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살던 30대 여성 청년, ‘소멸 위험’ 지역에 살기로 마음먹다

[6411 투명인간의 목소리] ②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

경희대학교와 노회찬재단은 2023년 1학기부터 200여 명의 학생이 듣는 교양강좌 '후마니타스 특강 : 6411의 목소리와 노동존중 사회'를 협력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업은 노회찬재단이 <한겨레신문>과 공동으로 진행 중인 연재 칼럼 '6411의 목소리' 필자를 매주 한 명씩 모셔 한 학기 동안 특강으로 운영합니다. '존재하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 6411 당사자들이 청년들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삶과 노동 이야기를 <프레시안> 지면으로 중계합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도시에 살다 충북 옥천으로 떠난 여성 청년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입니다. '소멸 위험 지역에 살겠다'는 결심을 품고 옥천에 간 뒤 직업적인 일은 물론 책 모임, 술집 운영 등 다양한 공동체적 활동을 병행하며 사는 그의 이야기는 '행복한 청년 지역살이'의 한 모델을 보여줍니다. '귀농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서울과 옥천의 인프라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은 어떻게 극복했나요?' 등 강연을 들은 청년들의 질문과 이 팀장의 답도 함께 전합니다.

'지역살이'를 결심하고 옥천을 선택하기까지

저는 오늘 지역과 지역살이, 지역의 노동에 대해 말씀드릴 옥천에 사는 이다현이라고 합니다. 제가 실제로 하고 있는 지역의 노동, 그리고 여러분이 생각하는 지역의 노동 사이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왜냐면 제가 지역에 오기 전에 그랬거든요. 제가 하는 일이 지역의 모든 모습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삶의 모습이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서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옥천 살기 전에는 도시에서만 살았습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오래 살았고, 서울에 6년 정도 있다가 한 1년 전에 옥천으로 이주했고요. 대부분의 사회생활을 비영리 조직에서 했습니다. 현재도 비영리 법인 조직인 옥천순환경제공동체가 운영하는 옥천군 마을공동체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역으로 가게 된 결심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지역으로 가자'고 마음먹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2017년 서울로 갈 때도 서울에서 오래 살 생각은 없었습니다. '언젠가 서울을 떠나겠지' 생각했는데, 한 번 자리 잡으면 떠나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그리고 제 삶의 방식이 사실 도시랑 잘 맞습니다. 지금도 서울 가면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맛집도 많고 갈 데도 많고. 그런데 '앞으로 계속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 생각하니 좀 막막했어요. 특히 집 문제가 가장 컸죠. 당시에 전세를 살고 있었는데, 한참 전세사기 이런 것이 터지면서 집에 대한 불안이 굉장히 컸어요.

또 중요한 건 제가 젊으니까 아직 경력에 대한 욕심이 있을 나이인데, 서글프게도 서울에서 일하면 같은 일이라도 주목받기 쉽다고 생각했어요. 비영리조직 일을 대전에서도 해보고 서울에서도 해봤는데, 확실히 서울에서 일할 때 주목도가 훨씬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걸 포기하고 서울을 떠날 수 있을까? 경력이 단절되는 것 아닐까?' 고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완전히 문과입니다.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고요. 지금도 인문학을 좋아하는데, '지역에서 특별한 기술도 없는 문과생, 거기다 여자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이게 제일 발목을 잡았던 것 같아요. '포크레인이나 지게차 자격증을 여자들도 많이 딴다는데, 그런 걸 해야 되나?'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습니다.

