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 의료위기…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다

[인권학의 프런티어] 전공의 파업 사태로 되돌아보는 한국의 의료 사각지대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평화-인권-환경 연구자인 황준서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경제위기, 기후위기 등 이전에 유지되어온 상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변화 또는 분기점을 의미하는 '위기'라는 말이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위기는 아마 '의료위기'일 것이다.

'위기' 대응은 이전에는 허용하지 않았거나, 실시하지 않았던 새로운 조치들의 도입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현재 '의료위기'의 원인으로 전공의들의 진료중단을 지목하는 정부는 보건의료 재난위기 경보 수준을 가장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로 격상하고, 단체행동에 참여하는 전공의들을 상대로 면허정지와 각종 취업 불이익 조치들을 실시하고 있다.

오늘날 '의료위기'를 바라보며 매순간 의료위기에 놓여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동안 어떠한 조치가 허용되어왔는지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칼럼에서는 인권의 관점에서 건강보험제도가 특정 사회집단을 어떻게 일상적인 의료위기로 내몰고 있는지 살펴본다.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갈등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4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이 목련이 핀 나무를 지나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강과 의료에 관한 권리

국제사회는 건강권에 대한 여러 구속력 있는 협약들을 발전시켜왔다.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 제12조는 모든 사람이 도달 가능한 최고 수준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를 인정하며,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공평한 접근, 모성 및 아동 건강 보호 등을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아동·여성·장애인 등 개별 사회적 소수자들의 권리를 다루는 주요 협약(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장애인권리협약) 등도 소수자 지위로 인하여 건강권 향유를 차별받지 않도록 명시하고 있다. 한편 1990년에 채택된 이주노동자권리협약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그들의 거주국가에서 생명 유지와 회복 불가능한 건강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국제인권협약들은 모두가 보편적으로 건강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국가 수준에서 건강권 보장 제도는 공동체의 성원을 '국민'으로 제한한 상태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건강을 보장받을 권리를 인정하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1963년에 의료보험법이 제정되고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장의료보험이 시범적으로 실시되면서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1977년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에 대해 직장의료보험이, 1981년에는 직장 중심 의료보험제도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역의료보험이 실시되었다. 1988년에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국민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었고, 1년 뒤에는 직장의료보험과 지역의료보험이 통합되면서 오늘날까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아픔에 대한 국가의 보장 및 지원은 체계적이고, 튼튼한 것처럼 보인다. 건강보험제도 예산은 정부지출에서 20% 가량을 차지할 정도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무상 의료보험 제공 범위 확대를 골자로 한 '오바마케어'를 추진하면서 한국의 건강보험을 칭찬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꽤 성공적인 모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국민'이라는 자격을 필요로 한다.

선별된 시민, 허울 좋은 외국인 건강보험제도

사회연대의 원리 차원에서 보면 의료보험은 예측 불가능한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여 공존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제도 기능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주민에 대한 건강보험제도 확대는 사회연대를 촉진할 수 있다.

2019년 7월 16일부터 한국에 6개월 이상 체류하는 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재외국민들의 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다. 당시 의무가입이 유예되었던 외국인 유학생들도 2021년부터 의무가입자가 되었으니 사실상 국적에 관계없이 한국에 체류하는 모든 이들이 건강보험제도에 접근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재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는 국적에 관계없는 건강권 보장보다 외국인의 선택적인 의료보험 가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자국민 역차별 논란과 도덕적 해이 해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면 보험료 산정 및 감면 기준, 체납자에 대한 보험급여 제한, 지역가입 시기 등 여러 부분에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소위 "불법체류자"로 불리는 미등록이주민들은 의료서비스에 접근했다가 오히려 강제추방을 당할 위험에 놓여있어 여전히 건강보험제도에서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에서 이주민들은 국민중심적 건강보험제도 속에서 동등한 법적 권리의 주체가 아닌, '예외적이고 불완전한 시민'으로 취급받고 있다. 합법과 불법이라는 얄팍한 경계선을 기준으로 건강할 수 있는 사람과 건강할 수 없는 사람이 선별되고 있는 셈이다.

▲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의과대학 증원을 비롯한 의료 개혁과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동반자·돌봄 관계의 부인 및 차별 … 건강보험제도의 성소수자 결합관계 불인정

한편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이성애규범을 중심으로 분절되어 있다. 시민결합 또는 동성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관할하는 행정기관은 동성 간 혼인신고를 불수리 처분하고 있다. 사실 민법에 혼인의 취소나 무효 사유로 동성 간 혼인을 규정하고 있지 않음에도, 유권해석을 통해서 불수리 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상 동반자 및 돌봄 관계에 있음에도 성소수자들은 배우자, 가족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게 될 수밖에 없다.

한국 국적을 가진 성소수자들은 국민보험제도에 의무적으로 가입되어 있고, 개별적으로는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들의 동반자 및 돌봄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서 의료보험제도 틀 안에서 서로의 부양자·피부양자가 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2019년 한 동성커플이 결혼식을 올리고 한 쪽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동반자를 등록하였다. 이후 건강보험공단은 동성부부는 피부양자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등록을 취소하였고, 이 커플은 2021년에 소송에 나섰다.

동성결혼은 사실혼 관계로 볼 수 없다면서 건강보험공단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과 달리 2023년 2심 판결은 '평등원칙 위반 여부'에 주목하여 합리적 근거가 없는 한 행정서비스를 누릴 시민들의 권리를 자의적으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의 피부양자 지위 등록 취소 처분이 잘못되었다고 선고했다.

현재 해당 소송은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앞두고 있다. 만약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확정한다면 최소한 건강보험제도에서 성소수자들의 상호돌봄 관계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2심 판결도 헌법 제36조 제1항과 민법에서 양성(남녀)의 결합을 전제로 하는 혼인의 정의를 기반으로 동성 간 사실혼의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권으로서 시민결합 내지 동성결혼에 대한 논의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숙제로 남아있다.

관점의 전환, 건강을 청구할 시민적 권리에서 건강을 보장할 공동체의 의무로

이번 칼럼에서 살펴본 건강보험제도를 둘러싼 논의들은 국민국가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오늘날 여전히 인권보장에 가장 우선적인 책임이 있는 국민국가의 역할에 대해서 돌아보게 한다.

국민국가는 말 그대로 한 나라의 국민을 위한 나라이지만, 인권은 모든 인간의 문제이다. 이 지점에서 국민의 테두리를 제한하려는 국가와 건강권의 보편성이 경합하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기준으로 인권을 보장하고자 할 때, 그 테두리 바깥에 놓인 사람들은 항시적으로 위기를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건강보험제도는 시민들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서비스를 청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인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적어도 아플 때만큼은 평안하게 쉴 수 있고, 건강한 모습으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버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건강보험제도는 국가가 정한 수많은 기준을 거쳐서 선택받은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서비스에서 적어도 건강권만큼은 신분에 관계없이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공동체의 의무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한다.

진정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건강보험제도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 본다.

<소개논문>

안주희·배한들. 2020. “건강보험제도에 내포된 국민 중심적 시민권의 한계와 이주민으로의 시민권 확대 가능성 모색”. 『인권연구』 3(2): 69–105.

장서연. 2023. “동성 배우자 건강보험 피부양자 사건 판결의 의미와 한계”. 『인권연구』 6(1): 229-244.

<다운로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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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서

퀸즈벨파스트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북아일랜드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삼중 전환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2022년에 졸업하였다. 생태정의, 환경범죄, 지속가능한 평화, 탈인간중심적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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