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제조업의 숨겨진 '혁신가들'이 필요한 이유는?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숙련제조기술 승계 위한 기술인력관리 및 신규인력양성 지원 강화해야

메가시티 서울의 제조업과 도시형소공인 현황

세계적으로 인적·물적 자본의 도시 집중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어 가고 있으며, 이러한 자본의 집중은 도시의 혁신 환경을 구축하는 데에 기여한다. 도시가 갖는 혁신 환경의 경쟁력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생성되고 이러한 아이디어가 상품으로 구현될 수 있는 기술과 생산 역량을 함께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획기적인 상품이 탄생하여 '혁신'이 발생했을 때, 그 상품을 기획한 '아이디어'에 초점을 둔다. 그러나 무형의 아이디어는 생산과정을 거쳐 상품으로 구현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도시 제조업 부문의 혁신을 창출하는 데에 있어서 숨겨진 생산자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이들은 '도시형소공인'이다.

도시형소공인이란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2조에 따라 상시 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이면서 노동집약도가 높고 숙련기술을 기반으로 일정 지역에 집적하여 제조업을 영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도시형소공인을 분류하는 업종은 생활밀착형 제조업과 뿌리산업에 해당하는 19개가 포함된다.

2022년 기준 서울시 제조업 사업체 7만 5641개 중 도시형소공인 업종에 해당하는 사업체는 약 97.5%(7만 3766개)를 차지하며, 전체 제조업 종사자 26만 1088명 중 약 97.6%(25만 4778명)가 도시형소공인에 해당한다(<그림> 참조).

이들은 평균 사업체당 3.5명이 종사하는 소규모의 영세업체들이다. 현재 서울시의 5대 제조업종으로 의류봉제, 기계금속, 주얼리, 인쇄, 수제화가 지정되어 있으며 이 업종들을 중심으로 다수의 도시형소공인 집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서울시 제조업에서 도시형소공인 업종의 사업체수와 종사자수의 비중은 전체에서 약 97% 이상을 차지한다. ⓒ정혜윤

숨겨진 도시의 혁신가들, 도시형소공인의 역할

앞선 통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서울시 제조업은 도시형소공인들이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제조업 혁신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까? 이들은 아이디어를 보유한 창업가와 협업하며 아래와 같이 3가지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첫째, 도시형소공인은 무형의 아이디어를 유형의 상품으로 구현하는 생산자이자 혁신가(Innovator)이다. 젊은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구현한 상품이 탄생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며, 이 과정에서 이들은 숙련된 기술과 생산설비를 갖춘 생산기지가 필요하다.

서울시 내 대표적인 시제품 제작의 생산기지는 금속가공 및 기계제조부문의 영등포구 문래기계금속집적지를 들 수 있다. 이곳에는 관련 약 1300여 곳의 소공인 사업체가 집적해있다. 이곳에서 창업가들의 아이디어는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보유한 도시형소공인들의 손을 통해 상품으로 구현되고 있다.

의류봉제 산업집적지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의류산업의 트렌드에 맞춘 새로운 디자인의 의류생산을 위해 디자이너들은 종로구의 창신동, 숭인동 등의 봉제공장을 찾아 숙련 봉제사와 협업하여 소비자 맞춤형 의류를 제작한다.

창업가들에게 있어서 도시형소공인은 자신이 구상한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생산시키기 위해 반드시 협업해야 하는 공동 혁신가이며, 도시형소공인 집적지는 도시 속 혁신을 구현하는 생산기지가 된다.

둘째, 도시형소공인들은 젊은 창업가와 디자이너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길잡이(Navigator)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기술을 제공하여 최종적인 상품 생산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필요한 기술자를 소개시켜주거나 기술자 간 협업을 통해 응용기술을 개발·적용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도시형소공인들은 자신이 보유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을 공유함으로써 젊은 창업가와 디자이너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빠른 기간 내에 독립한 사업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셋째, 도시형소공인은 아이디어와 설계 및 디자인 도면만으로 시장에 뛰어든 창업가들이 실제 현장을 경험하게 함과 동시에 사업체 경영과 같은 노하우를 전수하는 현장의 교육자(Educator)가 되기도 한다. 도시형소공인들은 현장 경험이 부족한 창업가와 디자이너들에게 오랜 경험으로 체득된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전수함으로써 초보 사업가들을 위한 현장실습교육을 제공한다.

