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옷 늘어나는데 줄어든 수거함,그 많던 옷은 누가 가져갔을까?

[인권학의 프런티어] 인권의 눈으로 보는 의복 불평등

인권에 대한 물음이 쏟아지는 나날이다. 인권보장을 외치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사이, 한편에선 그 목소리의 정당성을 두고 격론이 펼쳐진다. 갖은 물음에 답하기 위해 <프레시안>과 한국인권학회가 만났다. 인권은 사회적 화두인 동시에 연구와 학문의 대상이다. 학계가 쌓아온 '인권학' 연구를 사회적 화두로 다시 던진다. 평화-인권-환경 연구자인 황준서 박사가 글을 쓴다. 편집자

의복은 외부의 변화와 위험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유지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취향과 성격, 사회적 지위, 그리고 문화적 상징을 표현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의복권'은 인간으로서 신체적, 정서적, 그리고 사회적 필요에 따른 의복을 선택하고 착용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오늘날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복합적 차별은 많은 이들의 의복권 향유를 방해하고 있지만, 그동안 의복권은 인권담론과 정책에서 주목받지 못해왔다. 이번 칼럼에서는 의복권의 의미를 살펴보고, 한국 사회에서 의복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검토한다.

인권으로서 의복(right to clothing)

인간에게 의복은 3차원적 의미를 가진다. 첫째, 여름에는 얇은 옷, 겨울에는 두꺼운 옷, 특정 작업환경에서는 일상복 위에 보호복을 입듯이 적절한 의복은 인간 신체의 보호 및 기능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 둘째, 적절한 의복은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참여의 기회를 보장받는다. 반대로 특정한 의복은 공공장소에서 환영받지 못 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도덕적 비난과 사법처리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의복은 자기 개성과 취향의 표현으로서 개인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의복권은 △세계인권선언 △장애인권리협약 △사회권규약 △아동권리협약 등 다양한 국제 협약에 명시되어 있으며, 인간의 기본권리로 인정되고 보호받아야 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 예를 들어 세계인권선언 제25조 제1항에는 모든 사람이 의식주를 포함한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명시하고 있으며, 아동권리협약 제27조 제3항은 아동에 책임이 있는 자가 영향, 의복 및 주거에 대한 물질적 보조 및 지원을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복권은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사회적으로 통합되고 문화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포함한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을 겪고 있는 사회집단의 경우, 적절한 의복을 구하기 어렵고, 이로 인해 사회적 참여 기회가 제한되며,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배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국가는 인권 보장 및 증진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식(식량)'과 '주(주택)'와 달리 현대 소비사회에서 의복은 개인의 소비습관으로 의미가 축소된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인권담론과 정책에서 의복권에 대한 언급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물론, 식량과 주택 관련 복지제도는 있어도 권리관점에서 의복을 다루는 복지제도를 찾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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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복권 실태

한국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의복 소비욕구와 공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옷을 구매할 수 있는 경로는 시장에서 백화점으로, 이제는 SNS로까지 확대되었고, 그만큼 다양한 의복이 유통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도 한국의 패션산업 규모는 47조 91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한다. 한편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따르면 국내 의류폐기물은 2019년 기준 107만톤에 육박한다. 하지만 특히 코로나 이후 점증하는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취약계층의 의복 수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우리나라 의복권 실태를 가용성, 접근가능성, 수혜자 수용성, 질이라는 4개의 지표로 분석해보면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더욱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가용성(availability)은 의복권 보장을 위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제도, 재원, 인프라 등 자원의 존재를 의미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 정부가 주도하는 상시적인 의복 지원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민들에게 의복을 지급하는 경우는 군대 외에는 사실상 긴급구호나 재난 상황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는 의복권 보장 제도는 가용가능한 자원이 다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제도 자체가 부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가용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접근가능성(accessibility)은 활용 가능한 다양한 자원을 권리집단이 장벽 없이 선택 및 활용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현재 정부 주도 의류복지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일부 시민사회단체가 의복 빈곤에 대응하기 위한 분배 사업을 실시해왔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가게는 전국에서 약 130개의 재활용판매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반적인 접근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재활용판매매장은 기본적으로 수익창출이 목적이기 때문에 국내 취약계층의 의복권 보장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혜자 수용성(acceptability)의 측면에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의복권 보장 수혜집단인 취약계층의 경우 재사용판매매장 활용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의류 재사용판매매장을 이용한 응답자들 중 일부는 물품의 상태나 가격 등에 대한 질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등 재활용판매매장에 구비된 의복의 상태와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 의복권 보장제도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가용성, 접근가능성, 질적 측면에서 특히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해외 사례로 보는 의복권 보장 모델

해외에서는 비영리 의류은행과 영리형 판매매장이 의복권 보장을 위한 두 가지 모델로 다뤄지고 있다. 우리는 아래 두 개의 사례를 참고하여 국내에 하이브리드 의류은행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하이브리드 의류은행은 재사용판매매장과 동시에 취약계층에 일정 수량의 의복을 무료로 분배하며, 택배 시스템을 활용하여 취약계층의 의복수급을 지원하는 방안이다.