그럼에도 '지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금이 지역 소멸 시대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지역 활성화 관련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항상 지역 소멸이 화두였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에서 자기 스타일대로 살면서 활력을 만드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모습이 되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서울에서 벗어나 좀 재미있게 살아보자. 그게 나의 성향에 맞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 지역 이주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결심은 했는데 그렇다고 딱히 갈 곳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제가 지역 소멸 이야기를 꺼내놓고 광역시로 가는 건 너무 소심한 선택인 것 같아서 좀 일찍이 패스했어요. '가능하면 소멸 위험도가 높은 곳으로 가보자' 결심했어요. 대신 저도 도시에서만 살다 보니 너무 외진 곳은 좀 두렵다 싶어서 '대도시와 가까운 곳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어떤 지역 하면 딱 떠오르는 특색도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해남은 땅끝마을과 고구마, 하동은 섬진강과 지리산, 이런 식으로요. 또 제가 아직 청년 나이다 보니 '청년 정책이 많으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청년기본법은 청년 나이를 34세까지로 정하고 있는데요. 웬만한 지역에서는 보통 39세까지 청년입니다.

이런 것들을 기준으로 전국 지자체 중에 몇 군데를 골라봤어요. 그 중에 청년 정책을 잘하고 있던 데가 의성, 그리고 개인적으로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지역이 해남, 하동, 완주, 제천, 옥천 이 정도가 물망에 올랐습니다. 그중에 옥천을 골랐어요. 대전에서 비영리 단체 일을 하면서 옥천을 얼핏 알고 있었는데, 옥천이 좋은 의미에서 만만치가 않은 곳입니다. 주민들이 골프장 반대운동을 해 실제 저지해 낸 경력도 있고요. 지역 풀뿌리 언론사인 <옥천신문>과 같은 시민사회가 굉장히 탄탄한 곳입니다.

그리고 <옥천신문>이 워낙 오래됐기 때문에 지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사가 다 있어요. 그러다 보니 지역 상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굉장히 많이 됐습니다. 전혀 모르는 지역보다 '지역에 이런 갈등이 있구나', '이슈가 있구나', 이걸 알고 가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인터넷을 찾아보니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사회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찾아 인터뷰하고 기록하는 프로젝트)이라는 데도 있대요. 지금 저와 같이 일하는 정순영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장님도 그 사이트에서 먼저 만나 뵙게 됐습니다.

'정 살다 안 되면 옆에 있는 대전 가족 품으로 도망가겠다' 이런 플랜 B까지 짜고 옥천을 딱 집어서 이주를 결심했어요. 석 달 정도 <옥천신문>, 그리고 (옥천군) 소식지와 홈페이지, 이런 걸 뒤졌고요. 맨몸으로 가기는 너무 무서우니까 일자리는 구하고 가자 싶어서 일자리 정보를 알아봤어요. 그러다 현재 직장과 연이 닿아 작년 2월 옥천군민이 됐습니다.

▲ 지역을 고르며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이 들여다 본 '지방 소멸 위험' 지도. 빨간색이 소멸 위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

비(非)도시 지역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청년의 삶

제가 옥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할게요. 제가 일하는 곳은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입니다. 도시에도 무슨무슨 센터가 많은데, 비슷합니다. 군에서 운영하는 곳인데요, 공무원들이 이런(마을에 필요한) 일을 다 하지 못해요. 그러다 보니 민간조직에 운영위탁을 맡깁니다. 저희 센터는 2021년 1월 개소했고요. 주민교육, 회의, 워크숍, 공동체모임 등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고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센터가 만들어진 계기는 당시 행정안전부의 지역 활성화 관련 공모 사업이었습니다. 민간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민간과 행정이 같이 협력해 제안서를 쓰게 됐고 선정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수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옥천군에 저희 센터와 같은 주민 공간이 처음 만들어졌었습니다. 연 이용 인원이 4000명 이상 정도 되고요.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운영한 지 3년 만에 2층으로 중축돼 현재 2층짜리 건물을 저희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공간 운영 외에 마을 공동체 활성화와 관련된 일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지역·마을 활성화 정책을 발굴하고 주민들이 실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지원도 하고 있고요. 올해부터는 사회적 경제 업무가 추가돼 이 일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직원은 작년까지는 3명이었다 올해 사회적 경제 담당이 1명 추가돼 4명입니다.

