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해상풍력, 폐쇄될 석탄발전소 노동자와 무관해도 되나

[초록發光] 정의로운 전환은 어디 갔나

태안.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면 2시간 정도 걸려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태안은 소나무가 아름다운 안면도의 해수욕장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그곳에 10기 이상의 석탄발전소가 밀집한 발전단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사는 이들에게 태안의 석탄발전소는 매우 중요하다. 자신들이 편리하게 쓰는 전력의 일부가 태안에서 생산되어 공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자가 꽂아놓은 콘센트 너머를 좇아 전신주, 변전소, 송전선을 따라가면 마주치게 될 곳이 발전소일 텐데, 그 중에 하나가 태안발전소다. 인천, 충남, 경남, 강원의 해안가에 자리 잡은 여러 대규모 석탄발전단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석탄발전소는 태안에 사는 사람 대부분에게도 그리 익숙한 시설은 아니다. 석탄발전단지는 읍내에서 차로 40분 이상 달려야 나오는 외진 바닷가에 위치해 있다. 학암포 해수욕장보다 더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높다란 굴뚝, 거대한 건물, 웅웅거리는 소음, 작은 산이라고 해도 될 엄청난 석탄 더미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이 풍광은 주변 지역 사람 이외에는 대단히 낯선 것이다. 그러나 보지 못했다고 별 상관이 없는 곳이 아니다. 발전소는 태안 사람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서부발전이라는 발전공기업이 운영하는 이곳은 태안 지역총생산의 대략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서부발전이 납부하는 세금에서부터, 관련된 정부의 여러 지원금, 지역 기업과 상인들의 납품, 고용된 1천여 명 이상의 노동자들의 소비 등까지 지역 경제를 상당 부분을 지탱하고 있다.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

지난 3월 30일, 잔뜩 흐린 날씨에도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충남의 태안군 버스터미널 앞에 모여들었다. 태안발전소의 노동자들이 제안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 행진'에 참여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아마도 근래 태안에서 열린 집회 중에 가장 많은, 7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 태안의 발전노동자는 왜 이 집회를 제안하고, 또 전국의 사람들은 왜 모여든 것일까.

태안의 발전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터인 석탄발전소의 페쇄에 직면해 있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5년 12월에 폐쇄될 1, 2호기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나머지 석탄발전소도 폐쇄될 예정이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는 이유다. 폐쇄를 앞둔 일터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지 모른다. 그 절박한 심정에서 전국의 노동자와 시민에게 연대를 요청했고, "석탄발전은 멈춰도 우리 삶은 멈출 수 없다"는 호소에 호응하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다.

노동자들도 기후위기를 우려하며 석탄발전소의 폐쇄에 동의한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발전공기업의 노조는 석탄발전소 폐쇄에 대해서 "애틋하게 동의"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최근 설문조사에서 협력사의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대부분이 석탄발전소 페쇄에 동의한다고 답하고 있다. 대신 정부가 자신들의 일자리는 보장해 주길 원한다. 정부 정책에 의한 일터의 폐쇄이니 고용 보장은 당연한 일이라 주장한다. 냉소적인 누군가는 고용 보장이 안 되면 석탄발전소 페쇄에 반대한다는 말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노동자들이 말의 순서를 바꾼 것('일자리 보장하면 폐쇄 동의'에서 '폐쇄를 동의하지만 일자리는 보장'으로)이 얼마나 어려운 변화이며,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중대한 진전인지 이해해야 한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었던 조건이기도 하다.

▲지난 3월 30일, 잔뜩 흐린 날씨에도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충남의 태안군 버스터미널 앞에 모여들었다. ⓒ정의로운전환을위한충남노동자행진 추진위

발전노동자, 석탄발전의 온실가스 대신 풍력터빈

태안 집회의 무대 위로, 커다란 빨간색 굴뚝 조형물을 들고 노동자 두 명이 올라왔다. 발전소에서 일할 때 입는 방진복와 작업모를 쓰고 있었다. 무대 위로 오른 그들은 굴뚝 위에 꽂힌 "CO2"라는 글자가 여기저기 붙어 있는 종이 조형물을 뽑아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석탄발전소의 폐쇄를 상징했다. 그러고는 손을 번쩍 들어 사람들이 앉아 있는 집회 대열의 뒤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뒤쪽으로 쏠리자, 그곳에는 노동자 두 명이 하얗고 커다란 세 개의 날개를 가진 풍력 터빈 상징물을 어깨에 걸고, 집회 참석자들을 둘로 가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무대 앞에 도착해 건네준 풍력 터빈 상징물은 빨간색 굴뚝 위에 꼽혔다. 석탄발전소가 노동자들의 손으로 풍력발전소로 바뀐 것이다. 빨간색 굴뚝에는 '석탄발전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낯설었지만 뭉클했던 이 퍼포먼스는 숨죽여 지켜보던 많은 이들의 박수와 환호로 마무리되었다.

