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부세 흔드는 민주당, 누구를 위한 정당인가

[기자의 눈] '똘똘한 한 채 보유자' 아닌 '전세사기 피해자' 곁에 서기를

"민주당이 정부 '부자 감세' 욕할 때마다 너무 화나더라고요. 부자 감세 비판할 수 있죠. 근데 그러려면 본인들이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유예한 것부터 사과하셔야죠."

최근에 만난 어느 소수 야당의 인사가 한 말이다. 그는 금투세 폐지 2년 유예에 합의했던, 그리고 여당의 상속세 폐지 주장에 일부 동조했던 더불어민주당이 과연 부자 감세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느냐 물었다. 세상이 속고 있다며 분개했다.

민주당에 '부자 감세'란 자다가도 툭 치면 나오는 자판기 같은 구호다. 이재명 대표가 공식석상에서 양극화 문제를 거론하며 정부의 부자 감세 기조를 비판한 게 골백번은 될 것이다. 그만큼 입버릇처럼 말했단 얘기다.

"3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경우에 내는 세금을 깎아주자, 왜 그래야 하나. 3채 이상 집 가진 사람 세금 더 내는 것 없애자, 왜 그래야 하나"(2022년 12월 12일 예산안 대치 정국 당시 이 대표의 최고위원회 발언)

이 대표는 정부가 부자 감세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서민 감세 정책으로 응수해 왔다. 이 대표뿐 아니라 역대 민주당 지도부는 늘 같은 길을 걸어왔다. 서민을 위한 정당, 그것이 민주당이었고, 수십 년간 민주당이라는 당이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이러한 정체성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적인 정책이 노무현 정부 때 도입된 종합부동산세였다. 종합토지세 외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주택과 토지 소유자에 대해선 누진세율을 적용해 별도로 세금을 부과하는, 부자 증세를 통한 사실상의 서민 감세 방안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누진 요율이나 기본 공제액에 약간의 변동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20년 가까이 종부세 유지 기조를 이어왔다. 위기는 있었다.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2020년 집값 상승으로 인해 종부세 납부 대상자가 대폭 늘어나자 당시 이낙연 대표는 종부세 완화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나 이듬해 열리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정치공학적 고려를 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종부세에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말을 거둬들였다.

민주당은 4년 만에 또다시 종부세를 흔들려 하고 있다.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최근 <한국경제> 인터뷰에서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보수 언론은 환영, 진보 언론은 비판 논평을 냈다. 시장의 반응은 더욱 빨랐다. 각종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누리꾼들은 관련 소식을 퍼 나르며 종부세 폐지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평소 '<조선일보>가 하란 것 반대로 하면 된다'더니 보수 언론의 칭찬이 멋쩍었나. 아니면 일부 당원들의 불만 때문이었나. 박 원내대표는 곧바로 "확대해석 말라"(5월 10일)며 정색을 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종부세 자체를 폐지하자라고 하는 내용은 아니었고요. 부동산 세제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서는 국민의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그다음에 요청 그리고 의견들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인 개질이 필요하지 않겠나, 부동산과 세제에 대해서 국민과 잘 소통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할 때다라고 하는 것을 말씀드리는 과정 속에서 이야기 나온 것으로 생각합니다."(5월 14일 연합뉴스TV 인터뷰)

요약하자면, 해당 발언의 진의는 '종부세 폐지 입장은 아니지만 국민과 잘 소통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지금까지 민주당이 유지해 온 종부세에 대한 입장은 국민과 잘 소통되지 않는 방향이었다'는 것이다. 이미 <한국경제>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이 함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이념적 틀에서 부동산 세제를 밀어붙여 실패를 경험했다"는 발언이다. 폐지까지는 아니어도, 종부세를 완화하고 싶다는 내심을 박 원내대표는 이미 충분히 드러낸 것이다.

