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임신중지 정책을 각 주에 맡겨야 한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애리조나주 대법원이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에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160년 전 극단적 임신중지 금지법을 되살렸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애리조나주 대법원은 9일(이하 현지시간)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를 제외하고 수정된 순간부터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1864년 제정 임신중지 금지법이 다시 집행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 법은 강간과 근친상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않으며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는 2~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이날 4대 2 판결로 해당 법 부활을 지지한 애리조나 대법원은 2022년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에 대한 헌법적 보호를 규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어 "임신중지에 대한 연방 헌법적 권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이 법(1864년 금지법)을 집행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애리조나 대법원은 이 법의 합헌성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14일의 시간을 둬 그동안 집행을 유보했다.
이번 판결은 로 대 웨이드 판결 전복 뒤 공화당 소속인 전 애리조나주 법무장관이 사문화됐던 1864년 임신중지 금지법이 복원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임신중지권 보호 단체와 소송을 벌인 끝에 나왔다. 애리조나 대법원 판사 전원이 공화당에 의해 임명됐다.
애리조나주 현 법무장관인 민주당 소속 크리스 메이즈는 이번 판결은 "비양심적이며 자유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하고 법 시행을 막기 위한 법적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며 임신중지 시술을 한 의사를 기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대선 경합주 중 하나인 애리조나에서 임신중지 정책에 대한 관심이 크게 치솟을 전망이다.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불과 1만 표 조금 넘는 차이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승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즉시 성명을 내 판결을 비난했다. 그는 성명에서 이번 판결로 "수백만 명의 애리조나 주민들이 강간이나 근친상간 같은 비극적 경우나 건강 위험에 처했을 때도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는 더욱 극단적이고 위험한 임신중지 금지법 아래 살게 된다"며 "이 잔인한 금지법은 심지어 애리조나가 주가 되기도 전, 여성이 투표권을 갖기도 전인 150년 이상 전에 처음 제정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여성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공화당 선출직 공직자들의 극단적인 의제가 반영된 결과"라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 "해리스 부통령과 나는 여성의 선택권을 지지하는 대다수의 미국인 편에 서 있다"며 "모든 주 여성을 위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이 제공했던 보호를 복원하는 법 통과를 의회에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판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신중지 정책은 각 주가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뒤 하루 만에 나왔다.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신중지에 대한 첫 공식 입장을 내며 강간, 근친상간,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할 경우 임신중지 허용을 지지했지만 애리조나의 경우처럼 주가 이러한 예외를 허용하지 않을 경우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임신중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는 전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신중지에 관한 "모호한" 입장을 취해 이 문제가 덜 언급되길 바랐지만 애리조나 대법원 판결로 이 전략이 뒤집혔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유리한 임신중지 문제를 무력화하거나 적어도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갈 방법을 찾고 있었지만 이번 판결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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