제가 주로 하는 일을 소개할게요. 먼저 주민 역량 강화입니다. 주민교육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농촌에 주민교육 사업이 상당히 많습니다. 왜냐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온갖 사업이 진행되는데, 주민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진행하기 상당히 어려워요. 그래서 주민들이 실제 일을 할 수 있도록 사업 설계 방법, 주민 소통 역량, 정보 검색 방법,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교육, 회계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 기획한 교육은 '민주주의 레벨업'이었고요. 정보 검색 실습 등 교육을 직접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는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주민들을 현장에서 만날 일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보면 정책과 현장이 괴리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현장 이슈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고민하는 것도 센터의 역할입니다. 흔히 '공무원은 현장을 모른다', '탁상행정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하죠. 계획만 보면 훌륭한 사업인데 마을 현장에서 안 돌아갈 수 있어요. 그러면 사업에 불만도 쌓이고 진행도 잘 안 되는데, 저희가 현장에 있다보니 (주민들이) 불만을 많이 말씀해 주세요.

작년에는 지역 활성화와 관련한 정책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하고, 저희 센터 같은 중간지원 조직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4회에 걸쳐 포럼을 열었어요. 전문가, 공무원, 주민을 골고루 모시고 토론하는 자리도 마련했고요. 올해는 주제를 좁혀 좀 더 가벼운 포럼을 진행해볼 계획입니다. '시골에서 청년이 과연 살아갈 수 있을까?', '시골 여성이 그림자 노동만 하지 말고 리더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이런 주제로요.

세 번째는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옥천군에서 마을공동체에 이런저런 사업을 진행해 보시라고 보조금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적으면 700만 원, 많으면 3000만 원 정도까지 지원되는데요. 이 사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역할을 합니다. 보통 이장님들이 사업을 진행하세요. 그런데 이장님들 평균 연세가 70대 정도 됩니다. 자기 일이야 워낙 베테랑이시니 잘 하지만, 보조금 사업에서 서류를 챙겨야 할 게 많은데 이런 부분을 어려워하세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야 활동하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어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어렵지 않은데, 어르신들은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도 뭔가 기록이 없어요. 그래서 큰 행사를 하면 사진도 찍어드리고 있습니다. 행사 MC를 봐달라고 하셔서 제가 직접 본 적도 있고요.

평상시에는 주민들을 만나 어려움은 없는지 내년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마을 의제도 발굴해요. 마을에서는 정월 대보름이나 동지, 이런 절기를 굉장히 잘 챙겨요. (주민들이) '밥 했다'고 '꼭 밥 먹으러 오라'고 하시거든요. 그럼 밥 먹으러 가면서 인사드리고, 이런저런 얘기 듣고 오는 것도 저희 역할 중 하나입니다.

▲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의 마을공동체 활동 지원.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

직업이 아니어도…지역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

제가 지역에 가면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지역살이 활동'이라고 이름 붙여봤어요. 직업적으로 하는 일만 말씀드리면, 지역의 삶을 반쪽만 말씀드리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활동도 지역살이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책모임'인데요. 서울 살 때는 이런 거 안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소모임 참여가 굉장히 쉽죠. 그런데 지역에서는 망망대해에 뗏목 하나 띄워놓은 기분입니다. '제 나이 또래 사람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 방법이 참 없습니다. 소모임 어플이나 당근이나 이런 것들이 활성화돼 있지는 않거든요.

제 옆 센터에 있는 또래 직원들 모으고 어찌저찌 알게 된 사람들까지 한 5명을 모았습니다. 5명이 책 모임을 하나 해보자해서 시작하게 됐고요. 모임 이름이 '제3의 시간'입니다. 저희가 첫 번째로 읽었던 <제3의 장소>라는 책에서 따왔고요. 5명이 각자 읽고 싶은 책 두 권씩을 추천해 읽고 월 1회 정도 만나고 있습니다.

