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걸'이 예술은 아니지만 축구도 첨단 과학은 아니지 않나?"

[프레시안 books]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고 싶지만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자아를 찾고자 하는 젊은이의 흔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여성 혐오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에겐 질문의 시작점도, 의미도, 과정에서의 어려움도 다르다. 생물학적 여성에게 여성성이라는 특성을 부여한 사회가 동시에 여성성을 비하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뒤늦게 폄하된 특성을 버리고 "지금과는 다른 모습", 사회에서 인정 받는 남성성을 추구해도 돌아오는 결과는 같다. 같은 특성을 여성이 '흉내'내도 '부자연스럽다'는 꼬리표만 붙을 뿐 결코 생물학적 남성이 남성성이라는 특성을 '연출'할 때와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사실 반드시 남성성을 갖고 싶은 것도 아니다.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또는 돼야 할지 알 수 없을 뿐.

책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타라-루이제 비트베어 지음·김지유 옮김·프런트페이지·264쪽)는 1990년생 독일인 저자가 이 모순을 풀어 가는 과정이다. 저자는 여성이 어떤 특성을 보이든 '결국 부정된다'는 현실을 여러 차례 짚는다. 부여된 여성성에 충실할 경우 '베이직 걸(Basic Girl)'이라는 비하에 직면한다. 2010년대 초반 등장한 이 단어는 펌킨 스파이스 라테, 분홍색, 쇼핑, 네일 아트 같은 '여성적'인 것들을 즐기는 '뻔한 취향'을 가진 여성을 깎아내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저자는 "남성이 자동차나 축구에 관심이 있으면 그것은 가치 있는 취미이자 일반적인 남성들의 취향으로 여겨진다"며 무엇보다 "평범하게" 받아들여진다고 지적한다. 반면 여성의 취향에는 "멸시"가 따라 붙어 여성이 메이크업, 연애,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진다면 "개성도 없으며 뻔한 여자"라는 평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저자 자신도 이러한 꼬리표를 의식해 "나를 소비에 집착하는 멍청한 여자로 생각할까 봐 두려워" 연애 상대방에 쇼핑백이나 새 화장품을 숨겼고 <가십걸> 같은 여성 취향 드라마를 본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그 앞에 고전 소설을 세워 놓곤 했다고 고백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는 항상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었고, 나는 취향에 대한 평가와 비난을 듣는 것이 두려웠다. 이처럼 여성스러운 것에는 수준이 낮고 단순하다는 꼬리표가 붙기 십상이었다. 그러나 이는 계급주의적인 생각일 뿐만 아니라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나도 <가십걸>이나 <섹스 앤 더 시티>가 예술적으로 작품성이 대단한 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고함을 지르는 관중들에게 둘러싸인 스물두 명이 공 하나를 쫓으면서 득점은 거의 내지도 못하는 그 스포츠도 첨단 과학이 아닌 것은 마찬가지지 않나?"

그렇다면 여성성이 폄하되는 것을 인지하고 남성적 취향을 추구하는 여성들은 존중 받을까? 이런 여성들은 '픽미걸(Pick Me Girl)'이라며 또 폄하된다. 저자가 인용한 바에 의하면 오스트리아의 한 언론은 '픽미걸'을 "맥주를 즐겨 마시고 축구를 좋아한다면서 남성들과 어울리기를 가장 즐기"고 "다른 여성과 다르다고 스스로 차별화"하는 여성으로 정의했다. 이 때 이 여성이 진짜 축구를 좋아하는지 남성에게 선택 받기 위해(pick me) 취향을 연기하거나 바꾼 것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어떻든 '픽미걸'로 치부돼 혐오의 먹잇감이 될 테니. 저자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가부장적 세계의 현실"이라며 "여성이 남성에게, 사회에게, 그리고 심지어 같은 여성들에게 평가받지 않고 무언가를 좋아하기란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힘들다"고 설명한다.

여성성이나 남성성과 직접 관련된 영역이 아니라도,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까지 모든 영역에서 "심판과 편견"을 경험한다. 이는 "어떤 선택을 하든 여성을 패배자로 만들어버리는 대단한 방식이다."

"웃을 때면 여자 웃음소리치고 크다는 말을 들었다. 수학을 잘 못하면 역시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따라붙었다. 반대로 글쓰기처럼 잘하는 것에 몰입할 때면 관심을 받으려고 저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지성을 드러내는 여성은 관심을 받고 싶어 똑똑한 척한다는 말을 듣는다. 모델이나 댄서처럼 육체적 매력을 드러내는 직업에는 멍청하고 천박하다는 시선이 따라붙는다. … 섹스 파트너가 많으면 더러운 여자고 적으면 비싼 척 하는 여자다. 그렇다고 성 경험이 없으면 마더 테레사라도 되냐는 말을 듣는다. … 잘 웃지 않으면 성격이 못된 것이고, 성격이 못되면 여자도 아니다. 여자란 자고로 온화하고 편안하며 함께 있는 사람을 즐겁게 만들고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지으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존재여야 하는데 말이다."

