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파묘>(감독 장재현)가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파묘>는 장의사와 무속인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토속적인 줄거리의 영화이다. 그런데, 영화 <파묘>가 어떻게 문화적 장벽을 넘어 해외의 여러 국가에서도 흥행할 수 있을까? 필자는 그 이유가 <파묘>의 줄거리가 입지와 생활을 관계짓는 일반적인 인식에 기초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경제지리학 : 입지와 경제활동의 관계
제도화된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경제적 입지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거지를 결정할 때, 직장을 구할 때, 구매나 판매에 나설 때, 친구를 만나거나 여행을 떠나는 때에도 최대의 효용 또는 효율을 얻을 수 있는 목적지를 탐색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의 활동 양식을 규정하는 다양한 제도들은 경제지리학적 분석에 기초하여 수립되기 때문이다.
경제지리학은 17세기 서부유럽 국가 간 교역의 증가와 함께 발전된 상업지리학에서 시작되었다. 경제지리학은 19세기를 거쳐 대학 중심의 학문으로서 자리를 잡았으며, 오늘날에는 입지와 경제활동의 관계를 분석하는 도구로서 일상과 제도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이에 관한 예로서, 때때로 우리는 경제뉴스를 통해 OO 산업의 중심지라는 표현을 접하곤 한다.
데이터 사이언스와 경제지리학
'중심지'란 표현은 1900년대 초반 경제지리학자 발터 크리스탈러(Walter Christaller)의 중심지 이론(Central Place Theory)을 통해 학술적 의미가 정립되었다. 이론에 따르면, 중심지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기능과 더불어 희소하고 핵심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입지를 말한다.
중심지는 일반적인 입지에 비해 경제적 기능의 다양성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중심지 이론은, 앞에서 제시한 예시와 마찬가지로, 소위 경제생태계의 명당을 분석하는 프레임워크(framework)로 널리 활용돼왔다.
그러나 최근엔 중심지 이론을 비롯한 주요 경제지리학의 이론이나 분석법을 현대의 도시경제 분석에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왜냐하면, 과거 경제지리학이 발달되는 시기엔 현대와 같이 밀집되고 다양하며 복잡한 구조의 대도시(metropolis)가 상당히 드물게 존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심지 이론을 활용하여 서울의 중심지를 탐색하는 것이 그러하다. 중심지 이론에서 설명하는 중심지의 입지적 특징은 높은 기능적 다양성이다. 그러나 현대화된 도시경제엔 단순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이하 상품)가 존재한다.
가상의 예로 서로 다른 두 시장 A와 B를 비교해 보자. 시장 A가 서울에 위치해 있고 시장 B는 시골에 위치하고 있다면, 시장 A가 시장 B보다 더욱 다양한 상품을 취급할 것이라고 쉽게 어림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엔 중심지 이론에 따라 시장 A의 입지가 중심지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시장 A와 B가 각각 서울 안의 서로 다른 장소에 위치한다면 어떨까? 이러한 경우엔 시장 A가 보다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더라도 시장 B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일부는 취급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현대적인 대도시의 중심지는 상품의 다양성만으로 탐색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학문에서 그러하듯 경제지리학 이론 역시 복잡계 경제학의 최신 데이터 분석법을 접목하면 기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최신의 복잡계 경제학의 분석법은 다양성보단 다양성에 연관된 구조적 특징(복잡도)에 주목한다.
이 방법론에 따르면 상품의 다양성은 경제 구조가 복잡해지는 것의 원천인데, 상품의 다양성이 높은 시장에선 반복되는 거래의 상호작용을 통해 높은 확률로 새로운 상품이 발생할 수 있으며, 새로운 형태의 상품은 거래의 양상이 더욱 복잡하게 변화하는 걸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제발전적 매커니즘은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도로 발전되어 그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은 산업구조의 복잡도가 높은 특징을 보일 수 있다.