모임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다 보니, 다음 달에는 나름의 프로그램을 하나 기획했어요. 옥천에 '포도밭 출판사'라는 작은 출판사가 있습니다. 거기서 <뒷자리>라는 신간이 나왔어요. '책 모임을 저희만 하지 말고, 작가님을 초대해서 같이 해 보자'는 말이 나왔고요. '지역 주민도 몇 명 초대하자' 싶어서 모집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활동은 술집 운영입니다. 이름은 '활동가 술집 오아시스'고요. 이름에 비해 분위기는 좀 구수한 편입니다. 왜냐면 저희가 이 공간을 별도로 마련한 게 아니고, 기존 카페 공간을 목, 금, 토 저녁에만 빌려서 '샵인샵(shop in shop)' 형태로 운영하고 있거든요. '활동가 술집'이라고 이름붙인 이유는 저희가 장사 초짜다 보니 대중에게 공개해 운영하는 것은 좀 부담이었어요. 지역에서 같이 활동하는 분들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나름 프라이빗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술집이 지역에 가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입니다.

지역에서 어쩌다 보니, 술 먹다 보니 마음 맞는 사람 5명이 모였고요. 5명이 100만 원씩 돈을 냈습니다. 그러다 막 후루룩 진행됐는데, 올해 1월 말 문을 열었습니다. 5명이 돌아가면서 한 주씩 맡아 운영하고 있고요. 주력 메뉴는 하이볼입니다. 서울은 하이볼 파는 데가 워낙 많은데, 옥천은 작년까지만 해도 하이볼을 들어본 적도 없는 분이 많았어요.

이 공간을 중심으로 저희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시도해 보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작가와의 대화도 이 술집에서 열고요. 술을 팔다 보니 남는 수익금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로 작가님 강사비도 드렸어요. 지역사회 환원 개념으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누가 굉장히 고급 고량주인 백주를 갖다주셔서 백주가 뭔지 공부하고, 음주운전하면 안 되니 대낮부터 마시고 버스 끊기기 전에 집에 들어가자는 의미에서 '백주대낮' 프로그램을 했고요. 피자를 사서 피맥데이도 해봤어요. 확실히 저희 공간이 생기다 보니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가볍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열 수 있는 것도 좋습니다. 투잡을 하다 보니,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니지만 굉장히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옥천아는사람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우리밀 빵집 겸 전통주 편집샵 '덕분'입니다. 제가 직접 관여하는 곳은 아니고 친한 분들이 운영하는 곳입니다. 안남면이라고 되게 시골에 있는 곳이에요.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으니까 궁금하신 분들은 한번 들어가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옥천에 오시면 '덕분'으로 한번 놀러 가시는 것도 추천드리고요.

여기 소금빵이 굉장히 유명했는데, 제빵하던 분이 갑자기 관두셨어요. 그런데 빵 재료는 거의 반 년치가 남아 있는 거예요. 급하게 처분해야겠다 싶어서 제빵 실습을 했습니다. 우리밀로 만들다 보니 일반 밀가루랑 발효 등이 좀 달라요. 처음에 소금빵 만들면서 이상한 뭉탱이 모양으로 나오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좀 거쳤습니다. 벨기에 와플도 한번 구워봤는데, 모양은 그럴 듯 했지만 굉장히 퍽퍽해서 평가는 좋지는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시행착오를 거쳤고 지금은 다행히 조합원 중에 전담으로 빵을 구울 수 있는 분이 생겨서 아주 맛있고 예쁜 소금빵을 만들고 있습니다.

'덕분'에서 전통주 편집샵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계기가 있습니다. 옥천군이 지역 균형 발전 지원 사업이라고 해서 면 단위에 한 25억 원씩 지원해 주는 공모 사업이 있었어요. 안남면이 선정됐죠. 그래서 올해부터 '친환경 공유 복합 가공센터 조성 사업'을 진행하는데, 사업에 '우리밀을 활용한 전통 증류주 개발'이 포함돼있습니다. 실제 증류주가 개발되고 생산되려면 4~5년 정도 걸리겠지만, 일단 이 전통주를 지역에서부터 알리자는 목적으로 이 편집샵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술마다 이런 매력과 특성이 다 있거든요. 제가 여기서 간접적으로 하는 역할은 오시는 분들에게 전통주를 소개해 드리고 판매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통주를 좋아하거든요. 많이 마셔보고 찾는 것에 따라 추천도 드리고 있습니다.

