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화된 '예술의 전당', 높은분 영접하는 '권위'에 사로잡혔다

[경제지리학자들의 시선] 폐쇄성에 갇힌 국내 문화공간의 현주소

최근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중 80% 이상은 서울만 방문한다고 한다. 가히 관광마저도 서울 공화국의 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왜 외국인까지 서울만을 찾을까 하는 점이다.

관광은 한마디로 문화를 따라 떠나는 여정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 경제, 교육 등 사회 각계의 권력을 독차지하는 서울은 문화적 자산마저도 독점하고 있다는 말인가?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도시 문화의 현주소와 문제점,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 방안을 지리학의 관점에서 풀어가고자 한다.

국내 문화공간의 현주소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알맞은 토양과 기후 조건이 필요하듯, 문화 발전 역시 적절한 공간적 조건을 필요로 한다. 문화가 무럭무럭 자라기 위해서는 창작(creation), 공연(show), 소비(consumption)의 순환이 즉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창작자는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수록, 소비자는 예술 작품을 일상적 차원에서 부담 없이 즐길수록 그 지역의 문화는 활성화한다.

뉴욕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스킹은 이러한 창작과 소비가 동시에 만나는 공간 사례 중 하나다. 뉴욕 지하철에서 버스킹이 활성화할 수 있는 다양한 이유 중 하나는 창작자와 소비자가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 발전을 위한 공간적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곧 문화는 생산과 소비가 하나의 몸을 이룰 만큼 공간적으로 밀착할 때 활성화된다. 이 원리는 사실 너무나 단순하여 간과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쉽게 실현되지 못하는 조건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문화 창작과 소비의 공간적 근접에 대한 고민이 거의 없다면 도시 내 문화는 메마를 수밖에 없다.

서울 예술의전당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 공연 문화의 메카로 불리는 예술의전당은 곧 전국의 공연시설이 참고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예술의전당은 시설 면에서는 훌륭할 수 있으나 공간 배치의 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바로 사람과 건물이 유기적인 연속성 없이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다. 전국의 많은 공연장은 예술의전당의 폐쇄적인 공간 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 오슬로 오페라하우스(위쪽, 노르웨이)는 외국의 많은 공연장이 그러하듯 전적으로 개방된 구조를 가지면서 시민들의 일상적 문화 공간으로 인식되지만, 서울 예술의전당(아래)은 넓은 도로와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채 한국 공연장 특유의 고압적인 자태를 드러낸다. ⓒ 구글어스 갈무리.

문화예술시설은 공연과 전시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지만, 그 밖에도 시민들의 일상적인 여가와 휴식 공간을 제공하는 목적도 가진다. 하지만 우리나라 각 도시의 대중공연 시설은 바로 후자의 측면을 지나치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도시 내 일상적 문화의 퇴보로 이어진다.

세계의 유명 공연시설들은 하나의 암묵적인 철칙에 따라 지어진다. 바로 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서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휴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함이 그것이다. 굳이 공연을 보러오지 않아도 시민들은 공연장 앞에서 사진을 찍거나 편하게 휴식을 취하면서 도시의 끝내주는 시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유한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공연시설들은 하나같이 도로와의 연속성이 결여된 채 하나의 요새처럼 자신을 꽁꽁 둘러싸고 있다. 마치 공연을 보러 오는 고객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공간을 허용하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과거 높은 분들을 영접하는 데 초점을 맞춘 공연장의 권위적 패러다임을 이제는 일반 대중에게도 활짝 열린 시민 공간 컨셉으로 전환하여야 한다.

서울에는 있고 지방에는 없는 것

문화와 일상적 공간이 단절된 구조는 사실 한국 도시의 흔한 패턴 중 하나다. 세계 뮤지컬계를 주름잡는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타임스퀘어라는 명소로 인해 대중에게 끊임없이 노출된다. 시민들과 관광객은 타임스퀘어를 매개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계속해서 주목하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문화예술 공간의 개방성이다. 공간에서의 대중적인 노출이 빈번할수록 문화예술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소비시장의 크기는 정비례한다.

이러한 공간 원리가 발견되는 국내 사례는 서울의 대학로가 유일하다. 시민들은 굳이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닐지라도 대학로의 열린 공연시설을 접하게 된다. 대중적 시선에 노출된 문화예술 활동은 자연스럽게 시장 규모를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학로와 같은 일상적이고 개방적인 문화공간을 지방 도시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문화예술 시설은 세속적이기만 한 국내 도시의 중심상업지구에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 이는 도시 문화와 상권의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국내의 문화예술계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특히나 서울로의 편중이 심하다. 서울의 제한된 문화예술 시장으로 집중되다 보니 예술인들 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예술 활동의 지역적 불평등은 가중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방 도시는 스스로의 문화적 자산과 토양을 다져야 한다. 지방 도시의 예술 소비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는 부담 없이 접근 가능한 문화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문화공간이 스스로의 권위적인 폐쇄성을 버리고 도시의 일상적 영역에 침투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순수 예술계는 줄어드는 국내 소비시장에 우려를 나타낸다. 공간은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킬 하나의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시민들의 일상 공간에 밀착되어 있고 심미적으로도 아름다운 공연시설과 문화공간은 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증가시킬 수 있다.

지방 도시의 문화 시장 개척은 결국 적절한 공간 전략과 동반하여 진행돼야 할 것이다. 장벽 없이 예술 창작과 소비가 밀착된 공간 구조는 도시 문화와 장소적 매력을 활성화하는 데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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