메가시티 서울의 도시경제
서울은 인천-서울-경기로 구성된 세계에서 8번째로 큰 메가시티(mega city)의 지리적 중심지이며, 국내 사업체의 19.5%(118만 개), 고용의 22.9%(종사자 579만 명) 그리고 총생산의 22%(431조 원)를 담당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중심지이다.
또한 서울엔 국내 주거인구의 18.3%(950만 명)가 생활하는 공간으로서 생활과 관련된 주거, 교육, 문화, 의료, 교통, 방송 등의 다양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서울의 도시경제는 다수의 소규모 사업체(이하 소상공인)로 구성된 특징을 보인다.
2021년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서울 소재의 사업체 중 소상공인의 비중은 대략 85.2%(5인 미만 규모의 사업체)에서 93.6%(10인 미만의 사업체)에 달하며, 이들은 대략 700가지에 해당하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수치로 확인한 바와 같이, 서울 도시경제의 주요 구성성분은 소상공인이며, 이에 따라 필자는 소상공인의 업종 및 위치에 관한 데이터 그리고 복잡계 경제학의 데이터 분석법을 활용하여 서울시 내의 입지별 산업의 복잡도를 계산했다.
데이터로 그린 메가시티 서울의 경제지리
위의 그림에서 붉은색 원은 경제적 복잡도 상위 지역을 가리킨다. 경제적 복잡도 상위 지역은 강남, 종로, 신촌, 여의도, 용산, 이태원, 김포, 마곡, 목동, 가산디지털단지, 노원, 청량리, 잠실, 송파 등이 있다.
경제적 복잡도 상위 지역은 두 가지 특징을 보이는데, 기업이 밀집된 중심부에 넓게 형성되어 있고 중요시설―공항, 산업연구단지, 방송국, 디지털단지, 교통 허브 등―이 위치한 외곽지역에 독립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경제적 복잡도 상위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과 비교하여 근로자의 수가 많으며, 그중에서도 부가가치가 높은 통신, 지식서비스, 보험 산업 등의 업종 근로자 비중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경제적 복잡도가 높지 않은 지역엔 주거나 여가에 관련된 인구가 밀집된 특징과 기업활동을 위한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업종의 근로자 비중이 비교적 높은 특징이 확인됐다.
이밖의 특징으로, 경제적 복잡도가 높은 지역에선 산업의 복잡도가 높은 소상공인의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관측된다. 예를 들어, 다이아몬드 매매, 보석감정, 속기 등의 전문 학원, 수입제품판매, 필체감정, 공제회의용역, 부동산소유권조사, 물품감정, 향수전문점, 해외취업알선 등이 있다.
반면, 경제적 복잡도가 낮은 지역에선 산업의 복잡도가 낮은 소상공인의 경제활동으로 반찬가게, 농자재판매, 치킨판매, 에어컨수리/설치, 떡판매, 정육점, 태권도장, 세탁소/빨래방, 등이 확인되었다.
앞에서 확인한 경제적 복잡도 상위 지역의 특징들은 "경제의 핵심적인 기능을 제공하는 입지"라는 중심지의 정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경제적 복잡도가 높지 않은 지역은 주거지 또는 기업활동을 보조하는 산업이 위치한 입지적 특징을 보여 (중심지의) 배후지인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는 소상공인 데이터의 활용과 경제지리학 이론 그리고 데이터 사이언스의 접목을 바탕으로 메가시티 서울의 풍경(중심지의 위치와 입지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았다. 도시에 대한 이와 같은 분석은 경제지리학의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최근에서야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추세이다. 필자는 이러한 새로운 발견과 분석적 결과가 다방면으로 제시되어 공간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사회발전에 활용되길 바란다.
■ 필자 소개
김종현 박사는 '지적 자본의 질과 양의 측정, 변화, 관계에 관한 기술 경제학 연구'로 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소상공인 경제생태계연구센터의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도시의 경제활동과 네트워크 그리고 혁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소상공인경제, 기술경제, 특허분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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