는 기지에 있던 리리 알바, 카리나 아리에브, 아감 베르게르, 다니엘라 길보아, 나아마 레비 등 5명의 여군 병사가 하마스에 의해 피랍되는 과정이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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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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