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과 교권을 대립시키는 교육 체제

[인권으로 읽는 세상] 신자유주의 교육 체제에 맞서는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고 있다. 충남에 이어 서울이 폐지되었고, 경기도와 광주에서도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공격받아 온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학생에 대한 차별금지 사유를 담은 조항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기독교 세력들이 나서서 기존의 조례를 공격하고 각 지역의 새로운 조례 제정을 가로막아왔다. 학생인권조례가 이런 주장에 가로막혀온 것도 문제지만 지금은 이런 대립을 넘어 폐지의 국면으로 접어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를 기어코 폐지시킨 국민의힘 지방의회 의원들이 내미는 명분은 '교권'이다. 작년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이후 불거진 교사의 권리 침해 문제를 두고 정부는 과도한 학생인권 옹호가 사태의 원인이라며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주장했다. 대신 교사와 학부모를 포함한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학교 구성원 조례)를 신설해 학생인권조례를 대체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의 말대로 학생인권을 위축시키면 교사의 권리가 회복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와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요구로서 학생인권

현재 학생인권과 교사의 권리가 어떤 현실에 놓여있는지 파악하려면 먼저 학생인권을 외치게 된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학교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입시경쟁의 장이면서, 성인이 되기 전까지 갇혀 지내는 폭력과 억압의 시설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진전 과정에서 기존의 학교와 교육은 근본적인 물음에 직면해야 했다. 학교가 불평등을 생산하고 학습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을 위한 장소가 되기 위해선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교사들이 모여서 교육당국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입시 경쟁 교육 시스템을 바꾸려는 시도 등이 교직원 노동운동, 교육운동의 이름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그저 특수한 장소로서 학교만의 문제이거나 변화 요구가 아니라, 사회 변화와 함께 발을 맞추어 움직이는 시도였다.

학생인권도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학교가 달라지고, 교육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회의 압력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도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로 나아갔다. 입시경쟁 교육을 강제하는 폭력적인 관리자로서 교사 그리고 억압당하는 학생이라는 관계가 아니라 교육의 평등한 주체로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학생인권은 바로 이러한 관계를 열어가는 중요한 원칙이었다. 학생인권이 열어젖힌, 학생도 평등한 교육 주체라는 당연한 권리 선언은 민주주의 사회에 걸맞게 학교를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한 변화의 출발점이었다.

신자유주의 교육 체제 속에서 설 곳 잃은 교사와 학생

하지만 교육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수사와 함께 등장한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은 기존의 권위와 폭력의 자리를 평등과 인권이 아닌, 더욱 강력한 입시경쟁 중심 체계로 대체해가기 시작했다. 자사고, 특목고와 같은 입시경쟁 중심의 학교들이 제도적으로 장려되고, 교실 단위로는 수준별 학습으로 학생을 구별 짓고, 교사에겐 교원 평가에 따른 성과급 제도 등의 정책이 꾸준하게 도입되었다. 학교는 입시경쟁 교육이라는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되었고, 좋은 학교, 교사에 대한 기준은 입시 학원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렇게 교육이 노골적인 입시 상품이 되는 순간부터 이 상품의 질을 평가하고, 투자한 만큼 결과를 요구하는 소위 '교육 소비자'의 등장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교육 서비스의 구매자이자 투자자로서 학부모는 학교 교육에 민원의 형태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교육 과정에서 학부모 참여가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학부모를 교육 소비자-민원인으로 갇히게 만드는 구조를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체계에서는 교육의 주체로서 교육 현장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나가는 학부모와 교사의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학부모는 투자한 '내 자식의 교육서비스의 질'에 대해서만 개입하는 악성 민원인의 위치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더욱 촘촘하고 강력해진 신자유주의적 입시경쟁 속에서 교사는 교육할 권리, 인간답게 노동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 실적 압박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이 실적 압박은 교육당국뿐만 아니라, 교육소비자-투자자인 학부모-민원인으로부터 더욱 노골적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학교와 교육청은 교사에게 어떤 우산도 펼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공교육만으로도 사교육을 넘어서는 더 질 좋은 교육 서비스만을 제공하라는 소위 '공교육 강화' 정책을 반복하며 민원에 잘 응대할 것을 강요했다. 신자유주의 교육 체계가 교사의 교육할 권리도, 노동권도 설 자리를 잃게 만들어온 과정이다. 이런 현실을 견디다 못한 교사들의 외침이 지난해 서초구 교사의 죽음 이후 쏟아져 나온 소위 '교권'으로 표현된 교사들의 교육할 권리, 노동권에 대한 요구였던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체계가 교육 소비자-민원인의 자리를 강화하고 교사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가운데, 학생인권은 더욱 위태로워졌다. 지난 한 해 이어진 교사들의 외침을 왜곡하며 정부와 보수 세력이 내놓은 답이 학생인권조례 폐지였던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학생인권조례를 '학교 구성원 조례'로 대체하겠다고 한다. 학생과 교사라는 교육의 주체 간의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은 사라지고 교육 서비스의 제공자로서 교사와 구매자로서 학부모의 관계를 공식화하려는 것이다. 학생에게 '학교의 법칙과 생활지도를 잘 따르라'는 학교 구성원 조례는 학생을 교육 주체는커녕 학교라는 공간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서 있을 자리조차 잃어버리도록 만들고 있다.

이렇듯 신자유주의적 교육 체계는 학생인권과 교사의 권리, 모두를 집어삼키며 학교를 폐허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교육 체계가 만들어낸 교육 소비자-투자자로서 학부모의 위치에서 보수 기독교 세력이 학교에 난입하며 자신들의 정치를 조직하고 있다. 동성애를 조장한다며 학생인권조례를 가로막아오던 보수 기독교 세력이 이제는 전통적 가족질서를 수호하는 학부모로 등장해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은 교육 현장에서 난입해 교사와 학생의 권리를 짓밟으며 성평등에 반대하고 아동 청소년의 섹슈얼리티를 적극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다.

학생인권법 제정, 교육주체들의 권리를 다시 세우는 과정으로

학생인권조례 제정부터 폐지까지의 지난 20여 년의 시간은 학생인권을 통해 교육주체의 평등의 원칙을 세워왔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장악하고 불평등을 강화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교육체계의 불평등에 극우보수 세력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접속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평등의 가치를 훼손해온 시간이기도 했다. 즉 현재 학생인권조례 폐지에 맞서는 대응은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와 불평등으로 점철된 교육의 의미부터 재구성해야 하는 도전인 것이다. 이 도전은 무너져온 학생인권은 물론, 교사의 권리(교육할 권리와 노동권)가, 신자유주의와 극우보수 세력의 공격에 맞서 상호 의존적인 권리로서 평등한 관계 맺음을 시작할 때 가능하다. 학생인권법 제정 운동은 단지 학생인권조례보다 더 강력한 법률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교육 체계 아래 무너져 온 교육 주체들의 권리를 아래로부터 다시 세우는 과정으로 학생인권법 제정운동에 함께 하자.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오른쪽)과 더불어민주당 서울시당 의원들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 마련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농성장을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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