▲ 옥천군 활동가 술집 '펍 오아시스' ⓒ이다현 옥천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 팀장

지역살이를 결심한 계기와 불안함을 극복한 과정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지금부터는 질의응답 시간입니다. 제가 먼저 질문하며 학생들 질문을 기다려볼게요.언론에서 지역 소멸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정책이나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가려 하는 집중 현상, 이런 것들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이지 않습니까? 개인 단위로 보면, 한국이 망하더라도 '어떻게든 서울에 살겠다' 그런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지역 소멸에 대응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가질 수 있는데,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실행으로 옮기게 된 계기, 동기, 동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다현 : 서울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2017년부터 지역을 가야겠다는 막연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지만, 실행하는 데는 거의 6년 정도 시간이 걸렸던 것 같고, 가장 걱정을 많이 했던 것은 경력 단절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계속 살고 싶어 하는 분들. 저도 마찬가지였고, 가장 큰 이유가 서울에서 할 수 있는 좋은 일일 것 같아요. 저도 서울에서 주목받는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망설여지는 부분 중에 하나였고요. 지역의 좋은 일이라고 하면 잘 떠오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대기업이 일단 없고, 지역에 제조업 일자리가 많은데, 특히 저 같은 여성은 생산직으로 가기도 어렵고요. 지역에 좋은 일이 없는 것이 현실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일과 활동을 소개해드린 이유는, 일이 딱 하나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N잡러'로서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부수익도 얻어보고 이런 기회가 만들어지는 게 서울보다 지역에서 더 가능한 것 같아요. 저도 지역에 산 지 1년밖에 되지 않았고, 책 모임이나 술집은 재미로 하고 있지만요. 이런 것들을 통해 지역을 더 알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또 새로운 일거리랄까요? 일자리까지는 아니지만 일거리는 분명히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빈다.

김진해 : 말씀하신 것처럼, 옥천을 생각할 때도 일단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는 곳을 찾아봤다, 지금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게 다양한 활동, 또 새로운 일을 자꾸 발굴하고 사람들을 새로 만나고 조직하고, 일을 벌이면서 본인의 노동, 직업을 운영하고 계신데, 그 둘의 차이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 같아요. '생활이 불안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생활해보니 어떤지 말씀해 주세요.

이다현 : 지역에 가기 전에 저보다 앞서서 지역살이하고 있는 주변 사람,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딱 지금 저와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어요. 'N잡러'로 돈 안 되는 활동을 하면서, 본인은 재밌다면서 하고 있는데, '너 그렇게 그 나이에 이렇게 불안정하게 살아서 어떡하냐' 저는 이 얘기를 실제로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해보니까 센터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이 아주 낮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었고, 그걸 기반으로 다른 활동을 하고 있다는 면에서 안정성은 있는 것 같고요. 센터마다, 지역마다 수준은 다르지만 중간지원 조직 업무가 월급이 그렇게 낮지는 않아요. 서울 수준과 비슷해요.

불안정한 느낌은 지금도 약간 반반인 것 같아요. 왜냐면 센터라고 하는 게 영원한 일은 아니고, 보통 3년 이런 기간을 정해서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에 곧 문을 닫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갖고 있는 믿음 중에 하나는 '3년 정도 후에는 내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내 일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실제로 듭니다. 서울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지역에 와서 살아보니까 그런 믿음이 들어서 불안정한 부분은 많이 해소가 된 것 같습니다.

김진해 : 새로운 종교인의 모습을 보는데요. 믿음이 강하시네요(웃음). '어떻게든 일은 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이 있으신가요? 그게 허황된 게 아니라 일을 계속 만들어가다 보면 또 다른 일이 펼쳐질 거라는 확신이나 기대 이런 게 있으셔서 그런 것 같아요. 학생들 질문이 있네요.