비영리 의류은행 모델로는 요르단 의류은행(Clothing Bank) 사례가 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구시가지에 위치한 Clothing Bank는 요르단 현지 취약계층에 의복을 제공하는 복지시설인데, 비영리단체인 요르단 하시마테 자선기구(Jordan Hashemite Charity Organization)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

의류은행은 요르단에 있는 호텔, 대형 쇼핑몰 등 약 100여 곳에서 의류수거함을 운영하면서 재사용 물품을 선별하고 분배한다. 이 모델은 취약계층에 의복을 지원하여 수혜자 수용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사회적 포용을 증진시키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려할 수 있다.

한편 영국에는 약 9000개의 재사용판매매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는 국내와 비교할 때 매우 큰 규모다. 구세군(Salvation Army)을 비롯해 옥스팜(Oxfam),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등 여러 자선 및 구호단체들이 재사용판매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필자도 공부를 마치고 영국을 떠나게 된 시점에 상당히 많은 (멀쩡한) 옷 일부는 추위에 떨고 있는 어느 노숙인에게 주고, 나머지는 옥스팜 매장에 기증했던 적이 있다. 기증에 대한 특별한 대우나 혜택은 없었지만, 이러한 기증이 옷을 정리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편리하고, 재소비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필자와 비슷하게 영국 소비자들은 재사용판매매장을 경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재사용판매매장에서 물품을 구매하고 사용하는 것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적어지고 있으며, 이는 재사용판매매장의 성공적인 운영에 기여하고 있다.

다만 재사용판매매장의 경우 앞서 언급하였듯이 수익창출이 목적이고, 사업지역의 사회경제적 특성에 따라 기증을 받는 물품의 질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재사용판매매장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지역에 매장이 더 많이 위치하고 있으며, 수익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재사용판매매장의 경우 의류 복지제도의 가용성 개선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접근성과 양질의 의복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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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을 인권의 문제로 인식해야

의복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와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이를 인권의 문제로서 접근해야 한다. 먼저 한국 정부는 국제 인권법에서 인정하는 의복권을 국내법에 명시적으로 반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과 비정부기구(NGO)의 역할도 중요한데, 이들 조직은 저소득층을 위한 의복 수거 및 재배포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의복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교육의 측면에서도 의복권에 대한 인식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학교 교육 과정에 인권 교육을 포함시켜 학생들이 의복권을 포함한 다양한 인권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의복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기관 모두에게 지속 가능하고 윤리적인 의복 소비의 중요성을 알리는, 제도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오늘 칼럼에서 소개하는 논문에서는 구체적으로 다뤄지지 않았지만, 우리나라 거리에서도 종종 헌옷수거함을 찾아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의류폐기물은 점점 늘어나는데, 헌옷수거함은 줄어들거나 방치된 상황이다. 도대체 그 많던 옷은 누가 다 가져갔을까?

우리나라 헌옷수거함은 ‘기증’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입찰을 통해 자격을 얻은 사업자가 헌옷을 수거해서 주로 구제시장이나 해외에 판매하는 영리사업이다. 킬로그램(kg)당 판매단가가 800~1000원에 이르는 높은 수익사업이던 시절에는 헌옷수거함이 마구 설치되었으나, 최근 그 단가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수거함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의복 복지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혁하는 과정에서 현재 작동하지 않고 있는 모델을 인권 관점에서 운영하는 노력도 절실한 이유이다.

한쪽에서는 적절한 의복을 권리로 보장받지 못하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옷이 생산되고, 헌옷으로 버려진 다음 폐기물로 방치되는 인권침해와 자원낭비의 악순환을 의복권 관점에서 끊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의복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노력은 모든 구성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포용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가 이 중요한 인권의 영역에 주목하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소개논문> 최정음·서창록·박영우. 2023. “인권 관점의 ‘의복권’ 고찰”. 『인권연구』 6(1): 189–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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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준서

퀸즈벨파스트대학교(Queen's University Belfast)에서 북아일랜드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삼중 전환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2022년에 졸업하였다. 생태정의, 환경범죄, 지속가능한 평화, 탈인간중심적 인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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