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타임스> "한국 성장 기적 끝나간다" 지적

장기간 국내에 제기된 지적들 총망라…용인 반도체 단지 두고는 "옛 모델"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의 경제 성장 기적이 끝나간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국내에서 문제로 지적된 사안이 총정리됐다.

22일 <FT>는 '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나?(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기사에서 정부의 용인 반도체 단지 투자를 두고 "대부분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칩 제조사들이 최첨단 메모리 칩 분야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인공지능(AI) 관련 하드웨어의 미래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이는 한편으로 한국 성장 모델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징조라고도 해석했다.

<FT>는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용인 반도체 단지 투자를 "한국 정부가 제조업-대기업이라는 전통 성장 동력을 두 배로 키우려는 결정"으로 보고 이는 "활력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는 (한국형) 모델 개혁 의지가 없거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용인 메가 클러스터는 한국이 훨씬 가난하고 덜 민주적인 시기 개발된 경제 모델을 유지하려는 한국의 도전"을 보여주지만 "2027년 첫 번째 단지가 완성되면 그에 적합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할 것"이며 "재생 가능 에너지의 충분한 공급이 없이 새로운 원전 건설에 관한 초당적 합의도 없다면 전력이 어떻게 공급될지도 불분명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FT>는 1970~2022년 사이 연평균 6.4% 성장한 한국 경제 성장률이 2020년대 들어 평균 2.1%, 2030년대에는 0.6%, 2040년대에는 0.1%로 둔화하리라는 한국은행 전망을 들어 "저렴한 에너지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낡은 모델의 기둥이 흔들린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FT>는 에너지 문제를 두고 "한국 제조업체에 막대한 산업 관세 보조금을 제공하는 국영 에너지 독점 기업인 한국전력은 15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축적"했고 노동의 질 문제를 두고는 "(한국을 제외한)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만이 (한국보다) 노동 생산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는 <FT>와 인터뷰에서 "모방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우리의 경제 구조는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미국이 발명한 칩이나 리튬이온 배터리와 같은 기술 상용화에 강점이 있지만 새로운 '기반기술' 개발에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FT>는 이 같은 문제의 근원으로 성공의 함정, 즉 기존에 통하던 정답이 변화한 시대에 통하지 않는 함정에 한국 경제가 빠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FT>는 "경제학자들은 '(제조업-대기업이라는)기존 모델' 개혁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며 "반세기도 안 되어 가난한 농촌 사회를 기술강국으로 이끈 한국의 국가주도 자본주의 성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알려졌고 그 결과 "2018년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GDP는 과거 식민지배자였던 일본의 GDP 마저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핵심 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우위는 줄어들었다"며 "2012년 한국 정부가 선정한 120개 중점기술 중 36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던 그 숫자가 2020년에는 4개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FT>는 박상인 교수를 인용해 "한국의 기술 수출은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기술 붐이라는 쌍둥이 수요 충격"으로 인해 2011년 현재 모델은 정점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규모 투자를 이끈 삼성과 LG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들이 장악했던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이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고 <FT>는 보도했다.

아울러 한국의 대기업-수출주도형 산업 구조는 한편으로 "주요 대기업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큰 이익을 (하도급이라는) 독점 계약 관계를 통해 국내 공급업체를 희생하면서 얻은 것"이라는 박 교수의 말 또한 <FT>는 인용했다.

그로 인해 "한국 노동력의 80% 이상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은 직원이나 인프라에 투자할 돈이 부족해 낮은 생산성 악화와 혁신 둔화"에 빠져 서비스 부문 성장 억제 요인이 됐다고 신문은 밝혔다.

대-중소기업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내수 희생-수출 주도형이라는 기존 산업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은 장기간 국내 개혁적인 학자들로부터 제기돼 온 바 있다.

▲비가 내린 지난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FT>는 "2021년 한국인의 6%만을 고용한 대기업이 GDP의 거의 절반을 충당하는 한국의 양분화한 경제 구조(two-tier economy)는 사회적지역적 불평등을 야기한다"며 "이는 다시 서울 안팎에서 소수의 엘리트 대학 자리와 고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놓고 한국 청년층의 급증하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한국 청년층이 가중하는 학업, 경제 및 사회적 부담과 씨름하면서 출산율을 더욱 낮추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한국은 OECD에서 가장 성별 임금 격차가 크고 자살률도 가장 높다"고 <FT>는 밝혔다.

기술혁신성 부족에 더해 극단적인 인구 구조 변화 역시 한국 경제가 직면한 큰 과제라고 <FT>는 밝혔다.

<FT>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인용해 "생산가능인구가 (고령화로 인해) 거의 35% 감소함에 따라 2050년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대비 28% 낮아질 것"이라며 "미래 성장 우려가 임박한 인구통계학적 위기로 인해 더욱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인구 고령화를 급격히 발전하는 AI 기술이 대체해 지금의 저출생 현상이 우려만큼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나오지만, <FT>는 "급락하는 출산율부터 낙후한 에너지 체계, 실적이 저조한 자본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국의 부진한 기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역시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원인이라고 <FT>는 밝혔다.

<FT>는 "국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 중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의 하나"라며 "한국 신혼부부의 평균 빚은 12만4000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서구 기준에 비해 낮은 57.5%이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과감한 연금 개혁이 없다면 향후 50년간 이 부채가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고도 매체는 덧붙였다.

또 "2070년까지 한국인의 46%가 65세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은 이미 선진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FT>는 이번 22대 총선 결과 역시 한국 경제 정책 수립에는 좋지 못한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FT>는 "한국의 정치 지도 체제는 좌파(더불어민주당)가 장악한 입법부와 인기 없는 보수(국민의힘) 행정부로 양분됐다"며 "이달 초 총선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하면서 2027년 차기 대선까지 3년 이상 (행정부와 입법부 간) 교착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레임덕에 들어간 행정부와 국회 간 갈등으로 인해 국정 동력이 마비돼 3년간 경제 위기에 대한 답을 내놓을 어떤 주도적 정책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국내 일반적 전망을 인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FT>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개혁의 (그간) 기록은 좋지 못했다"며 "대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는 중이며 "연금, 주택, 의료 부문 개혁은 정체된 반면, 대기업에 대한 국가 의존도를 억제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늘리고, 기업 가치를 높이고,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서울을 선도적인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만들려는 시도는 거의 모두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22일 <FT>는 '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나?(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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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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