어르신과의 관계에서 주거문제까지…지역살이의 고민

학생 1 : 친구나 가족과 멀어지는 게 걱정되지 않았나요?

이다현 : 아무래도 친구들은 서울에 몰려 있고, 이런 고민은 많았어요. 그런데 저는 남자친구랑 같이 이주했어요. 완전히 혼자 한 것은 아니라 약간은 좀 안정적인 동반자가 있었고요. 지역살이를 하면, 또 친구가 생기더라고요. 책모임을 하고 술집을 하면서 나이는 천차만별이지만 친구가 10명 이상은 생긴 것 같아요. 그 사람들과 새로운 활동을 기획하게 되고, 이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너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씀드릴게요.

학생 2 : 지역에 이주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이다현 :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요. 낮에 봤을 때는 '여기나 예전 제가 살던 대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생각했는데, 밤에 불 꺼질 때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깜깜해서 '시골에 왔구나' 실감이 났어요. 옥천은 그나마 덜하지만, 사전 답사를 몇 군데 가봤을 때 8시만 되면, 지역이 정말 죽은 듯이 조용하더라고요. 그런 데까지 갈 용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옥천은 그 정도는 아니라는 면에서 선택지 중 하나가 됐고, 불편함은 그래서 크지는 않아요. 지금은 저도 많이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서 닭이 돌아다녀도 놀라지 않아요.

학생 3 : 서울과 지역의 인프라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소하나요?

이다현 : 서울 살 때 정말 좋았던 게, 공연장 많은 것, 카페라든지 갈 곳이 상당히 많은 거에요. 저도 참 걱정을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지역 인프라가 아주 없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서울처럼 대규모 공연장이 있거나 아이맥스 영화관이 있지는 않은데요. 지역은 웬만하면 문화 소외 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문화 소외 지역에 주는 예산이 있습니다. 옥천은 문예회관이라고 작은 공연장이 있는데 생각보다 양질의 공연을 상당히 많이 해줘요. 저는 오히려 오페라, 클래식 가수의 공연을 옥천에 와서 훨씬 더 많이 본 것 같아요. 1만 원 정도면 이런 걸 볼 수 있거든요. 서울에서 20만 원짜리 뮤지컬 보는 것도 좋았지만, 1만 원 주고 보는 클래식, 이런 것도 접근성이 굉장히 좋다는 측면에서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지역에 작은 영화관이 있습니다. CGV같은 큰 영화관은 상업성이 없어서 지역에 안 들어오잖아요. 작은 영화관이 있는데, 관람료가 7000원입니다. 자리는 100석 정도밖에 안 돼요. 상당히 작은데 웬만한 영화 신작은 다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문화적인 면에서 아주 소외되어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 안 되면, 옆에 대전 갑니다. 20, 30분 정도면 가거든요(웃음). (옥천이) 대도시랑 인접해 있다는 면이 또 가장 큰 메리트 같습니다.

학생 4 : 교육이나 의료 인프라가 서울과 차이가 있을 텐데, 그런 욕구,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이다현 : 저는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아픈 것은 아니라서 교육과 의료 인프라를 아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는 못했어요. 서울과 비교해서는 훨씬 더 떨어지는 게 사실인 것 같습니다.

다만 교육은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 폐교 위기의 학교, 이런 것들이 많아지고 있고, 지역에서 학교 살리는 데 정말 전력 투구를 하고 있어요. 지역 민간에서 투자하는 금액도 많고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예산도 상당히 많습니다. 학생 수는 적고, 예산은 많기 때문에 오히려 학생 한 명 한 명 맞춤형 특화 교육 같은 것들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지역으로 학교를 보내는 학부모도 주변에 계십니다. 교육의 어떤 부분에 방점을 찍느냐, '내가 정말 입시 전문 교육으로 아이를 키울까' 아니면 '이 아이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키울까'라는 기준으로 봤을 때, 저는 지역 교육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학생 5 : 농촌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어려움은 없나요?

