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바쁜 한국, 건강한 고령화 가능할까

[서리풀 연구通] 제2의 전성기 속 숨겨진 건강 가치

한국은 항상 바쁘다. 얼마나 바쁘냐 하면, 2020년부터 이어진 인구감소 추세에 힘입어 고령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도약을 목전에 두고 있다. 한국인들은 더 바쁘다. 그중에서도 인구통계와 각종 실태조사에서 드러나는 중‧장년층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50대는 이미 가장 많이 일하며 가장 돈을 잘 버는 연령대로 자리매김했고, 노인돌봄을 위한 시설에 종사하는 60세 이상 요양보호사가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놀라지 마시라. 전체 실업급여 수급자 4명 중 1명은 60세 이상이다. 정년을 연장 혹은 폐지하거나, 근로계약을 갱신해 장년층의 고용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하지만 최근 중‧장년층의 활약은 경제활동에만 머물지 않는다. 청년이 떠나간 농어촌에는 통나무로 지은 귀농귀촌 공동체가 생겨났고, 전국투어 트로트 콘서트들은 연일 전석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 해외여행, 이미용 봉사, 자율방범 활동 등 은퇴를 기념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병의원을 찾는 이유도 마찬가지. 요통치료를 기다리는 긴 대기줄에는 농사일 중 잠시 짬을 내 방문한 사람, 손자녀 돌봄으로 얻은 통증이 악화한 사람, 화단을 정리하다 삐끗한 사람이 섞여 있다.

이처럼 바쁘게 노후를 맞이하는 세대를 표현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노인빈곤이나 고독사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 소비중심적 각자도생의 사회. 혹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완강한 노령화'. 이 건강한 노령화라는 개념은 인구가 고령화될수록 경제성장이 느려질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발전했다. 1972년 경제학자 그로스만은 의료서비스를 소비이자 투자라는 이론을 발표했다. 이 이론을 발판삼아 의료서비스를 통해 질병을 빨리 치료하거나 건강을 잘 관리한 고령인구가 늘어나면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적 기여는 증대되고 의료비 지출은 낭비되지 않을 것이라는 연구가 활발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정부는 노인건강 관련 제도적 지원을 낭비로 여기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신 건강한 고령화를 경제정책으로 적극 추진해야 한다.

▲ 일자리 찾는 고령자 노동자들. ⓒ연합뉴스

그러나 기존 연구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경제활동과 사회적 기여만 포함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가사노동, 자원봉사, 여가활동은 금전거래가 이뤄지지 않거나, 수익을 창출하지 않거나, 오히려 돈을 쓰기만 한다는 이유로 배제되었다. 집과 지역사회를 오가며 이뤄지는 비시장활동의 가치에 주목한 것은 페미니스트 사회운동가와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남녀의 가사노동에 참여하는 시간 불균형을 탐구하면서 비시장활동의 경제적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방식을 개발했다. 성평등을 지향하는 국제사회의 흐름에 발맞춰 여러 국가에서 매년 가계위성계정(Household Satellite Account)이 발표되는 이유다.

그 덕분에 개인의 시간 활용에 대한 조사자료와 가사노동과 자원봉사를 포함한 비시장활동의 경제적 가치를 환산한 국가통계자료를 활용하면 건강한 고령화의 숨겨진 가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국제학술지 <사회과학과 의학>에 실린 오늘의 연구는 스스로가 건강하다고 생각하는 고령층에서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 같은 비시장활동으로 더 높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밝혔다(☞ 바로 가기 : 건강한 노화의 가치) 연구자들은 먼저 영국의 '2014~2015 생활시간조사자료'에서 65세 고령층이 10분 단위로 작성한 시간사용량과 그 목적, 그리고 본인이 응답한 건강 상태를 파악했다. 연구의 핵심은 8가지 비시장 활동으로, 청소정리, 이동, 음식준비, 의류관리, 아동돌봄, 성인돌봄, 자원봉사가 포함됐다. 65세 이상 영국인이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한 활동은 음식준비, 청소정리, 이동 순서였고, 활동별 시간사용량은 3가지 연령대와 건강상태의 좋고 나쁨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특히 고령층과 건강상태가 나쁜 집단에서 가사관리 관련 시간사용량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불건강할수록 이동과 음식준비에 할애하는 시간이 유의하게 줄어들었다. 다만 아동돌봄은 다른 활동에 비해 연령과 건강상태에 따른 시간사용량의 증감이 일관적이지 않았고, 성인돌봄과 자원봉사는 불건강하거나 85세 이상이면 할애하는 시간이 몹시 적었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영국의 가계위성계정을 활용해 2015년도 화폐가치 기준 활동별 금전 가치를 환산했다. 2015년 화폐가치를 기준으로 건강이 매우 나쁘다고 인식한 집단은 매우 좋다고 인식한 집단에 비해 비시장활동으로 얻는 생산가치가 최대 약 100만원 적었다. 이는 2015년 기준 연간 1인당 국내총생산(GDP per capita)의 27.4% 수준이다. 만약 건강이 매우 나쁘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10명 중 1명만이라도 건강이 매우 좋다고 인식하게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장년층의 비시장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가치는 연간 약 4686억 원(2.78억 파운드)에 상당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연구자들의 예상과 달리 영국 장년층에서 건강할수록 얻는 경제적 이익은 연령과 비례해 증가했다. 이것은 건강한 고령화에서 이야기해 왔던 기능할 수 있는 역량과 자신의 역량을 시간 사용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판단능력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만사가 다 돈인 세상에서는 책상머리에 앉아 글공부해야 할 연구자마저 금전적 이익을 재고 따지느라 바쁘다. 모두가 일하며 안전하기를, 은퇴한 후에도 건강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먹고살기 위한 노동에서 해방된 노년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기를, 모두가 부동산 투자에서 벗어나 건강한 투자, 집안 살림과 지역사회 봉사를 통한 사회적 투자에 매진할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서지 정보

- Santos, J. V., & Cylus, J. (2024). The value of healthy ageing: Estimating the economic value of health using time use data. Social Science & Medicine, 340, 116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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