위와 같이 3가지의 혁신을 창출하는 데에 기여하는 이들의 역할을 종합하면 도시형소공인들은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무형의 아이디어를 유형의 실물로 구현해내는 '숨겨진 도시의 혁신가들'이라 할 수 있다.

도시형소공인,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가?

도시 속 혁신을 유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시형소공인들은 오랜 기간동안 정책 지원 대상으로 크게 조명 받지 못했으나, 2015년부터 '도시형소공인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이를 기반으로 도시형소공인의 생산 인프라 구축 및 작업환경개선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현재 △인력의 고령화 △신규인력부족으로 인한 숙련제조기술 계승의 단절 △일감 감소라는 삼중고(三重苦)에 직면해 있다. 따라서, 도시형소공인의 기술승계와 인력수급에 대한 대안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으며 아래와 같은 정책 지원의 확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도시형소공인들이 보유한 숙련된 제조기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수출주도형 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핵심 인력일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서울시 제조업을 지키며 숙련된 기술을 축적해 온 '장인'들이다.

이와 같이 기술장인들의 고도로 숙련된 제조기술이 단절되지 않도록 국가적 차원의 제조기술 자격기준 정립 및 표준화된 기술 지침 수립 등 체계적인 숙련제조기술인력 관리체계 구축을 제안한다.

둘째, 젊은 세대의 숙련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장기적인 교육 프로그램의 확대 지원이 필요하다. 현재 도시형소공인들은 '인력의 고령화'를 가장 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평균 50대 이상의 기술자들이 가장 어린 세대에 속하며, 10년 이내에 많은 숙련기술자들이 은퇴시기를 맞이하면 산업 자체가 단절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장의 기술자들은 기술장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교육기간이 최소 4년 이상 소요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숙련제조기술인력 양성 지원에 있어서 단기적인 제조기술 훈련 보다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도시형소공인 집적지에 청년 창업가들이 숙련기술자들과 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들의 협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행·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협업공간에서 숙련기술자들은 청년 창업가들에게 기술 전수와 생산을 지원하여 시장 진입의 기회를 제공하고, 창업가들은 소공인집적지구에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소공인들은 새로운 일감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면 도시 제조업의 안정적인 계승과 지속가능한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넷째, 도시형소공인들의 노후화된 작업환경 정비 및 개선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소공인 집적지구는 거주지와 혼재된 도심 지역에 입지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그 설비와 환경의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열악한 환경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 중소기업벤처부의 2017년 '도시형소공인 집적지구' 탄생 보도자료. ⓒ중소기업벤처부

이러한 근무환경은 젊은 세대의 신규인력유입을 차단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적 차원에서 도시형소공인들의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노후장비 교체, 봉제공장 주변 환경정비에 대한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혁신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지만, 그 아이디어가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상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도시 속 숙련기술자의 손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러나, 고도로 숙련된 기술장인들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신규인력양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부족하다.

우리는 이미 많은 제조업 분야에서 숙련기술자의 고령화와 신규 기술인력 유입의 감소로 인한 기술계승 단절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의 숙련제조기술 인력관리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도시의 제조업을 이끈 기술들을 다음 세대가 안정적으로 계승하여 도시의 혁신기반이 되는 도시형소공인의 뿌리를 이어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필자 소개

정혜윤 박사는 '노후산업단지의 도시산업 집적지 형성에 관한 연구–서울온수산업단지를 사례로–'로 경제지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인하대학교 소상공인 경제생태계연구센터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균형발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산업단지와 산업입지, 지역산업 및 소상공인 정책 분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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