이다현 : 제가 만나는 이장님들이 70대가 가장 많은 것 같아요. 젊다고 하시는 분들이 60대 정도 되는데, 옥천이 나름 시민사회가 활성화돼 있고, 좀 열린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 어르신들은 어르신입니다. 제가 젊고, 여자다 보니까, 저를 약간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거는 정말 어디에 가나 있고, 일할 때 저를 굉장히 많이 배려도 해주시고 대우해 주시는 이장님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어르신들과 일하는 게 전부터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르신과 접점이 없고 이런 분들은 지역에서 어르신들의 저런 말, 여성에 대한 그냥 쉽게 하시는 말, 이런 것들이 불편할 수는 있겠다 생각은 들어요. 지역에 살기로 결심한 이상 그런 것을 좀 웃어넘기는 넉살이 필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불편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불편할 거고, 옛날 어르신의 한계라고 생각하면 또 그렇게 넘어갈 수 있고 좀 편한 마음을 가지려 하고 있습니다.

학생 6 : 도시가 그리울 때가 언제고, 반대로 떠나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인가요?

이다현 : 서울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 어려움은 있고, 약간 아쉬운 지점이 있지만, '서울은 한 번 놀러 가면 된다'는 정도로만 지금은 생각하고 있고요. 떠나길 잘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지역에서 하고있는 술집, 아니면 제가 직접 하고 있지는 않지만 빵집이나 전통주 편집샵에 참여하는 것, 이런 것들이 지역에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은 이런 가게가 많지만, 제가 관여할 수 있는 여지는 적기 때문에, (지역에서는)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고, 생각보다 그런 걸 할 때 비용이 많이 들지도 않아요.

주거는 정말 빼놓을 수가 없어요. 아파트에 사는데, 월세가 45만 원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싸지는 않아요. 대신 지역 청년에게 (주거비를) 지원해 주는 정책이 몇 개 있는데, 옥천은 월 10만 원 정도 지원해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실제로는 월 35만 원 정도에 읍내 가운데 있는 18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에 비하면 굉장히 주거의 질이 올라간 거죠.

▲ 행주산성에서 본 서울 야경(자료사진). ⓒ연합뉴스

귀농과 창업, 청년 지원 정책에 대한 이야기

학생 7 : 도시 생활양식을 탈피한 부분적인 귀농 생활이나, 농업을 주로 하는 귀농생활을 꿈꾸는 청년에게도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이다현 : 제가 일하는 방식이 농촌에 특화된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신 것 같아요. 저도 '옥천 센터 일이나 도시 일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상이 조금 다를 뿐이다' 정도만 지금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귀농을 하고 싶거나 정말 청년 창업 농부가 되고 싶은 분들은 또 완전히 다른 얘기죠.

귀농 생활을 꿈꾸는 청년도 제 주변에 있기는 있습니다. 옥천에 전혀 연고가 없는데 농사를 짓겠다고 와서 허브 농사, 호밀 농사 등 지역에서 보통 안 하는 작물 제배를 시도하는 청년 농부가 계세요. 그런 분들은 보통 어떻게 지원받냐면, 농식품부에서 청년창업농 영농정착 지원금 정책이 있습니다. 처음에 소득이 안정되지 못하니까, 1년 차는 월 100만 원, 2년 차 90만 원, 3년 차 한 80만 원, 이런 식으로 3년 정도 지원 정착금을 주게 돼 있습니다. 월 100만 원 정도면 최소한의 생활은 되니까, 농사 연습하면서 실제 농부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학생 8 : 지역에 가면 창업을 하는 게 좋을지, 농업에 종사하는 게 좋을지 궁금합니다.

이다현 : 자기 선택인 것 같아요. 어디에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잘 하느냐는 건데, 사실(지역에 온 청년이 하는) 농업을 창업농이라고 하거든요. 물려받을 땅이 없는데, 내가 농사를 짓겠다고 하면 300평 정도 땅이 있어야 됩니다. 내 땅이어도 되고, 임대를 받아도 돼요. 사실 땅 구하는 게 상당히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내가 그 지역 출신도 아니고, 지역에 연결된 관계망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좋은 땅을 구하는 게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농사에 종사하는 것은, 이것도 굉장히 정책은 많지만,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요.

