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어쩌다 '그깟 공놀이', 야구에 열광하게 됐나?

[프레시안 books] <야구의 나라>

고시엔(甲子園).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고교야구의 상징 같은 전국대회다. 고시엔 우승이 곧 고교야구 평정이란 의미로 통한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 하는 오타니 쇼헤이조차 고시엔 본선 진출이 좌절돼 엉엉 울었다는 일화가 있는 꿈의 무대다.

한국 고교야구 명문인 휘문고가 고시엔 본선 8강에 진출했던 기록이 있다. 무려 100여 년 전인 1923년 일제강점기에, 전원 조선인 선수로만 꾸려진 휘문고보 야구팀이 일군 쾌거다. 당시 일본 언론 <아사히 스포츠>도 "본토 팀을 능가하는 정신을 발휘했다"고 휘문고보의 분투를 보도했다.

그러나 '엄복동의 자전거', '손기정의 금메달'처럼 조선의 긍지만 새겨진 역사는 아니다. 조선을 일본에 융합하려는 '내선융화(內鮮融和)' 정책에 야구가 유용하다고 판단한 조선총독부의 통치 기획과 야구를 매개로 일본이 이룬 근대 문화를 동경하게 된 조선 엘리트들의 야심이 맞물렸던, '그 시대의 배경' 때문이다.

실제로 휘문고보 창립자이자 친일 인사인 민영휘가 야구 예산과 시설을 뒷받침했다. 그는 일본에서 명성을 떨친 투수 출신 박석윤을 감독으로 데려와 선수 지도를 맡기기도 했다. 박석윤 역시 훗날 친일의 길을 걸었다.

스포츠문화사학자인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가 한국 야구의 기원과 성장의 앞뒷면을 살핀 책을 냈다. <야구의 나라>(이종성. 틈새책방). 휘문고보가 이룬 고시엔 8강 진출의 이면에는 식민시대 피지배층의 강박적 열패감과 무의식적 선망의식이 동시에 작용했다. 조선인들의 눈에 야구는 신기하면서도 불편한 도련님들의 '귀족 스포츠'였다.

▲ 야구의 나라(이종성 저, 틈새책방) ⓒ틈새책방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료와 직접 들은 증언들을 토대로 엮었음에도 단숨에 읽힌다. 특히 야구가 정계, 경제계, 언론계와 공명하며 '국민 스포츠'로 성장한 과정은 흥미로우면서도 씁쓸하다. 야구 문외한에게도 낯설지 않은 '레전드' 면면이 국면마다 등장해 굴곡진 근현대사에 휘말렸던 야구의 명암을 조명한다.

반공과 반일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이 재일교포 학생 야구단을 경무대로 불러 기념사진까지 찍으며 환대했던 정치적 맥락에는 한국인들로부터 '쪽발이' 수모를 당했던 '야신(야구의 신)' 김성근의 경험담이 겹친다. 동대문야구장에 조명탑을 설치해 처음으로 야간경기 시대를 열었던 박정희의 결단에는 '김응용의 한일전 홈런'이 큰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에 뿌리내린 조선 야구가 해방 이후 시대적 흐름과 접맥해 엘리트 스포츠로 만개해 가는 과정도 역사극 같은 전개다. 사회 곳곳에서 파워 엘리트로 자리잡은 동문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야구 명문고는 입시 명문고 학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동반성장했다. 잘 나가던 상업고와 은행권 엘리트들의 '야구 커넥션' 역시 70년대 '고교야구 전성시대'를 뒷받침했다.

지역별 명문고가 중심이 된 고교 야구 흥행이 유력 정치인과 정치세력들이 벌인 지역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그런 풍토 탓에 경북고가 4대 전국대회를 휩쓸며 기염을 토한 1971년 대선에서 박정희가 승리한 일이 공교롭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이듬해 '역전의 명수' 돌풍을 일으킨 군산상고, 줄곧 호남 야구를 대표한 광주일고의 활약도 지역 경쟁과 무관하지 않았다.

고교야구가 불을 지핀 지역 경쟁 구도를 발판으로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등에서 번성한 '대도시 스포츠' 야구는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는 토대가 됐다. 지역별 정치적 맹주인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 대선에서 맞붙었던 1987년 대선 때 야구장 풍경이 어땠을지는 불문가지다. 광주가 홈구장인 해태 타이거즈의 '5월 18일' 경기가 1983년부터 1994년까지 무조건 원정 경기로 편성됐던 이유도 시대 상황에 미루어 짐작하는대로다.

박정희 정권 시절 재미교포 사업가 홍윤희가 계획했던 프로야구 설계안이 전두환 정권에서야 비로소 실현된 비사도 유불리에 따라 야구를 취하거나 외면했던 정부의 입맛이 작용한 결과다. 축구에 더 큰 흥미를 가졌던 전두환이 프로야구를 창설하는 과정에는 경남고, 마산상고 출신 청와대 고위 인사들과 교류한 학연의 힘이 크게 작용했다.

여기에 정치권 눈치를 보며 사업적 기대효과를 목표로 프로스포츠 투자에 뛰어든 대기업들, 야구 산업의 비즈니스 파트너인 미디어가 결합했다. 1982년 3억 원으로 출발해 2023년 760억 원에 달하는 규모에 이른 프로야구 연간 중계권료만 봐도 괄목상대한 성장이다. 올해부터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가 프로야구 컨텐츠 시장에 뛰어들어 1000억 원 이상의 중계권료가 예상된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사와 결부해 지난 100년 야구의 역사를 샅샅이 훑은 저자는 이를 '엘리트들의 야구 동맹'이란 키워드로 압축한다. 시즌 개막을 애타게 기다려온 야구 팬들에게 불편할 수 있는 표현이겠지만, 스포츠 기자를 거쳐 스포츠 학자로 야구를 탐구하는 중년 야구광의 애정이 진지하게 전해진다.

20여 일 후면 다시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나날이 발전하는 통계적 분석을 총동원해도 감정 효율성이 신통치 않은 '그깟 공놀이'에 기꺼이 시간과 영혼을 할애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권한다. 야구에 빠져든 경로는 제각각이어도, 어쩌다 이 굉장한 스포츠가 우리 모두의 삶 가까이에 자리잡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야구의 나라' 연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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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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