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나랑 붙자"는 안철수,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나

[정희준의 어퍼컷] '아름다운 안철수'를 기대하며

"보석 같은 분."

2009년 안철수가 '직업이 너무 많아 선택을 못하겠어요'라는 고민을 가지고 TV 프로그램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후 프로그램 게시판에 오른 글이다. '존경', '감동'은 물론이고 "최고의 게스트였다"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는 겸양이 몸에 밴 사람이다. 누구에게나 존댓말이다. 군의관 시절 병사들에게도 반말을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는 사회적 책무를 우선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백신업체 맥아피가 1000만 달러에 회사를 팔라고 제안했으나 거절하고 자신이 만든 바이러스 백신을 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했다. 공익재단을 만들어 무려 150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뭐니 뭐니 해도 안철수가 가장 빛났던 순간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50%대의 지지율을 가졌음에도 고작 5%대 지지율의 박원순에게 후보를 양보한 장면이다. 한국정치에서는 절대 목격할 수 없는, 이 아름다운 장면에 감동 받은 국민들은 안철수를 일약 지지율 1위 대권 주자로 밀어올렸다.

정치와 안철수

안철수는 존경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의사로서, 교수로서, 백신 개발자로서, CEO로서, 그리고 수많은 청년들의 멘토로서. 그런데 '직업이 너무 많아 선택이 어려웠던 그'가 중년 나이에 선택한 것이 하필 정치였다. 정치란 '동물의 비루한 욕망'이 난무하는 영역이다. 추잡하고 더럽고 야비한 공간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정치에 뛰어든 안철수는 12년 동안 대통령선거 세 번, 서울시장 선거 두 번, 국회의원 선거 세 번을 치렀다.

그 결과는? 새정치연합, 새정치민주연합,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다시 국민의당, 그리고 지금의 국민의힘에 이르는 '저니맨' 정치인이 되었다. 10여년 전엔 이명박 정부와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을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집권세력...응징 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맹비난했던 안철수가 지금은 그들의 품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자신이 만든 당에서조차 탈당하고, 창당, 분당, 합당을 거듭했다. 이인제, 손학규에 뒤지지 않는다. 그 사이 그와 함께 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떠나갔다. 금태섭, 윤여준, 이상돈, 장하성, 한상진, 김성식, 최장집,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류근찬, 전성인, 이헌재 등 온 가족 손에 꼽기도 어렵다. 국회 내에서 그의 의원실은 '보좌관들의 무덤'으로 통한다. 들어오면 나간다.

안철수는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는가

안철수가 정치에 입문할 당시 내걸었던 깃발은 '새정치'였다. 그러나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철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당시 안철수의 새정치를 '한반도 3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였다.

스스로 새정치에 식상해졌는지 목소리를 바꾸고 눈썹 시술을 하더니 느닷없이 '극중주의'를 외쳤다. '극한의 중도주의'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중도주의를 극한으로 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요즘은 안철수가 쫓는 가치나 비전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가 2022년 재보궐선거에서 분당갑에서 공천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도 일관되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분당갑에서 나랑 붙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마도 사그라들고 있는 대선주자로서의 몸값을 이재명 대표와의 빅매치를 통해 다시 키우려는 의도 같다. 그러나 대선주자 정도 되면 오히려 (계양을로 가는 원희룡이나 분당갑으로 오는 이광재처럼) 험지에 가서 승부를 가려야지 보수가 절대 우위인 자기 안방에 와서 싸우자고 하는 것은 정치 상식으로도 맞지 않다.

그렇게 이 대표와 맞붙고 싶었다면 2년 전이든 지금이든 자신이 계양을에 가서 결판을 냈어야 한다. 아직까지도 "이재명 대표가 왔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린아이 투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망이다.

안철수 스스로 되돌아봐야 할 것들

안철수는 왜 정치를 하나? 과거엔 문재인 스토커 같았다. 2017년 대선 때는 '문재인 이길 사람 누구'를 외쳤고 바른미래당에서는 이준석과 앙숙이 되었다. 지금은 이재명인가? 혹시 개인 자존심 때문에 정치를 하는 것인가? 어떻게든 대통령이 되려고? '새정치'는 고사하고 국민을 위한 정치는 이제 어디로 갔는가?

안철수는 국민의힘에서는 미래가 없고, 이준석 지지자들에겐 조소의 대상이 됐으며 무엇보다 현 정부에 비판적인 이들에겐 '윤석열정부 탄생 1등 공신'이다. 대선 때 본인이 '공동정부'를 그렇게 강조했던 만큼, 지금 국민들이 겪는 당혹감과 고단함에 대한 책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특히 지난 대선 후보 단일화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월 3일 새벽 윤핵관 중의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누나 집에서 만나 단일화에 합의했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회의장이나 호텔도 아니고 상대 후보 측근의 사저에서 단일화 결정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이나 한 걸까? 거래, 야합, 밀실정치가 여기 다 들어가 있다. 안철수는 낮엔 국민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밤엔 장사를 했던 것이다. '낡은 정치의 끝판왕'이다.

가장 안타깝고 속 상하는 것은, 썩은 정치를 새정치로 바꾸라는 국민의 기대와 열망을 혼자 다 말아먹었다는 점이다. 옛 국민의당 대변인은 "그토록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불과 4년 만에 모두 까먹고 제3지대를 빈털터리로 만든 주된 책임은 누가 뭐라고 해도 안철수에게 있다"면서 "안철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반성과 참회"라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런 안철수가 국민의 희망을 저버리고 그 대신 얻은 인지도를 가지고 "이재명 대표, 분당갑에서 나랑 붙자"를 주장한다. 안철수의 정치는 과연 무엇일까?

'아름다운 안철수'를 기대하며

누가 뭐래도 그는 선한 사람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청년에겐 꿈을 줬던 인물이다. 귀한 사람이다. 그러나 비루한 정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가 유명세를 타게 되자 그를 정치로 끌어들인 사람들의 잘못이다.

전국을 다니며 청춘콘서트를 통해 청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때 그는 보석 같은 사람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국가적 위기에 빠졌을 때 대구에서 의사로서 헌신하며 땀에 젖은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의사, 교수, 백신 개발자, 스타트업 CEO로서, 그의 모든 면면은 귀감이었고, 롤모델이었다. 안철수는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본인에게도 걸맞고 사회에 기여하는 바도 크지 않을까.

이번 총선에서도 그는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을 더 하더라도 부질없이 대권에 연연하기 보다는 인간 안철수가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무엇을 선사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할 것을 권한다. 안철수의 마지막이 이럴 수는 없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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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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