4년 전에는 선거가 코앞이었으니 '공수표'라며 빠져나갈 구멍이라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앞으로 가장 가까운 선거는 2027년 대선이다. 무려 3년이라는 긴 시간이 남았다. 게다가 해당 발언이 나온 시점은 총선에서 승리한 지 한 달, 그리고 박 원내대표가 취임한 지 불과 일주일만이었다. 공연히 내뱉은 헛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문재인 정부 실책으로 인한 대선 패배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이 시점에 왜 종부세일까. 답은 쉽다. 대선 준비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아깝게 진 지역이 서울 용산과 마포갑이었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바로 새롭게 종부세 대상에 오른 아파트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번에 아깝게 진 지역에서 다음 대선 때 이기려면 부동산 세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말했듯 "그런 생각이 왜 나오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당의 목표는 선거 승리라고들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좀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당은 왜 대선에서 이겨야 하는가. 그 당의 후보는 왜 대통령이 되려 하는가. 그리고 왜 정치를 하려 하는가. 적어도 민주당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는 힘없고 어려운 서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하려고 정치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굳이 국민의힘이 아닌 민주당이라는 당에 모여 있는 것 아닌가. 선거 이기자고 정체성을 건드는 것은 주객전도 아닌가. 이럴 거면 뭐 하러 부자 감세 하지 말라 골백번을 외치고 다녔는가. 세상에 이렇게 공허한 일이 어딨나. (☞관련기사 : "종부세, 세계 부러워할 K-세금"이라던 박찬대…돌연 "1주택엔 폐지")

선거용으로만 정책을 바라보는 영혼 없는 정치에 우는 것은 국민들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여러 법안 가운데 우선순위에서 밀려 결국 21대 국회가 끝나기 직전에야 본회의에 부의됐다. 긴 기다림에 지친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박 원내대표의 '종부세 완화' 취임 일성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였을까. 박 원내대표는 과연 이를 헤아려 봤을까.

이재명 대표는 정부를 향해 "3000억 원 이상 영업이익을 내는 경우에 내는 세금을 깎아주자, 왜 그래야 하나. 3채 이상 집 가진 사람 세금 더 내는 것 없애자, 왜 그래야 하나"라고 물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도 민주당에 똑같이 묻고 싶을 것이다. "'똘똘한 한 채' 가진 부자들의 세금을 깎아주자, 왜 그래야 하나"라고.

박 원내대표가 언론 인터뷰 도중 그저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했다는, 1주택자에 한한 종부세 완화(또는 폐지) 방안. 이는 결과적으로 부자 감세로 이어진다.

지난해 부동산R114가 서울 아파트 약 116만 가구를 기준으로 2021년 1월부터 2023년 8월까지 가구당 평균 시세를 분석한 결과,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의 평균 집값은 23억2711만 원이었다고 한다. 평범한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 한 채 가격이 종부세 기본 공제액인 12억 원의 두 배에 달한다. 이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세금을 없애거나 깎아주면, 이게 부자 감세가 아니고 무엇인가. 부자 증세를 통한 사실상의 서민 감세라는 종부세 취지에 완벽하게 반한다.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이 가장 먼저 했어야 할 일은 입버릇처럼 해오던 부자 감세를 막아서는 것이었다. 강남3구의 '똘똘한 한 채'를 가진 이들이 아닌, 전세사기로 이미 영혼을 잃고 육신마저 영영 포기하려 하는 수많은 소시민·청년들 곁에 서는 것이었다.

이재명 대표가 1주일간의 치료를 끝내고 16일 당무에 복귀한다. 이번 종부세 '해프닝'은 이 대표가 자리를 비운 사이 크게 번졌다. 그러나 '찐명'이라는 박 원내대표가 이 대표 의중과 다르게 말했을 거라고 보는 이는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이재명 대표가 이번 논란에 대해 직접 말해야 한다. 대선을 향하는 당신은 과연 누구의 곁에 설 것인지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와 박찬대 원내대표가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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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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