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또 심판…이게 국회의원 선거가 맞나

[시민정치논평] '심판' 프레이밍이 가리는 것들

지난 금요일과 토요일 총선 사전투표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 가지고 투표권을 행사한 것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이 후보와 정당이 나의 삶과 가치, 입장을 잘 대변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저 후보와 정당이 싫어서 투표하는 분위기 역시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 마냥 반가울 수만은 없다. '심판'이라는 프레이밍이 가장 두드러진 이번 선거는 정치적 책임을 묻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지, 사회의 진단과 변화 방향, 정책과 철학에 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밀려났고, 투표용지에 나를 대변할 것 같은 후보는 잘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그들의 소속 정당 및 지지자들과 함께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서로 혐오, 비방, 막말을 주고 받는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인구학적 특성과 사회경제적 위치는, 약간의 편차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동질성이 높다. 장애인, 가난한 자, 농민, 이주민, 성소수자, 청년은 거의 없고, 비장애인, 부자, 전문직의 나이 많은 남성 등 기득권이 여전히 국회의원의 대다수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다채로운 목소리를 대변하고, 복합적인 위기를 절박하게 문제화하고 그 해법을 제대로 모색하는 데 있어서 이들이 공유하는 경험과 사회경제적 기반의 동질성은 그 자체로 저해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동질성은 결국 누군가는 과잉 대표하고 누군가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은폐하는 원인이 되는 바 중요한 의사결정과정에 이미 불평등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21대 국회는 가결된 경제 법안과 노동 법안의 심각한 불균형 때문에 '기울어진 국회'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는 다음 국회에서도 다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향은 경제와 노동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목소리가 잘 들려지지 않고, 공적 담론에서 고려되지 못하는 집단이 비수도권 지역의 주민들이다. 지역 불평등은 이제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 되었지만 이를 당연시하는 경향 역시 점점 확산되고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 대응만 봐도 알 수 있다. 전공의들이 현장을 이탈하자, 의사가 부족해 지역에 배치한 공중보건의들을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파견을 보냈다. 애초에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 의사를 더 늘리겠다고 의대증원을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지역 의사를 수도권으로 빼 오다니. 정부의 진심이 너무 잘 느껴지지 않는가.

이것은 하나의 우연적 사건이 아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불평등 및 이로 인한 고통 중 무언가가 정부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정의된다면 다른 문제들은 배제되거나 우선순위가 뒤쳐진다. 이 과정에서 지역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사회구성원들이 많아진다면 정부는 거침없이 정책과정을 진행한다. 만약 중앙정부가 제도적으로 지역의 의사인력을 쉽사리 통제할 수 없었다면, 상시적 의료공백으로 인한 비수도권 지역 주민의 고통을 심각한 문제로 여겼다면, 최소한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발을 예상하고 두려워했다면, 이러한 파견은 쉽게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에서는 이러한 지역불평등을 완화하고, 지역소멸을 대비하는 공약들이 절박하게 묻어날까?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전반적으로 후보자들의 공약이 잘 드러나지 않는데, 무슨 무슨 착공, 건립, 조성, 개관, 완공 등 개발 공약은 넘쳐난다. 한 조사에서는 지역구 후보자들의 개발 공약은 2,239개에 달하지만, 실현가능성은 36%에 불과했고, 개발 공약을 제시한 후보자 537명 중 재원조달 계획을 공개한 후보자는 30%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단 실현가능성 없는 개발 공약을 재원조달 계획도 없이 막 던지는 수준은 둘째 치고, 이게 국회의원 선거가 맞나 싶다. 지역에서 표를 받아야 하는 사정은 이해하지만, 지자체장이나 지방의회의원도 아닌 국회의원의 공약이 죄다 크고 작은 지역 개발이라니. 그 와중에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지역구 후보자가 많으니 개발 공약도 수도권에 몰려있는 것도 역설적이다.

다른 문제는 몰라도 지역소멸 문제에 대한 대책은 지역을 개발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게 핵심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실제 거대 양당은 의료·문화·스포츠 인프라를 확대하고, 지역으로 이전하는 중소기업 세금을 면제하고,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자족할 수 있는 지방 성장거점을 만드는 등의 공약을 내걸고 있다. 사람들이 복잡하고 주거비 높은 도시가 싫어 비수도권 지역으로 이사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고, 의료, 문화, 교육 등 인프라가 부족해서 못 간다고 하니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왜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이유를 따져보는 것이 먼저다. 지금의 수도권 집중은 저절로 이뤄진 게 아니라, 한국의 자본축적체제 속에서 수도권이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을 마치 식민지처럼 착취, 배제한 역사가 쌓여 나타난 결과다. 산업화 시기부터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설정하고, 이를 지탱하기 위해 농촌과 농업을 억압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도 산업폐기물 매립시설 등과 같이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시설은 비수도권 지역으로(관련내용 바로가기), 지식산업 거점과 인적 자원은 수도권으로 집중한다. 한쪽에 이익이, 다른 한쪽에는 불이익이 집중되는 것은 그 둘 간의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나아갈 방향은 난립하는 개발이 아니라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간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이다. 이를테면, 지역소멸 대책으로는 지방정부가 지역 주민에 대한 책무성을 강화하도록 분권화와 재정 강화를 기본 방향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조세정책은 세금 감면과는 반대로 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또한 한 지역 내 개발이나 인프라만 약속하는 것보다는 수도권과의 격차에 직접 개입하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이미 선거가 시작된 마당에 정책 방향에 대해 피력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맥락 안에서 균열을 만들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좁혀져 버린 선택지 가운데서도 공약을 살펴보며 조금이라도 체제 변혁적인 후보와 정당을 찾아보자. 그리고 선거 결과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낙관이나 실망은 하지 말자. 더 중요한 것은 낮은 자세로 표를 구하던 정치인들이 얼굴을 바꾼 뒤일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드러내기 위한 노력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 예상치 못한 새로운 길은 그 가운데서 만들어질 것이다. 선거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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