오히려 이런 활동과 관련돼 창업하는 분이 옥천에는 훨씬 더 많으신 것 같습니다. 특히 옥천에는 <옥천신문>을 중심으로 미디어가 잘 돼 있는데 여기 기자 출신인 분들이 무료로 배급되는 지역 소식지를 만드는 사회적 경제 조직을 만든다거나, 공동체 라디오를 운영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확장되는 것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지역에서 어떤 일을 한번 경험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창업하는 것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김진해 : 지금 시행되는 지역 정착 지원이 청년들한테 좀 매력적이거나 설득력이 있나요? 실제로 살아보니 어떠신가요?

이다현 : 저는 청년 정책 연구도 했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도 내봤지만, 실제 '이런 정책 때문에 청년이 지역으로 갈까' 의심은 항상 들었습니다. 옥천은 청년 정책을 그렇게 잘하는 지역은 아니에요. 다른 지역 수준 정도로 하고 있는데, 이주하기에는 사실 불안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청년 정책은 실제로는 보조하는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중요한 것은 지역에 갔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좀 안정된 조직으로 바로 갔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분들이 안전망이 돼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아까 청년 창업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저는 사실 청년 창업 정책이 굉장히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생각해요. '창업이 보통 일이 아닌데, 일반화된 교육이라든지 컨설팅으로 정말 창업을 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정말 다른 차원의 문제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창업 의지가 있는 분들은 그런 정책이 잘 돼 있는 지역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죠.

한 템포 쉬기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삶이 되길

김진해 : 보통 여행하면 잘 알려진 명승고적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 맛집 순례, 이런 것 중심으로 되는데요. 지역에 뿌리내리고, 색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만나는 것도 필요하고, 여행의 다른 면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책방이나 술집, 빵집 같은 곳에서 작게 작게 구체적으로 뭔가를 하면서 지역에서 사시는 분들을 만나면 여행에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옥천에 가면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이다현 : 그런 프로그램을 잘하는 지역이 있어요. 주민들이 운영하는 전통찻집에 가서 지역의 야생차 이야기를 들어보는 '마을 여행사' 프로그램도 있고요. 예를 들면 하동이 그래요. 옥천은 여행 프로그램은 아직 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아는 사람과 함께 다니는 게 가장 좋은 것 같고요. 요즘에는 지역에서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다 보니, 한 달 살기, 2주 살기, 3박 4일 살기 이런 프로그램은 상당히 많이 진행되고 있어요. 옥천도 있어요. 이런 데 참여하다 보면 조금 더 지역을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김진해 : 행복하게 산다는 게 어떻게 사는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행복해 보이시는데(웃음).

이다현 : 저도 여전히 걱정도 많을 나이고, '당장 내년에 뭐 할까' 이런 생각은 정말 끊임없이 해요. 대신 그런 건 좀 확실하게 생긴 것 같아요. 대학에 다닐 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가? 이게 나의 욕구인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의 욕구를 나의 욕구로 오해를 하고 있는지' 이런 고민이 많았거든요. 나이 들다 보니 점점 저만의 방식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그런 부분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고, 지금 시도하고 있는 것들도 결국 그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행복한 건 맞는 것 같습니다.

김진해 : 뭘 성취해야 행복한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일 하나하나를 스스로 가치 있게 생각하고, 투신하시는 것 같아서, 그래서 행복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해 주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이다현 : 그때는 잘 몰랐던 것 같지만 지나 보니 뭐든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30대 중반이 넘는 나이에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 거였거든요. 그때는 '이 나이에 가도 될까' 고민했는데 지역에 오니 저도 아직 '애기'입니다. '그 나이면 뭐든 하겠다' 이런 얘기를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그러니 그런 걱정은 좀 내려놓으시고, 한 템포 쉬어가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 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여러분은 꼭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하늘에서 본 90년대 충북 옥천군 전경(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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