뭘 하든, 뭘 하지 않든 비판 받고 부정 당하는 상황에서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돼야 할지 상상하고 결정하고 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앞에 "여자가~"를 달고 노골적으로 훈계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저러한 비난이 '여성이기 때문에' 쏟아진다는 사실조차 자각하기 어렵다. 어린 시절에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고 성인 여성도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글을 읽으며 공통적 경험을 발견하지 않는 이상은 깨닫지 못할 때가 많다. 남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위축되고 혼란스러운 자아 뿐이다. 이러한 모습에조차 '신경이 예민하다', '사회성이 떨어진다', '자신감이 없다'는 꼬리표가 붙고 이 또한 '여성의 특성'으로 여겨지며 악순환이 지속된다. "여성을 향한 이러한 심판과 편견에 반해, 남성은 그냥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도 제재 받지 않는다."

저자는 여성이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 알고, 또 찾기 위해선 이런 상황들과 맞닥뜨리고 싸워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몸소 보여주는 듯 하다. 문화학을 전공하고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페미니스트 인플루언서(@wastarasagt)로 활동 중인 저자는 여성성,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삶이 일상적으로 부정되고 공격 받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그 전장 한가운데에 있다. 대중문화나 소셜미디어(SNS)에 횡행하는 여성 혐오를 분석하고 반박하는 콘텐츠를 최대한 재미있게 전달하려 하지만 종종 '블랙 유머를 모른다, 풍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댓글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성차별은 유머가 아니고요, 여성 혐오는 재미가 없습니다."

다만 저자의 경험에 의하면 여성 혐오 콘텐츠를 만드는 "유머 계정" 운영자라 해도 "유머"를 잘 이해하진 못하는 것 같다. "여성의 덕목이란 요리를 잘하고, 남성을 유혹할 줄 아는 것.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것" 등의 콘텐츠를 올리는 해당 계정의 내용을 저자가 패러디하자 "그는 내 콘텐츠를 사이버 불링이라고 신고하고 내 계정을 차단했다. 아마 내 유머를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닐까?"

저자가 여성 혐오 콘텐츠들에 대한 반박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펼쳐 나가는 것은 "소셜미디어는 특히 젊은 세대가 주변 환경을 인식하는 방식에 있어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여성에 대한 혐오, 무시, 대상화는 여성에게 실제로 피해를 끼친다.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여성이 현실에서 이런 남성을 만나게 되면 이들의 말과 생각에 휘둘릴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여성 혐오와 싸우는 과정은 지금까지 여성의 삶을 부당하게 폄하해 온 성차별적 사회에 대항해 "나를 비하하지" 않고 나의 "모든 것에는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는 길일 수 있다. 저자는 "못된 말을 상대방 면전에 대고 하지 않는 행동이 어른답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꾹 삼키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성숙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며 "지금까지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서 놓친 것들이 너무 많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굳이 정정하지 않으며, '아…,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굳이 그래야 할까?'하고 생각하면서 잃은 것들이 많다"고 짚는다.

저자는 여성을 혐오하고 모욕하는 발언에 대해 굳이 "못된 말"을 할 것도 없이 "스스로 선을 정하고, 그 선을 지키고, 그 선을 넘으려는 시도"에 "말 조심해. 나는 그런 식으로 하는 말은 참지 않아"라고 받아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어쨌든 나는 이제 더 이상 스스로를 낮추거나 문제를 외면하고, 타협할 수 없는 것들에 타협해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싸우고 탐색하는 과정, 자신에게도 내재돼 있던 여성 혐오까지 숨김 없이 보여주며 저자 자신도, 많은 여성이 찾고 있는 "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는 "대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처럼 나 역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와 '모두가 동경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사이에서 갈팡질팡 흔들렸"지만 "꼭 한쪽을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모든 것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고, 모순되는 것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으며, 그렇다고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제 나는 다른 여성들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들처럼 되길 원한다. 나는 활발하고, 시끄럽고, 분홍색 때로는 파란색을 좋아하고, 다양한 여자 친구 무리에 끼어 어울리고 싶고, 칵테일을 마시고, 쇼핑하고, 여성에 대한 온갖 진부한 편견을 따르거나 혹은 따르지 않고 싶다"며 자신에게 "여자가 이래도 되냐" 혹은 "여자치고 대담하다"며 또 다시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도 "아니, 나는 나다. 그리고 나는 여성이다. 그게 전부다"라고 답하고자 한다.

▲ <온 세상이 우리를 공주 취급해> 타라-루이제 비트베어 지음. 김지유 옮김. ⓒ프런트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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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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