정부는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LNG 발전소로 대체 건설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전력 생산량은 유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은 절반가량 줄일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대안으로 여긴다. 그러나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생각하면, 얼마간 운영하다가 폐쇄가 불가피한 발전설비다. 게다가 지금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도 없다. 같은 용량의 석탄발전소에 비해 LNG발전소를 운영하는데 절반 이하의 노동자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LNG발전소를 건설하면 대략 절반 정도의 노동자는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특히 발전비정규직의 일자리 상실 가능성은 더욱 크다. 대안이 필요하다. 국가가 대규모 투자를 하여 직접 소유하는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건설하여, 폐쇄되는 발전소의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공공재생에너지 전략이 그것이다. 태안 집회의 석탄-풍력 발전 퍼포먼스는 공공재생에너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와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태안 앞 바다의 해상풍력, 해외 기업들이 장악하다

태안군은 서해를 끼고 있다. 석탄발전소 폐쇄가 지역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을 우려하는 충남도와 태안군은 여러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에는 태안 앞바다에 총 2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5개를 개발하는 계획도 포함된다. 그중 가장 앞서고 있는 태안해상풍력(500MW 규모)은 이미 발전사업허가, 환경영향평가 등 거의 모든 행정 절차를 마치고 착공만을 앞둔 상태다. 뒤를 이어 가의해상풍력과 서해해상풍력이 발전사업허가를 획득하고 후속 절차를 밟고 있다. 이것이 건설되면 태안군은 발전소 폐쇄로 잃은 세수를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고, 또 풍력터빈의 조립과 건설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앞서 소개한 3개의 해상풍력단지 사업자는 모두 민간기업체들이다. 게다가 그 중 2개 사업자는 해외 기업이 참여하거나 소유하고 있다. 최근 늘어나고 있는 해외 기업들의 해상풍력 사업 중 일부다. 가장 진척이 빠른 태안해상풍력은 싱가포르 기반의 해외기업(뷔나에너지)이 지분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발전사업 허가를 얻은 서해상풍력은 독일 전력기업인 RWE가 소유하고 있다. 태안군수는 풍력단지 사업자들이 국내 기업인 두산중공업의 풍력 터빈을 채택하고 태안군 안에 조립 공장을 세우도록 요청하여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후발 주자인 두산중공업의 풍력터빈을 채택하여 태안군수의 희망을 실현해 줄 지는 알 수 없다.

▲충남도와 태안군은 여러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그중에는 태안 앞바다에 총 2GW 규모의 해상풍력단지 5개를 개발하는 계획도 포함된다. ⓒ태안군

2차 하청 청년노동자에게 해상풍력은 희망이 돼줄 수 있나

폐쇄되는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태안 앞바다의 해상풍력사업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별 상관없는 일이 되고 있다. 폐쇄되는 석탄발전소를 대신해 지역 경제를 지탱한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공적 자금을 받아서 개발되는 해상풍력사업들이다. 하지만 민간 기업들은 그 개발 이익을 챙겨가겠지만, 고용 위협받는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연계하고 제공한다는 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적 자금의 지원 조건으로 제시되지도 않았으며, 태안군이 설치하고 발전노동자도 참여하는 '정의로운 전환 협의체' 회의에서도 속 시원한 답변이 나오고 있지 않다. 발전노동자들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서부발전과 같은 발전공기업들이 해상풍력사업에 적극 참여해 주도하지 않고 민간기업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이 발전공기업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할 의무를 가질 리 없으며, 정부도 요구하고 있지 않다. 국산 풍력터빈의 채택과 조립 공장의 설치에 대한 희망도 위태로운 이유다.

3월 30일 태안 집회에서 하얀 풍력날개를 빨간 석탄발전소 굴뚝 조형물 위에 꽂았던 이 중 한 명은 태안 석탄발전소의 2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였다. 태안에서 태어나고 중고등학교를 나와 이곳 고향에서 가장 큰 사업체인 태안화력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는 이곳에서 계속 일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2차 하청업체에 다니면서 피 말리는 단기 고용 계약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석탄발전소가 폐쇄되면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도 기후위기에 동감하며 "더러운 발전소"가 아니라 "친환경 발전소"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 일자리가 단기계약을 이어가는 불안정 일자리나, 태어난 고향을 떠나 부모와 함께 살 수 없는 다른 지역의 일자리는 아닐 것이다.

태안 해상풍력단지는 그가 소망하는 일자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지금으로서는 부정적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서 제정된 <탄소중립녹색기본법>이 천명한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이 그저 말뿐이 아니라면, 우리 사회는 이 청년 노동자에게 긍정적으로 답해줄 수 있어야 한다. 국가가 재정을 투자하고 서부발전이 해상풍력단지를 개발해서 그를 고용하면 된다. 그것이 기후위기를 대응하는 가장 빠른 길이며, 또한 가장 정의로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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